번아웃과 심폐소생술

두 달에 한 번 도망가는 기러기

번아웃과 심폐소생술 : 두 달에 한 번 도망가는 기러기


준서에게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말해주고 왔는데, 아마도 내 그리움은 너무 많이 그려서 조각이 된 거 같다.


9월에 번아웃이 오기 시작했다. 청소년 문학의 밤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바로 번아웃이 왔다. 아니, 이미 번아웃 상태로 청소년 문학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도움을 구할 여력이 없어 혼자 모든 걸 준비하다 보니 이미 바닥이 난 감정에 몸까지 축난 것이다.


공허함이란 감정은 내가 가장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것인데, 내가 공허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보람이라는 치료제는 잠시 고통을 잊게 하는 무통주사에 불과하다. 안에서부터 곪아버린 삶을 외부에서 치료해봤자 소용없었다. 집에 가는 것도 싫다. 일부러 아침에 눈을 뜨면 서둘러 나온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어떻게든 마음을 붙잡고 도서관에 앉아 있다. 그리고 집에 가면 메리가 잠시 반긴다. 그리고 이어지는 적막. 소파에 기대어 멍하게 앉아 있다가 시계를 보면 자정을 넘길 때가 많다. 그제야 옷을 갈아입고 씻고 또 적막. 새벽 3시에나 지쳐서 잠드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아내와 준서와 건강하게 만나고 싶은데, 희망고문은 또 시작되었다.


영사관에서 여름에 조사해갔던 실태조사는 엉뚱한 답변으로 연락이 왔다. "어디까지 진행되셨나요?" 갑자기 3개월 만에 내가 묻고 싶은 말을 나에게 한다. 또 시작이구나, 희망고문.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희망고문. 코로나 시대에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고 있었으면서 또 기대었고, 결과는 희망고문이다. 동반비자를 받지 못한 가족들 단체방이 생겼고, 다들 20개월 이상씩은 못 만난 분들이 많았다. 원래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위로가 되기 마련인데, 21세기 이산가족들은 그냥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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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언제나 바다가 보이는 곳이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적막과 공허함 속에서 내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두 달에 한 번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속에 있는 감정들을 최대한 비우려고,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었다. 꺼져가는 마음에 심폐소생술 같은 임시조치를 하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는 오늘도 바다 동쪽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랜다. 이 바다가 이어져있음을, 이 바다를 건너 곧 올 것임을 확신하며, 또 희망고문을 한다. 희망이라도 품지 않으면 어떻게 살겠나.

가족은 절대 떨어져 지내는 거 아니다. 21세기 우리는 지금 이산가족이고, 서로를 그리워한다.

칭다오는 지금, 그리움에 지친 사람들로 가득하다.

WeChat Image_20221023182141.jpg 가끔 나보다 더 쓸쓸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바닥에 사랑한다 쓰고 혼자 저렇게 찍고 있는 남자는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갔다.


2022. 2. 바다를 사이에 둔 너와 나 사이에서

칭다오에 사는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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