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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장_근면이 약이다

근면과 재미 그리고 은희경

오늘의 문장은 세상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맥주부터 마시는 사람이라는 은희경 작가님의 산문집, 『또 못 버린 물건들』(난다, 2023)에서 가져왔습니다.

한 출판사의 SNS에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기대되는 소설가 중 하나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으며 인용한 그의 문장이 “전 소설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서요”였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를 들으며 자라야 했던 세대로서 나에게 근면은 강제 동원이나 국책사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단어의 느낌은 태도가 아니라 대상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솥밥에 근면한 편, 소설에 근면한 편, 사랑에 근면한 편, 사랑은 어디에 붙여놓으면 말은 되지만 설득력까지 있으려면 리얼리티가 따라줘야 하는 편.
_ 「솥밥주의자의 다이어트」 중에서


문인들 가운데 맥주에 진심인 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김혼비 작가님 이전에 은희경 작가님이 계셨군요.

은희경 작가님의 산문을 처음 읽었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분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웃긴 게 아니라 웃다가 한 번씩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 주셨어요. 웃다가 생각에 잠기게 하셨고요.


슬럼프, 번아웃이 삶의 바퀴를 무디게 만들어도 이미 관성이 생겨버린 열차를 멈출 순 없을 겁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근면하면 사기꾼이나 책임감이 없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겠으나, 올바른 방향으로 근면하면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작가님이 공유하신 아니 에르노의 수상 소감이 마음에 울림을 줬습니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아니 에르노, 그는 수상 소감에서 큰 영예와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느낀다며, 책임감이란 세상을 공정하고 정의로운 형태로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118쪽)

도서관 건너편에 식당이 두 개 있습니다. 만두와 식판식(반찬 2~3개, 국, 밥)을 판매하는 식당인데요. 점심시간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갑니다. 대박이죠. 점심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오진 않습니다. 오전 9시에 출근할 때도 식당의 주인들은 재료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오후 9시에 퇴근할 때도 그들은 재료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번아웃이 있었겠지요. 그래도 그들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한 번도 그곳에서 식사하진 않았지만, 언제나 그들의 근면에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냉정과 집중력을 어떻게 회복할까… ’근면‘이 답인 거 같습니다.

매일 식당 문을 열고 똑같은 일을 하는 식당 주인도 오늘은 어떤 반찬을 바꿀까

고민하며 나름의 지루함을 견딜 것입니다.


오래된 물건에는 가늠할 수 없는 근면함이 스며들어 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소중하게 쌓인 추억들과 함께.

가을이네요. 가을이 되면 제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 약한 편이라서요.

안온한 밤 보내세요. 도서관은 내일 오전 10시에 개관합니다.


출처 : 휴먼커피 사장님 위챗 모멘트, 나(좌), 사장님(중), 안나 작가님(우)

칭다오에서 ‘어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분이 몇 분 계시는데, 휴먼커피 사장님도 그중 한 분입니다. “레이아웃은 그대로지만, 철마다 인테리어에 변화를 줍니다. 계절마다 신선한 느낌을 주는 거죠.” “나는 휴먼커피가 100년, 200년 갔으면 좋겠어요.” “경향도서관은 샘물 같은 곳입니다. 그렇게 흐르는 거예요.” 등. 수많은 영감을 주시는 분입니다. 근면으로 다져진 몸, 원두에 대한 지독한 열정. 사장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상하이에서 오신 안나 작가님과 함께 뵙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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