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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Mar 29. 2022

처음으로 일본어를 배운 것을 후회했다.

#2018. 06.18

처음으로 일본어를 배운 것을 후회했다.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된통 깨지고 상사 앞에서 콧물 찔찔 흘리며 울었다.

내가 잘못해놓고 울어버렸으니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나도 정말 내가 한심하다.


퇴근하는 길에 위로받고 싶었는데 연락처를 아무리 뒤져도 전화를 걸만한 사람이 없었다.

진짜 최악이다.


사실 이 감정은 꽤나 익숙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다녔던 수학학원에서는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남학생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여학생은 총 4명이었는데 하나 둘 말없이 사라지더니 결국 나 혼자 남아버렸다.

선생님은 너 혼자 여학생인데 괜찮지?라고 물어봤고 뭐... 쓸쓸하겠지만 괜찮으리라 믿었다.


아니었다.


만약 내가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다면 조금 더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나는 항상 뒤처져 있었고 더 이상 수학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없었다.

남자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이 그때는 왜 그리 서러웠던지 매일을 울었고 나 혼자 겉도는 느낌이었다.

여학생 다루는 것이 서툴렀던 남자 선생님은 내가 울 때마다 쩔쩔맬 뿐이었다.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난 하나도 괜찮지 않았는데 말이다.


2017년 여름, 호주에서 팀 프로젝트를 할 때 난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서

다른 팀원들이 말하는 걸 이해하는 것도 벅찼다.

내게 무슨 의견을 물어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나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버리는 나날이 반복됐다.

차라리 내가 없었더라면 서로 편했을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난 계속 겉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4달이 지나 수업이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요즘, 난 정말 하나도 괜찮지 않다.

언어 장벽의 문제가 아니다. 매일 크고 작은 실수를 했고 항상 죄송했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사과해야만 했고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자존감은 뚝뚝 떨어졌고 더 이상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큰 사고를 친 오늘, 그동안 엉겨있던 덩어리들이 곪아 터진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우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내 무능함을 증명하는 것 같아 비참했다.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더 끔찍했다.


일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사무실에 갈 때마다 불안하고 오늘은 또 무슨 실수를 할까 걱정되고 일본 문화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일본 사람들은 아직도 어렵다.


최저 시급을 주면서 정사원의 능력을 요구하는 건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이대로 도망쳐버리면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것 같아서 이번 주만 버텨보고 다음 주까지 또 버텨보고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그럼 그땐 정말 일본어를 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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