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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Jun 03. 2022

휘청거리다 첨벙!

"이거 처음인데"

허리는 내게 이 문장을 넉넉히 선물했다. 설렘보다 슬픔에 가까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 한 번도 수영복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딱 달라붙는 옷과 나시를 싫어하는데, 그것의 결합체가 수영복이었으니까. 당연히 수영복 입는 수영장에 가봤을 리 없었다. 몸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언제나 오버핏 옷차림이었다. 신발은 워커를 신었다. 남자처럼 입고 다닌다고 아주머니들이 신기해하며 웃었다. 그들에게 난 군화를 신고 남자 옷을 입고 바닥을 쓸고 다니는 특이한 아이였기에.

딱 붙는 수영복은 내게 만만치 않은 취향 도전이었다. 다행히 겨드랑이 개방은 래시가드의 발명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재활을 위해서 수영장에 가야만 했다. 어색한 수영복과 친해지기 위해 집에서 한동안 수영복을 입고 생활했다. 허리가 아프니 취향 도전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적(敵)이었다. '작은 고민이 있어서 고민이라면 아주 큰 고민을 만들면 되는구나.' 이상한 고민해결법이었다. 싫은 마음쯤이야, 내 취향쯤이야, 허리를 낫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수영장에 갔을 때에도 못 걷다가 조금씩 걷게 되었을 때처럼 단계별 미션을 부여하며 운동했다. 걸을 때 목표를 거리에 두다면, 이번에는 시간으로 세웠다. 경전철에 걸어가는 시간 15분, 수영장 역 근처까지 20분, 역 근처에서 수영장에 가는 시간 12분. 거기에 샤워시간 15분. 수영장에 가서 물에 들어가지 않고 왔다 갔다만 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124분이었다. 이 시간도 허리에게 꽤 벅찬 시간이었기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레벨(Level) 124. 15일을 수영장 물에 들어가지 않고 샤워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레벨(Level) 129. 그 후에 수영장 물에 들어가서 5분을 걸어보았다. 물속에서 걸으면 몸에 무리가 덜 가서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수압이 강해 걷기가 힘들었고 다녀온 후에도 허리가 많이 아팠다. 물속에서 열심히 걷다 보면 나을 것 같았는데 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실행해도 장애물을 만나는 건 흔한 일이었기에 해결 가능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사람들이 수영하느라 첨벙거려서 물이 흔들릴 때를 버틸 수 있는 허리 힘을 만들어야 했다. 레벨(Level) 154. 걷기 위해 걷지 않고 30분간 물속에서 똑바로 서있기만 했다. 그렇게 또 며칠을 적응한 후에 걷기 시작했다. 단, 허리에 통증이 찌릿 오는 순간까지만이었다. 2분일 때도, 10분일 때도, 5분일 때도 있었다. 6시에 땡 하고 시작하는 자유수영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자유형이고 배영이고 접영이고 물살을 가를 때 혼자 물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고, 수영하느라 지친 사람들이 한숨 돌릴 때 혼자서 걸었다. 수영장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 아주머니, 아저씨 누구라 할 것 없이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모르는 척했다. 젊은 사람이, 수영장에서 아무도 안 입는 이상한 긴 팔 수영복을 입고, 남들이 다 수영할 때, 가만히 서있거나 걸어 다니니, 얼마나 신기하게 보였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답변은 웃으면서 짧게 했다. 귀중한 운동 시간이 수다 시간으로 채워지지 않게. 그렇게 수영장에서 한 달을 보내고, 허리가 아프면 쉬었다가, 다시 한 달을 보내고, 도중에 많이 아프면 중단하고 일주일 쉬고, 다시 수영장에서 걷는 걸 시작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1년 6개월이 훌쩍 갔다. 나이의 앞자리가 2에서 3이 되며 앞으로 가고 있는 동안 허리 상태는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했다. 만렙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흰머리가 났다. 서른이 되고 어른 다가다. 지독한 '어른'의 맛은 제발 늦게 기를 바랐었다. 한번 '그곳'을 경험하면 다르게 보일 세상이 겁이 났었다. 허리는 그곳으로 날 잡아끌었다. 나를 지켜줄 보호막 꿈이 아니라 건강한 신체와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경제력이라는 것 몸으로 깨달았다.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최면을 걸고 어둠을 가리고 살았던 내가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고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인지하고, 그렇기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 알았다.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서글픈 납득이었다. 좋아질 거라고 희망을 갖고 다시 부서지고, 부서진 희망을 다시 조각조각 맞췄다가, 희망에 금이 간 것을 보고 슬퍼했다가, 그래도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일어섰다. 어째서 재활은 오름차순이 아닐까. 수술리모델링한 몸에 하얀 페인트로 덧칠해버린 것처럼 어떤 기억과 어떤 감각들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도르마무 도르마무. 닥터 스트레인지가 강한 적을 만나 죽었을 때, 죽기 전으로 시간을 돌리기 위해 사용한 주문처럼, 재활은 반복-반복-반복이었다. 절없이 시간싸대기를 때리며 지나갔다.


까만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내 몸이 침대에 붙어있기 때문이겠지. 감옥 같은 몸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눈을 감고 긴 숨을 뱉는다. 졸졸졸, 쪼르르. 알람 소리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짹짹. 자연의 소리가 수영장에 갈 시간 알린다. 숨을 들이쉬고 집 밖을 나선다. 도르마무-  도르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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