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원병.
병원에 또 가야 하다니.
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병원.........
내 병의 원인을 죽도록 알고 싶었다.
형사가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은 것처럼.
*
아프고 나서 벌써 3년이 흘렀다. 수술한지는 1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수술 직후처럼 아예 땅을 딛고 서지 못한다거나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흘렀는데도 뚜렷하게 나아졌다고 할 만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한결같이 30분 이상 앉지 못했다. 표면적인 진단으로는 허리디스크가 맞지만 여전히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에 수상함을 느꼈다. MRI에 다른 증거가 남아있지는 않을까, 뭔가 다른 아픈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허리로 유명하다는 병원을 수소문하여 다녀봤지만 새롭게 발견된 것은 없었다.
여전히 오늘도 허리 통증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MRI라는 단서를 가지고 새로운 사설탐정에게 진단을 받으러 왔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시술도 하고, 약물 치료도 하고, 운동도 하고, 허리에 무리되는 건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3년이 지나도 낫지 않아요. 특히 앉을 때 너무 아파요. 어느 날은 5분도 못 앉아있겠어요."
"그럼 앉지 마세요. (MRI를 확인하며) 아직 수술하기엔 나이가 어리니 진통제 처방해드릴 테니까 한 달 뒤에 다시 봅시다."
"......"
멍해졌다. 하마터면 내가 감기 때문에 병원에 온 걸로 착각할 뻔했다. 치료의 실마리를 얻기는커녕 다음에 만났을 때 내가 봤던 의사가 맞는지 기억할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예약하고 세 달을 기다렸다. 이날을 위해 일주일 동안 꼭 필요한 활동 이외에는 하지 않고 조심하며 지냈고, 오는데 2시간, 진료 대기하는데 또 2시간이 걸렸다. 긴 기다림 끝에 얻은 허무한 대답. 아무 소득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그럼 앉지 마세요."라는 의사의 말이 징처럼 울렸다. 헛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내 머릿속은 백만 개의 물음표살인마가 활개를 쳤고 이내 용가리 불꽃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려 했다. 너무나 쉬웠다. '아프면 앉지 말고 약을 먹어라' 이렇게 손쉬운 해결책이 있나 싶다. 문제는 앉는 걸 안 하고 어떻게 일상생활을 이어가냐는 것이다. 앉아서 운전해서 출근하고, 앉아서 일하고, 점심시간에 앉아서 밥 먹고, 다시 앉아서 일하고 퇴근하지 않냐고, 심지어 선생님도 앉아서 진료를 보지 않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앉질 못하면 생계유지가 안되니까 치료를 받으려고 온 건데 앉지 말라는 기묘한 이야기를 들으니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아픈 게 죄였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고 묻더니 진료를 보고 마음마저 불편해졌다. 나아지지 않는 몸, 반복되는 진술, 똑같은 의사의 대답, 대책 없는 진통제 처방,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하다. 허탈함과 화(怒)로 가슴이 시커멓게 탔다.
한 달 후에 다시 진료를 받을 때는 이전 진료 의사 대신 인턴 의사가 있었다. 의사는 통증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전에 준 약은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으니 다른 약으로 바꿔보자고 했다. 권했던 약은 이미 내가 다 먹어본 약이었고 한 달 전에 처방받았던 것보다 더 효과가 없는 약들이었다. 결국 한 달 전 효력 없는 약으로 재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서도 답을 얻을 수 없었다. S병원 OOO선생님 글자 위로 취소선을 긋는다. 다녀볼 병원의 개수도 줄어가고 있었다. 이후에도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의사의 의견을 최선을 다해 수집한 후 결정을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병원에 갈수록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는데도 안 나으면 수술밖에는 없다'는 대답의 표본 수가 늘었다. 그렇지만 수술을 답이라고 결론을 짓기에는 어떤 의사의 말이 마음에 '턱'하고 걸렸다.
"환자분의 경우 수술을 해도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다 해봤는데 아프니까 수술을 하는 거여서 장담할 수 없어요.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다 해봤지만 안 낫는데. 수술밖에 답이 더 있나요?"
그렇다. 답이 없다. 그래서 더 괴로운 거다. 원인이 명확하면 그것만 교정하면 되는데 생각하는 원인이 맞는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안 나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김종국처럼 허리가 아팠던 사람도 런닝맨도 찍고 몇 킬로씩 무거운 것도 들면서 운동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왜 난 아직도 앉지를 못하고 이러고 있는 걸까.
사설탐정도 소용없었다. 수술이라는 결단을 계속 유예한 채로 척추 관련 카페에 들어가 보존치료와 경험담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경우를 샅샅이 살폈다. TV 속 명의도 찾았다. 그곳에 나온 허리 환자 치료법을 나에게 적용했다. 다른 질환으로 인해 허리가 아픈 사람도 있었기에 혹시 나도 다른 병이 있나 싶어 혈액검사를 했다. 불행하게도 결과는 깨끗했다. 골반과 허리가 아픈 사람도 있었는데 산부인과 치료를 받고 나아지는 것을 보고 나도 산부인과로 향했다. 용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건데도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희망이 생겼다. 그게 나의 신경을 누르는 게 아닐까 싶었고 이것만 없애면 나도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복강경 수술을 감행했다. 그러나 통증이 나아지는 흔적을 도통 찾을 수 없었다. 기대는 다정하게 날 절망으로 내몰았다. 오히려 배꼽 아래에 작은 구멍을 뚫고 공기를 넣어 뱃속에 기구를 삽입하여 용종을 제거하는 수술이라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허리만 더 아플 뿐이었다. 한 달 동안 수영장 재활도 멈춰야 했다.
포기의 수건을 던졌다. 병원에 가고 조사를 하며 내 몸으로 실험을 하고 통증이 감소되는지 알아내기를 반복하는데 지쳤다.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나 있었을까. 도대체 얼마나 더 내 몸과 화해를 해야 하는 걸까. 뭘 더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고, 더 이상 갈 병원도, 해 볼 수술도 없었다. 막다른 벽이었다. 삿갓조개 이빨처럼 단단한 장벽을 멍하니 응시했다. 이렇게 부서지는구나. 시간이 하염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막다른 길 앞에서 몇 달을 주저 누워 있었을까. 이가 없으면 틀니라도 끼고 틀니라도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지. 침대에서 스르르 일어나 다시 나를 껴안았다.
아픔이 계속될 거야. 그래도 살 거야.
아니,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아니, 그래도 살아야 해.
방금 내 옆으로 지나갔던 사람도 어제 울었던 사람일지도 몰라.
이 세상에 완벽한 치유란 게 어딨냐고 그런 건 없다고 되뇐다. 신음과 눈물, 작별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시 두 발을 땅에 딛고 통증과 함께 살 방법을 찾아 나선다. 겨울 저편의 어딘가로 향한다. 온통 안갯속이다. 먼 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