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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킴 Aug 21. 2022

5개월 경력 문과생, 공기업 연구원 최종 합격 썰

? 어떻게?

힘들었던 첫 직장을 뒤로하고 운이 너무나도 좋게도 한 달 후 두 번째 직장에 최종 합격을 했다.


이직을 확정 짓고 옮긴 소프트 랜딩이 아니었는지라 어쩌면 또 긴 기간 취준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거대한 행운이 따랐던 것이다. 


이렇게 멋있는 이직이 아니었음


두 번째 직장은 공기업인 연구원이었다. (난 평생 살면서 '연구원님' 이란 소리를 듣고 숨 쉴 줄은 몰랐다.)


B2B 서비스를 위주로 제공하는 곳이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인지도가 있는 곳은 아니었으나 정부와 긴밀히 일하기도 했고 대우가 여러모로 넉넉한 곳이었다.

확실히 누군가에겐 신의 직장이라고 불릴만한 숨겨진 곳이었다.


경력도 부족하고 문과생인 내가 어떻게 그런 곳이 취직할 수 있었을까? 

(난 어디서 채용한다고 해서 지원하면 합격하는 그런 능력자가 아니다)



지원

그런 곳에 문과 출신에 경력도 부족한 내가 입사한 것은 행운이자 미스터리였다.


그저 내가 한 것은 그냥 이름도 잘 모르는 회사의 글로벌 협력 부서에서 영어 가능자를 채용한다고 해서 지원한 것뿐이었다.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몇 없는 우대 조건이 보이면 그냥 다 지원했다)




다만 중요한 포인트는 2개 있다.



1) 정보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아 연줄도 없고 정보도 부족한 나는 누구보다 취업 시장에서 '정보의 불균형'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자 취업 카페, 사이트, 관심 있는 기업의 채용공고 게시판은 모두 즐겨찾기에 추가해서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씩 아침마다 쭉 훑어봤다.


세상에는 정보가 너무나 많아 다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정보들이 필터링해서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니 항상 라디오 주파수 맞추듯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팔로잉 해야 한다.


이 회사의 경우 '영어 가능자 우대'라는 키워드로 찾아냈다. 그것도 딱 한 군데에서만 봤다. 만약 내가 그 카페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취준을 6개월, 1년을 더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2) 자소서


이미 수백 번 탈락을 겪으며 갈고 닦인 자소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JD 분석 및  '글로벌' 단어와 '협력'단어에 집중해 준비된 자소서를 수정했다.


개인적인 경험으론, 탈락하고 자소서를 수정하고 또 탈락하고 수정을 하다 보면 서류 합격을 하나둘씩 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온다.


그때부터는 자소서에 너무나 많은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개인의 글쓰기 스킬과 경험은 이미 짜내어질 만큼 짜내어졌기에 지원하는 회사 및 포지션에 맞춰서 수정만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인적성이나 면접을 준비하는 것이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역시 0.0000001% > 0%



일단 지원하면 0%에서 조금의 찬스라도 생기고, 이는 결국 50:50이다. 합격이거나 불합격이니까.

일단 합격의 50%가 내 편이었다. 서류 합격 소식과 함께 인적성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인적성


이제 약 일주일 후에 있을 인적성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00홈쇼핑의 서류 합격 소식도 받았다.

하 근데 둘이 인적성 날짜가 같은 날 같은 시간이다. 그날이 유독 인적성 시험 보기 좋았던 날이었을까?


고민이 됐지만 찬찬히 비교해 보기로 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때 나는 '하고 싶은 일' 보다 '취업' 이 우선순위였던 것 같다. 당장 돈을 벌 수단도 없어 불안했고 오랜 취준 기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관심 갖고 일해보고 싶은 이커머스 직무를 포기하고 철저히 경쟁률과 남은 일정을 보고 00연구원의 인적성을 준비하기로 했다.


물론 시간만 허락했다면 나를 배달했을 것이다


근데 이 회사의 인적성 시험은 정말 베일에 싸여 있었다. 온갖 취업 카페를 다 뒤져봤는데도 겉핥기 정도의 정보만 있었고 대학 과제를 하며 단련된 내 구글링 스킬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공기업이 다 비슷하겠거니 하고 두꺼운 NCS 책을 한 권 사서 일주일간 풀기 시작했다.

(NCS의 올곧음(?)은 사기업 인적성보다 날 더 지루하게 했다)


어쨌든 시간은 갔고 돌아오는 화창한 토요일 점심, 나를 포함한 약 20명 정도 되는 인원은 연구원 내 교육실로 보이는 곳에서 인적성 문제를 풀었다.


바깥에선 새가 짹짹 우는데 마치 받아쓰기 글씨체가 엉망이라 나머지 공부를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잠깐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인원이 적어서 경쟁이 적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하며 문제집을 열었다.


그리고 문제집을 여는 순간 그 안심은 다 휘발됐다.



화학, 전기 등 분야를 테스트하고 연구하는 곳이라 그런지
과학 문제가 1/3 정도 차지하고 있었다.



아예 예상 밖이어서 그런지 어렵다고 느끼지도 못했고 그냥 웃음이 나왔다.

곧 정신줄을 잡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 + 과학에 흥미를 가졌었던 9학년(중3) 시절 지식을 꺼내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난이도가 무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 (내가 몰라서 문제지..)

초딩 때 배웠던 직렬, 병렬연결 문제도 나왔고 9학년 때 화학 시간에서 배웠던 원소 기호들도 나왔다.


또한 다른 문제들의 난이도도 높은 편이 아니라 절망적이진 않았다. 문제도 약 80문제로 기억하는데 시간도 충분했었다.


그렇게 잘 본 건지 못 본 건지 아리송한 인적성 시험을 마쳤다.



면접


면접 안내 메일을 받았을 때는 환희보다는 '이게 되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만큼 합격 자신이 없었다. 역시 모든 기회는 일단 최선을 다해 부딪혀봐야 한다.


면접은 일반 면접 + 영어 면접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지원자 4명 : 면접관 8명(....)으로 대규모였다.


(지원자들: 나를 제외한 3분 모두 공대 베이스였고 스펙도 다들 좋으셨던 걸로 기억(S대 석사도 있었음)

면접관들: 거대한 반원형 테이블에 대빵(?)으로 보이는 분을 중심으로 좌우로 학익진을 펼치셨다. 순간 용산 아이맥스가 생각났다)

당시 내 느낌. 둘러싸인 분들에게 금방이라도 대포를 맞을 것 같았다


면접 내용:


그냥 일반적인 인성+직무 면접이 주를 이뤘지만 마지막에는 영어 우대 포지션이라 그런지 한국어 -> 영어 동시통역 과제가 주어졌다.


종이와  펜이 준비됐고, 면접관 중 한 분이 한국어로 짧은 문단을 읽으시면 10분 내에 영어로 통역해 말하는 형식이었다.


그 과제를 하는 10분은 아마 근 2년 중 가장 집중했던 10분이었을 것이다.


특히 '천고마비'라는 단어가 나왔을 땐 잠깐 멘붕이었지만, '따개비 한문숙어'를 즐겨봤던 어린 나 자신과 '직역보단 의미'라고 외친 뇌세포 39번이 빛을 발했다. 늦게나마 이 둘에게 최종 합격의 공로를 돌린다.



나중에 팀장님께 여쭤보니 인성+직무 면접은 다 거기서 거기였으나 동시통역 부분에서 합격 여부가 갈렸다고 하셨는데, 나에게서 인상 깊었던 요소가 2가지였다고 하셨다.


1) 넘버링:

면접관들은 결국 한국 사람이고 쉽게 말해야 잘 들린다. 그래서 통역본을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눠서 한 포인트 한 포인트로 말했다.

그 부분이 딱딱 끊어져서 영어를 유창하진 않지만 잘 들렸다고 하셨다.


2) 큰 소리:

약간 긴장해서 그랬는지 평소 말투보다 크게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데 그게 자신감으로 비춰졌는지 그 부분도 좋게 보셨다고 했다.


결국 면접도 커뮤니케이션이다.
듣는 사람을 고려해 얼마나 쉽고 편하게 들리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최종 합격 및 후기


그로부터 1주일 후,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얼떨떨했지만 운이 따라준 상황에 감사했고 노력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어찌 됐든 합격을 하지 않았나!



내가 이 최종 합격 후기를 공유한 이유는 '나 운 겁나 좋아'라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어찌어찌 간신히 꼬불꼬불 합격했다.


내가 후기를 통해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정해진 루트가 없다.
그러니 사회가 강조하는 '대졸->대기업->서울아파트' 테크트리만이 경로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프레임 밖에서 생각하면 선택지는 더 넓어진다. 


5개월 경력 문과생이 연구원에서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인생은 정말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계획대로 되는 것 같지 않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재학 중 대기업의 취업설명회를 참석하고 꿈에 부풀어 지원하고 입사를 하면 베스트겠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누리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렇게 계획대로 딱딱 풀리는 경우가 더 드물다 (물론 다 부숴버리는 능력자들이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얘기한다)


그래서 비교적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사는 것이 스트레스 관리에도 도움이 되며, 인생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어떤 길인지를 고민하고, 그 길로 가려면 현재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리스트를 추려보면 '무조건 그 기업'이라는 단일 선택지보다 옵션이 더욱 넓어진다.



그리고 설령 그 선택을 해서 힘들더라도, '취준을 몇 년 하더라도 그 기업만을 갔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아무 쓸모가 없다. 원하는 기업에 합격하면 무조건 행복하리라는 생각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배울 점은 무조건 있다. 내 힘듦이 그냥 휘발되면 너무 억울하니 배울 수 있는 것들은 꼭 배워두자.


또한 그 힘듦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추진력으로 삼을 수 있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고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인간은 원래 적당히 편하면 추진력이 나지 않는다. 적정 불안은 성장에 필수 요소다)



지금 내가 있는 환경은 3년 전에 내가 고민하고 선택한 결과라고 한다.

그렇다면 3년 후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 생각을 하면 인생을 내 계획대로 살 순 없지만 온전히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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