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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킴 May 26. 2022

들으면 누구나 아는 첫 직장, 반 년 만에 퇴사했던 썰


K-취준 8개월째, 운이 좋게도 '최종 합격' 결과를 받아냈고 결국 첫 직장을 잡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약점인 '인도'가 강점이 되어 합격이 된 것이다.


당시 1곳을 최종 합격했고, 2곳에서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최종 합격한 곳은 인지도가 꽤 있는 중견기업의 해외영업이었고, 나머지 2곳은 각각 대기업 1곳, 스타트업 1곳이었다.


물론 모두 최종 합격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옵션이 골고루였다. 그만큼 고민도 깊었다.

당시 조건이었다.


고민하던 찰나에, 최종 합격한 중견기업에서 오리엔테이션 일정을 전달해줬다. 그래서 현장 분위기도 보면 결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단 갔다.


첫인상은 오묘했다. 희망적인 부분과 '이건 아닌데..?'라는 부분들이 적절히 뒤섞여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실망했던 점은 연봉 계약서를 확인했을 때였다.

야근 1시간이 처음부터 근무시간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 야근수당까지 포함한 연봉이 제시됐었던 것이다.


인사팀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일하게 될 팀을 잠시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상사 및 팀원분들이 대체적으로 젊으신 편이었고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바빠 보이긴 했지만 젊은 분위기와 성장이 느껴지는 팀이었다.



결정


결국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온 중견기업에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당시 수많은 탈락에 지쳐있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 분위기 + 해외영업 직무(인도 관련) + 누구나 아는 제품과 브랜드가 그 이유였다.


결국 했다 결정!


그래서 부랴부랴 출근하기 편한 지역에 집도 구하면서 본격적으로 첫 직장 준비를 했다.

이제 직장과 집을 다 구한 멋진 (민간) 사회인이 되었다.

회사만 잘 다니면 되었다.


입사


'회사만 잘 다니면 되었다'라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참 많았는데 회사, 팀 문화까지도 나의 가치관과 참 많이 달랐다.

문화는 회사가 어떻게 경영되냐에 따라 리더가 방향을 정하고 구성원들이 그에 맞춰 만들어나간다.


철저히 수직적인 소통 방식을 고수하고 힘든 일은 담배로 삼키는 문화는 안 그래도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조심스러웠던 나를 더욱 위축시켰다.

(게다가 난 비흡연자다)

더 위축되자 꼼꼼히 챙겨야 하는 업무에서 실수도 하게 됐고, 혼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특히 제조업 특성상 한 단계가 완벽히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Loss를 최소화할 수 있다.


*Loss 예시: 내일 수출해야 하는 제품이 아직 생산이 되지 않았는데 수출용 컨테이너는 이미 예약이 완료됐다든지, 수출용 제품 박스에 국내 정보가 찍혀 나와 같은 배경색의 스티커를 일일이 수제로 붙여야 한다든지 등 웃지 못할 일들)


그러다 보니 '초집중' 소위 빡센 분위기가 정착됐던 것 같다.


또한 면접 때 주구장창 인도 관련 질문을 받았고 관련 이력 때문에 입사를 했는데 정작 아닌 다른 업무를 배정받아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물론 리더가 알아서 잘 배정해 줘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신호 & 결심


꾸역꾸역 잘 참고 하는 스타일인(혹은 속으로 혼자 삭히는) 내게 고맙게도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줬다.


침 삼키기조차 두려울 정도의 고통이 목에 느껴졌을 때, 단순히 편도선이 부은 것이 아닌 것 같아 겨우 일찍 퇴근해 병원을 찾아갔다.


목젖에서 기도로 가는 부분이 크게 부어올랐다며 미련하게 왜 이제 왔냐고 의사 선생님한테 혼났다.

(자칫하면 자다가 기도가 막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단다)


뭘 잘못 먹었나 사유를 여쭤보니 '스트레스성'이라신다. 그래서 더 이상 여쭤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부은 부분을 째고 고름을 짜냈다. 눈물이 다 났는데 목젖 밑을 건드려 그런 건지, 너무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서러워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시술을 무사히 끝내고 잠시 링거를 맞으며 잤다. 약 한 시간이었지만 근 반 년간 가장 질 높은 숙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의사 선생님께서 긴급상황일 때 연락하라며 주신 연락처를 받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이 연락처는 꼭 쓰지 않으리라'라는 결심과 함께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팀 리더께서는 퇴사 대신에 다른 팀 이동은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결국 퇴사는 회사와 나 둘 다 윈-원이었던 것 같다.


회사 입장에서는 함께 일할 수 있는 잘 맞는 누군가에게 줄 급여가 다시 생겼고, 나는 다음 방향성을 정할 때 도움이 되는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했다 퇴사


마지막 날까지도 후회가 없었던 것 보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깨달음


1) 생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 소비자에게 익숙한 제품과 브랜드는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자(기업)의 쪽에 서게 된다면 다른 이야기다.

소비자의 관점보다 생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산업,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덕분에 지금도 배송이 빠르게 오면 편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분들의 빡센 노동에 걱정이 된다. 그리고 서비스에 대한 조금의 불편함은 넘어갈 수 있는 약간의 너그러움도 장착된 것 같다.



2) 위로 쉽게 해주지 않기


- 같은 상황이라도 개인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고 감정이 같더라도 그 '농도'는 다르다.


당시 내 상황을 "회사 다니기 너무 힘들어"라는 말로 밖에 표현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고,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의 "회사 다니는 게 다 그런 거야. 조금만 참아"라는 답변도 답답했다.


그래서 이제는 남을 쉽게 위로해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완벽히 공감도 되지 않은 상태로 무심코 한 위로가 오히려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용기를 주는 방향으로 소통하려고 한다)




돌아보자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애매한 강도(?)으로는 못 느꼈을 깨달음을 준 어찌 보면 고마운 경험이다.

덕분에 지금 더 잘 살고 있고, 앞으로도 더 잘 살 교훈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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