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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킴 May 07. 2022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었던 나, K-취업 시장에서도?


인도에서 외국인은 카스트가 없다. 즉 불가촉천민(Out cast)이다.

물론 요즘에는 외국인이 그런 취급을 받을 확률은 낮다. 특히 더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에게는.


나 또한 신분은 불가촉천민이었다. 하지만 그럭저럭 잘 지냈다.

같은 반의 브라만과 술잔도 부딪히기도 하고 지갑을 깜빡한 크샤트리아의 점심을 사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졸업 후 귀국하고, 군대를 제대하고 취업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때,


어쩌면 나는 이 취업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없는 불가촉천민이 아닐까?


라는 인도에서도 하지 않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기업이 채용하는 프로세스는 크게 자기소개서, 인적성 테스트, 면접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솔직히 면접만 그나마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나머지는 '절망'이었다.


국문 자기소개서는 초등학교 숙제로 써본 것이 마지막이었고 인적성 테스트에서는 절대 인생을 바꿀 것 같이 생기지 않은 문제들이 즐비했다. 

(자기를 소개하는데 왜 10년 후 포부를 써야 하고, 왜 종이를 접고 구멍을 뚫고 다시 펴서 구멍의 위치와 모양을 맞춰야 하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대학도 휴학이 안되어 졸업 먼저 하고 군대를 갔다 온지라, 이런 정보를 알 생각도 못했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대학생 때부터 학교와 선배들로부터 이런 정보들을 입수해 성실히 준비해온 한국의 취준생들에게는 게임이 될 리가 없었다.


뒤늦게 시급함과 간절함으로 무장해 혼자 검색해가며 취업 스터디를 구해 자소서도 서로 첨삭했고, 인적성 문제집도 몇 권씩 사서 풀었고 기업들의 취업설명회도 열심히 나갔다.

(사전 두께의 인적성 문제집을 몇 권씩 가방에 메고 다닐 때면 취준생의 무게가 느껴지곤 했다)


한 대기업의 취업설명회의 Q&A 세션에서 있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취준생 A : 지원서에서 특별히 보는 항목이 있으실까요? 학점이라던지..
채용담당자: "아니요 ㅎㅎ 특별히 없습니다. 학점이야 그냥 3.0만 넘으면 됩니다.

그 답변에 누군가는 웃고 넘겼고,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의 학점은 2.87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때까지 몰랐다. 그게 그렇게 인생에 발목을 잡을 만큼 낮은 학점인 줄은..

내 대학 동기/선배들이 100을 곱해도 본인 발 사이즈보다 낮은 학점으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에 턱턱 취직을 하는 모습만 봐왔기 때문이다.

(인도와 한국의 상황이 많이 다름을 인지하지 못했고 물론 학업에 소홀했던 내 탓도 크다. 책상 바깥세상을 더 탐험했다고 하자 하핫)


게다가 인도에서 공부한 특이한 이력도 나를 더욱 마이너한 존재로 만들어줬다.


기업의 웹사이트 내에서 지원서를 작성하다 보면 학력 기입란에 대학 이름을 입력하게 되어있는데, 미국이나 유럽 대학은 알파벳을 입력하면 드롭다운에 착 뜬다.

하지만 나는 '기타' 혹은 'others'를 선택하고 수기로 작성해야 했다.

적어도 학교 이름은 영어니 제발 미국 대학으로 착각해 뽑아달라는 작은 소망과 함께.


졸업한 대학은 인도에서는 명문이었지만 국내에서는 알리가 없었고 내가 겨우 두 번째 한국인 졸업생이었다.

(학점 2.87의 말을 믿기 힘드시겠지만 고등학생 때는 인도 수능을 친 외국인 최고 기록을 세우고 대학을 갔을 정도로 열심히 했었다)


이렇듯 당시 나의 상황은 정말 환장의 콜라보였다.

구멍 뻥뻥 투성이인 자소서와 인적성 + 낮은 학점 + 인지도 낮은 국가의 유학생


이런 나는 어떻게 취업에 성공하고 한국 사회에 안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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