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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의 삶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는

by 숲속의조르바




그저 열심히,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몇 개월의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는 설정은 꾸준하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꽤나 단골로 나온다.


주인공이 시한부를 판정받고 난 후의 장면에 등장하는 대사들도 얼추 비슷하다. 아무 잘못 없이, 그저 열심히 살아온 것 밖에 없는데 왜 하필 자신이고, 너무 미련하고 바보같이 살았다는 후회의 말들을 폭풍 눈물과 함께 쏟아낸다.


그리고 그런 시한부의 상황에서 그들은 거의 비슷한 행동들을 한다.


평생 꿈만 꾸어온 여행을 하거나, 누려보지 못한 사치를 아낌없이 한다. 스스로 가장 각박하게 대했던 소중한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행동을 한다. 마음은 있었지만 돌볼 수 없었던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돈의 가치는 무의미해진다. 당연히 아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의 가치가 급상승한다. 1분 1초가 천금 같아진다.


비련의 주인공만 시한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아직 병원을 안 가봐서 정확하게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시한부인 것은 확실하다.


최대로는 아마도 30년쯤 될 것이고, 최솟값은 몇 개월 이내일 수도 있다. 지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인간 모두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제껏 쭉 살면서 본인이 시한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영화에서는 주로 6개월, 3개월을 주로 이야기하는데 어느 정도의 기간이 남아야 시한부라고 인정을 해줘야 할까? 10년 20년은 헛소리쯤으로 치부될까?


예전에 이런 농담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남자가 의사에게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 선생님 제게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죠?”

“ 십…”

“ 십 개월이요?”

“ 구.. 팔.. 칠.. 육..”


분당 정자역 어느 건물 창에 큼지막한 디지털시계가 있는데 1/100초까지 표시가 돼서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는 기분을 종종 느낀 적이 있다. 그런데 시한폭탄의 남은 시간을 알리는 시계와 정자역의 시계와 내 시한부의 시계는 모두 동일한 속도로 흐르고 있을 것이다.


도망칠 수 없는 시한부의 삶이다. 잊지 말고 살아가야겠다.


그런데 딱히 슬프지는 않다. 모두가 같은 신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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