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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긍할 수 없는 이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

by 숲속의조르바


골프에 빠진 사람들에게 골프가 재밌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종종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본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재밌어.


어려워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재밌다는 것이다. 나는 영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재미가 없는데 말이다.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그럴 땐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어려워서 재미가 있는 거면 공부가 그래야지. 공부도 뜻대로 안 됐을 텐데 그건 왜 재미없어하고...."


수십 년 골프를 친 분이 나름의 철학을 전하신다. 골프를 쳐보니, 욕심을 낼수록 안 되고, 어느 날 좀 잘 됐다고 자만하고 연습을 안 하면 그다음엔 엉망이 된단다. 힘을 빼고 가볍게 쳐서 잘 맞으면 다음 홀에서는 영락없이 더 멀리 보내려고 힘이 들어가서 공이 잘 안 맞는다고 한다.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문득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꾸준하게 연습을 하고, 욕심을 버리려 마음도 먹어보고, 힘도 빼보려는 노력 하며 목표한 단계에 이르고자 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며 재미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연습도 하지 않고 티비에선 본 대로 공이 빨랫줄처럼 쭉쭉 멀리 나갔으면 하는 욕심에 채를 세게 휘두르기만 하니 당연히 제대로 맞지 않고, 그래서 더 재미를 못 느꼈던 것 같다.


이대로는 골프가 재밌어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재미있을 수는 있는 나름의 방법을 궁리해 봤다.


골프를 낚시로 바꾸어보니 어느 정도 감이 왔다. 낚시를 다니는 사람에게 그 지루한 걸 왜 가느냐고 물으면 손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입질과 손맛을 기다리는 재미, 그 짜릿한 손맛을 또 느끼고 싶어서 인 것이다. 낚시에서는 느껴 본 손맛을 골프에선 느껴보지 못해서 재미를 못 찾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제대로 맞는 짜릿한 손맛을 느껴보도록 해봐야겠다.




그리고 한때 골프라는 스포츠 자체가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것도 같다. 꾸준히 연습을 하지도 않고 잘 맞기를 바라는 요행꾼이자 골프를 못 치는 자가 만들어 낸 변명의 논리일 수도 있다.


스포츠나 게임의 바탕, 기본 규칙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같은 규칙 하에서,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 혹은 재능, 팀 워크 등이 승부를 갈라놓는다. 축구나 농구 야구 같은 프로 스포츠에서는 돈이 많은 구단일수록 잘하는 선수를 비싼 값에 영입해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경기장 안에서 적용되는 규칙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런데 골프는 세상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실력이야 어떻든 장비가 비쌀수록 좋다.
좋은 코치에게 레슨을 많이 받을수록 일취월장한다.
실전을 많이 해 볼수록 잘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골프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즉 돈을 쓴 만큼 더 좋은 실력을 가질 수 있기에,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유리한 스포츠다.


룰 자체도 그렇다. 위에서 말한 자본의 투여가 상대적으로 많이 된 사람이 실력이 더 좋을 가능성이 높다.


골프의 룰은 첫 홀에서 가장 점수가 좋은 사람이 다음 홀부터 먼저 친다. 그리고 가장 거리가 적게 나간 사람부터 다음 공을 치게 된다. 실력이 좋은 사람은 멀리 보내 놓고 느긋하게 뒤에 있는 사람이 치는 동안 다음 공략을 구상할 수 있고 숨도 고를 수 있다. 뒤에 처진 사람은 더 분주할 수밖에 없다.


앞서 친 사람의 공을 보고 바람과 잔디의 속도와 굴곡도 파악할 수 있다. 프로들 경기처럼 카트가 없는 경우라면 쉽게 그 상황이 이해가 간다. 약자를 배려해서 핸디캡을 주기도 하지만 절대 약자가 유리한 만큼은 주어지지 않는다. 세상 불공정한 게임 임이 분명하다.


자본적 여유뿐 아니라 재능과 끈기까지 없는 나의 항변이다.


골프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굳이 찾아보자면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을 동반자로 불러 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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