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약효

떠남의 거리

by 숲속의조르바


나는 도망을 잘 친다.


어느 곳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가능한 한 멀리 떠난다. 떠난다기보다는 도망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된다.


괴로움의 발발지로부터 가능한 가장 먼 물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먼 곳으로 여행한 이력이 조금 있다. 그런데 결국 내 마음은 놓고 가지 못했기에, 그곳이 아주 먼 사막의 깊은 속에서든, 까마득히 높은 몽블랑의 정상쯤이었던 곳에서도, 아일랜드의 절벽 앞에서도 결국 같은 강도의 괴로움을 느껴야만 했다.


괴로움의 진원지를, 불덩어리를 그대로 품고 간 탓이다.


위험하다고 느낄 때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는다는 타조와 같은 형국이다. 미련하기 그지없다. 유체이탈을 하듯 도망쳤어야 하는데 말이다.


주변에서는 흔히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실로 그 약의 효과는 확실했다.

그렇지만 약발이 먹히는데 꽤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리적 거리를 띄우기보다 마음의 거리 두기, 마음의 이격을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