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씀 Oct 07. 2024

당신의 첫 음식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첫 음식의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첫 맛 혹은 첫 음식을 기억하시나요?


제 생의 첫 풍경이자 첫 맛의 기억은 한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5살 때의 기억이에요. 그때 저는 아침에 엄마와 함께 유치원을 가는 중이었고요. 그날은 제가 유치원 친구들 간식을 챙기는 날이라, 엄마 손에 초코파이와 요구르트가 한가득이었어요. 덕분에 저는 아침부터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를 양손에 들고 먹고 마시며 유치원에 걸어가고 있었죠. 참 달콤하고 맛있었던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기억이 꽤 강렬했는지 지금도 마트에서 초코파이 상자를 보거나 요구르트를 보면 유치원 때 생각이 나요. 가끔 먹으면 '이게 내 추억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이후로 평범하게 삶을 살아왔다면 저의 첫 번째 맛은 5살 때뿐이었을 텐데요. 저는 크론병을 확진받고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적이 있거든요. 한동안 수액에 의지하며 물 한 모금까지도 먹지 못한 채로 살다가, 차츰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처음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의 기억도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한 달 만에 맛을 느꼈을 때의 기억도 저는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나는 크론병을 통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선물 받았구나



맛에 대한 기억으로 삶을 나눠보면요. 제 인생은 5살 때 초코파이와 요구르트를 먹으며 시작되었고요. 크론병을 얻고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또 한 번 시작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인생의 2막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사실 크론병을 막 진단받을 무렵에는 음식에 대해 크게 욕구가 없었어요. 장에 염증이 많아지고, 궤양이 생기고, 구멍까지 생기면서 심한 통증과 함께 병원에 입원했거든요. 체온은 항상 39도 이상으로 펄펄 끓는데 약물 치료만 기약 없이 하면서 한 달 이상을 누워있었어요. 내일 당장이라도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말만 오래 들었고요. 당연히 밥은 먹지 못했고 영양제 주사로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그때 측정했던 몸무게가 50kg 초반이었는데 당시 사진을 보면 정말 앙상해요.



항생제 주사와 해열제, 크고 작은 시술을 거치며 시간이 흘렀고 신기하게도 몸은 다시 건강해졌어요. 적어도 병원에 입원하기 전 몇 달간 고생했을 때보다는 훨씬 좋았어요. 열도 오르지 않고, 배도 아프지 않았죠. 그때서야 저는 다시 입으로 음식 먹는 것에 도전했어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것이란 걸 깨달았어요.


첫 음식은 병원에서 만든 저잔사식이었어요. 건더기 없는 흰 쌀죽에 동치미 국물 그리고 찐 생선 한 조각. 흰 쌀죽을 숟가락으로 살짝 떠서 조심스레 입에 넣었어요. 옆에 작은 간장종지가 있었지만 일단 죽부터 시도했죠. 그때 깨달은 사실이 '쌀이 이렇게 달콤하고 고소하구나'라는 거였어요. 정말 맛있더라고요. 뭉근하게 끓인 쌀의 달짝지근한 맛과 짭조름한 생선살, 새콤달콤한 동치미 국물은 완벽한 조합이었어요. 고작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뿐인데 기분까지 좋아지더라고요.



흰 쌀죽으로 구성된 드림팀을 통과하자 조금씩 다양한 종류의 부드러운 음식들이 나왔어요. 두유, 카스테라, 포카리스웨트 등 원래도 좋아하던 것들이었죠. 사실 기약없는 병원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한 막막함에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요. 먹을 수 있으니 힘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정말 단순하게 음식을 먹는 것뿐인데 마음에 힘이 난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이제는 걸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좀 더 지나면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고요.









저는 지금도 제가 입원했던 병원을 다녀요. 8년 정도 지나니 제가 다녔던 병원의 빵집이나 식당의 모습은 꽤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일부러 병원 빵집에서 카스테라를 사 먹으며 입원했을 때를 추억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져서 비슷한 느낌은 나지 않지만요.



생각해 보면 크론병을 얻은 뒤 제가 먹은 모든 음식은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크론병 환자들에게 음식을 잘못 먹었을 때 오는 복통은 생각보다 더 세게 아프거든요. 한동안은 음식을 먹는 게 무서울 정도였어요. 다행히 지금은 제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재료도 확실히 알고요. 예전보다 더 다양한 재료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이렇게 도전했던 기록들을 브런치에도 남기고 있고요.



이제는 음식을 먹는 게 무섭지 않아요.



지금의 제게 음식은 행복이자 추억이에요. 건강해지는 시점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많은 추억을 쌓았거든요. 그만큼 살도 쌓였고요! 그렇게 앙상했던 제가 지금은 오히려 다이어트 중이네요. 하하.



이번 브런치북 '이건 먹어도 아프지 않을까요?'를 쓰면서 스스로도 얻는 것들이 참 많았는데요. 저와 비슷한 병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저처럼 맛있는 것 먹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크론병을 얻은 제가 음식에 도전했던 기록은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이전 이야기는 아래 브런치북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어요.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