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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02. 2024

한식사랑 아내를 위한 우리집의 김치 샐러드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주부 남편입니다

김치는 없어?

연애 시절, 아내가 저의 자취방 냉장고를 처음 열어보고 한 말이에요. 당시 제 냉장고 안에는 방울토마토, 단무지, 사과가 전부였거든요. 그 당시 저는 오랜 크론병 관리로 음식에 대한 공포가 컸어요. 그래서 '먹어도 안 아픈 안전한 음식'만 엄선해서 먹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김치가 발효되는 냄새를 싫어했어요. 그래서 냉장고 문도 잘 열지 않았고요. 간혹 가다 우유에 냉장고 냄새가 베어들면 먹지 않고 버리기도 했어요. 한식에 '갖은 양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온갖 양념에 버무린 한식의 냄새가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렇게 양념이나 발효된 음식 냄새를 힘들어했던 것도 저의 '소화기관 건강'과 연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친구, 지금의 아내는 한식을 너무 사랑했어요. 그래서 아내가 제 자취집에 오기 전이면 마트에서 아내를 위한 김치를 미리 사뒀어요. 아내는 '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거든요. 저 혼자 살면 평생 한식을 안 먹어도 되겠지만, 아내와 함께라면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크론병 환자이면서 한식을 싫어하는 저도 먹을 수 있고, 아내도 먹을 수 있는 "우리 집 김치" 도전. 저는 인터넷 검색과 유튜브를 통해서 '김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김치란 무엇인가?

김치 레시피를 찾다 보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아요. 근데 또 그렇게 준비하다보면 재료값이 만만치 않고요. 결국 "이러면 사 먹는게 저렴하겠다..."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그럼 다시 원점이죠. 이렇게 고민만 깊어지고 김치의 무게감에 짓눌리던 어느 날이었어요. 우연히 유튜브에서 백종원 아저씨가 김치 담그는 영상을 보게 됐어요.




세상에. 고추가루, 마늘, 소금. 제가 찾던 김치의 최소단위였어요! 그리고 알게 됐죠. 제가 김치에서 힘들어하던 냄새와 맛은 '젓갈'이었어요. 젓갈이나 액젓이 삭혀지면서 나는 냄새와 맛이 저를 힘들게 했던 거죠. 그럼 젓갈과 액젓을 빼고 김치를 만들면 될 일이잖아요.



또 김치의 최소단위를 알게 된 뒤에 떠오른 생각인데요. "야채에... 양념을 버무려 먹는다...? 이거 샐러드랑 다를 게 없잖아!" 생각을 달리 바꾸니 간단하게 보면 김치는 샐러드와 다를 게 없었어요. 냉장보관해서 먹으면 피클이랑 다를 게 없을 것 같았고요. 제 머리 속에 '김치=샐러드=피클'이란 생각이 정리되고는, 샐러드나 피클처럼 아삭! 상큼! 김치를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한식파 아내를 위한
크론병 환자의 김치 샐러드



1. 김치의 시작 : 절이기

배추와 무를 소금에 절입니다. 시간 여유가 많을 때는 포기 째 배추를 절이기도 하지만요. 보통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썰어 둔 배추를 소금에 절여요. 한 2시간 정도 절이면 배추가 말랑해지고 꺾어도 부러지지 않는 정도가 되는데요. 그럼 다 절여진 거에요. 소금물을 깨끗이 씻어내어 배추의 짠맛을 줄여주면 절이기는 끝입니다.




2. 김치의 핵심 : 양념 만들기

가장 중요한 우리집 김치 양념 만들기인데요. 아무래도 고정관념을 버리는게 좋아요. 저희 엄마도 "김치에 새우젓이라도 조금 들어가야 맛있을텐데..."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근데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저는 김치의 3요소 (고춧가루+마늘+소금)에 제철 과일을 넣어요. 그냥 마트에 가서 그 시기에 가장 저렴한 과일을 구매하죠. 사과 혹은 천도복숭아도 넣어봤고요. 배도 넣어 봤어요. 근데 조금 새콤한 과일을 넣는 게 좋기는 하더라고요. 이 재료를 믹서기에 넣고 갈아요. 그럼 김치양념도 완성입니다.




3. 김치의 탄생 : 버무리기

절인 배추와 양념을 버무리면 일단 김치는 완성이 됩니다. 만들자마자 바로 먹으면 마늘의 알싸한 맛이 매콤하긴 하지만 과일의 상큼함이 그대로 느껴져서 꽤 맛난 샐러드 같은 김치가 만들어져요. 한 번은 바로 만든 김치에 수육을 곁들여 먹은 일이 있는데요. 정말 상큼하고 맛나더라고요. 진짜 맛있었어요.




4. 김치의 완성 : 숙성

저는 익은 김치 냄새를 싫어하는데요. 젓갈과 액젓을 뺀 저희 집 김치는 냄새가 거의 나질 않아요. 마늘 냄새가 조금 나긴 하지만 역하다는 느낌은 없고요. 오히려 익을수록 피클처럼 상큼하고 시원한 김치가 되더라고요. 저희집 김치 꽤 맛있습니다.


저희 아내는 전라도 전주 사람이에요. 음식에는 꽤 엄격한 편이죠. 근데 그런 아내도 제 김치를 아주 맛있게 먹어요. 오히려 이제는 '전주 김치 너무 간이 쎄다'며 제 김치를 더 좋아한다니까요.



우리집 김치 만드는 모습








크론병을 앓게 된 후, 저는 이제 평생 못 먹는 음식만 가득할 줄 알았어요. 아마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김치와 한식은 평생 거들떠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요. 한식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나면서 크론병에 갇혀 있던 제 세상이 넓어지기 시작했죠.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 그리고 함께 먹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다보니, 생각보다 크론병 환자도 매우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더라고요.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같은 식재료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크론병 환자도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레시피는 재료의 맛을 극대화하는 방법의 조합일 뿐이에요. 재료의 맛을 잘 끌어낼 수 있으면 그 자체가 레시피인 것이고요. 뭐... 소금이 몇 그램, 후추가 몇 그램 이런건 중요한게 아니에요. 자유롭게 요리하세요"


언젠가 음식에 관해 읽은 글에서 감명깊었던 문구인데요. 크론병이 있음에도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없는 지금 보니 조금은 더 와닿는 느낌이에요. 모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자신의 건강에 맞는 레시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모든 분들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건강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 거고요 :)




 본 브런치북에는 제가 겪은 크론병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몰라서 아팠던 저의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작가 구독을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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