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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16. 2024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아프지 않으려고요

커피는 못 참지

스무 살의 어느 여름,
처음 아이스 캬라멜 마끼아또를 먹었어요.


당시 친한 누나가 오픈한 카페에서 만들어 준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가 저희 첫 커피였는데요. 시원하고 달콤하고 쌉싸름한 에스프레소가 너무 맛있었어요. 그 뒤로는 매일 커피를 마셨던 것 같아요. 그때 물가로 커피 가격은 꽤 비쌌지만, 커피를 처음 접한 제게는 밥보다 커피가 더 맛있었어요. 밥은 못 먹어도 커피는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았죠.



처음에는 달콤한 커피 위주로 마셨는데요. 곧 원두에 따라 달라지는 아메리카노의 매력에 빠졌어요. 원두 본연의 맛을 느끼기 좋은 핸드드립은 신세계였고요. 원두의 맛을 찾아다니다 보니 결국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졸린 아침에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살짝 넣어 마시면 짜릿하고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너무 좋았거든요.





원두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맛이 좋아서 외국에서 먹는 커피도 좋아했어요. 커피콩을 직접 재배하는 산지도 있고 나라마다 로스팅 방법도 조금씩 다르니까요. 솔직히 남미와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마셨던 커피는 다 실망했거든요. 카페 분위기도 우리나라가 더 좋았고요. 근데 베트남, 태국, 일본에서 마셨던 커피들은 다 특별했어요.



일본은 킷사텐이라는 커피 문화가 있어서 가게마다 다른 분위기에서 커피를 마시는 즐거움이 컸고요. 베트남은 특유의 커피 문화가 발달한 나라더라고요. 베트남만의 진하고 고소한 로부스타 원두는 지금도 정말 좋아합니다. 그리고 태국에서는 얼음이 녹아도 맛이 변하지 않는 농축된 에스프레소와 바리스타들의 정성스러움이 너무 좋아서, 만약 나도 카페를 한다면 태국에서 연수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고요.



다시 돌아보면 저는 갈수록 강한 커피를 찾아다녔네요. 지금도 저는 커피를 꽤 진하게 마셔서 아내의 걱정 어린 잔소리를 들을 때가 많거든요. 작게나마 변명해 보자면, 저는 커피나 카페인 음료를 마셔도 잘 자거든요. 뭔가 번쩍하고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정말 바로 잠들어요.



커피를 마셔도, 바카스를 마셔도, 레드불을 마셔도 화장실만 자주 갈 뿐 너무 잘 잠들어서요. 대학생 시험기간 때는 레쓰비만 마셔도 잠들지 않고 공부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그렇게 카페인을 늘려가다 보니 더 강한 커피에 중독된 것 같아요. 레드불 같은 음료는 더 진하게 만들어 마실 수가 없잖아요 :)








강한 커피를 좋아하는 제가 위장이 약한 건 운명의 장난일까요? 어릴 때부터 저는 복통이 심한 날이 많았고, 가끔은 먹은 음식을 다 게워내기도 했어요. 위출혈 증상도 겪어봤고 위염으로 약도 자주 먹었고요. 하지만 아프고 나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건강해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어린 마음에 '나는 괜찮다'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저의 생각도 변하는 게 겨울이었어요. 겨울이면 배가 더 자주 심하게 아팠어요. 정말 겨울이면 "이러다 무슨 일 생기는 것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복통이 심했어요.



그런데 겨울에도 커피는 마시잖아요. 겨울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배에서 싸한 느낌이 올 때가 있었어요. 뭔가 배가 더 서늘해진 것 같고, 복통이 시작되는 것 같은 신호가 느껴질 것 같고. 그럼 100% 복통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때도 "내 몸에 커피가 안 맞나?" 혹은 "겨울에는 커피를 마시면 안 되나?" 등의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잦은 외근과 야근을 핑계로 커피를 줄이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더 마시면 더 마셨죠.



저는 아픈 것에 좀 무딘 편이에요. 한번 아파도 모르고, 두 번 아파도 몰라요. 심하게 아프거나 죽을 뻔해야 '아, 이건 먹으면 안 되는구나'하고 아는 수준이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원시인 생존법으로 살아온 사람 같아요. 괜찮으면 넘기다가 죽을 만큼 아파야 학습하는 원시인처럼요.



의사 선생님들이 주로 하시는 말씀 중에 "커피 줄이라..."가 있잖아요. 사실 저도 자주 가던 병원에서 주치의 선생님께 자주 듣던 말이거든요. 근데 인터넷으로 카페인이 왜 안 좋은지 아무리 찾아보고, 제가 여러 번 아파도 이해 못 했어요. 그러다 몸이 심하게 아프고, 크론병을 얻고, 뭘 먹어도 아픈 몸이 되어서야 깨달았죠. "아, 커피 마시면 안 되겠구나"



제가 좋아했던 디카페인 보리커피에요.



크론병 확진을 받은 뒤로 2년 정도 커피를 마시지 않았어요. 대신 차(茶)를 마셔보기도 했는데요, 차는 도무지 무슨 맛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차에도 커피처럼 카페인이 들어있었고요. 어떻게든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보리를 볶아 만든 '디카페인 보리커피'도 마셔봤는데요. 이건 나름 커피와 비슷하게 씁쓸하고 고소해서 꽤 오래 마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직도 기억해요. 커피를 끊고 2년쯤 되었을 때 긴장반 설렘반으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의 맛을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고 정신이 말똥해지는 게 2년 만에 잠이 깬 기분이었어요. 크론병 확진받고는 평생 커피를 안 마실 생각이었는데, 역시 아프지 않고 괜찮아지니까 다시 마시게 되더라고요.








지금의 저는 하루에 딱 한 잔의 커피만 마십니다. 매일 아침 모카포트로 직접 내린 신선하고 고소한 아메리카노 한 잔. 그리고 밖에서는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 솔직히 제가 만든 커피가 제일 맛있기도 하고, 바깥 커피들은 너무 비싸기도 하고요 :)



크론병 환자이지만 제 일상과 여행에는 커피가 너무 큰 즐거움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커피를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고요. 대신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유지하려고 해요. 몸에 무리가 있다면 커피와 잠시 멀어질 마음도 필요하겠죠. 크론병이라 못한다기보다 잠시 안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잖아요.



아프다고 너무 많이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저는 건강하게 살 겁니다 :)




 본 브런치북에는 제가 겪은 크론병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몰라서 아팠던 저의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작가 구독을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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