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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씀 Sep 23. 2024

밀가루가 안 좋다고요? 그럼 서양 환자들은요?

밀가루는 정말 먹으면 안 되는 걸까요

맨날 햄버거 먹고 몸에 안 좋은 것들만 먹어서 그런 거 아니야?


크론병 초기, 장에 구멍이 생기는 천공으로 입원했을 때의 기억인데요. 할머니께서 제 병문안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에요. 크론병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라서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아프고 보니 다 제가 잘못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뉴스에서도 서구화된 식습관이 문제라는 내용이 자주 나오고, 친구들도 심심치 않게 밀가루나 햄버거는 몸에 안 좋으니 줄여야겠다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 생각. '그럼 서양의 크론병 환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거지?' 분명 서양인들은 밥이랑 김치가 주식이 아니잖아요. 언젠가 TV에서 서양 산모들이 출산 후 토스트와 치즈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제가 유럽에 갔을 때만 해도 식사에 곁들여 나오는 탄수화물은 빵 아니면 감자요리였고요.



크론병은 서양에서 먼저 발견되고 더 흔한 병으로 알고 있거든요. 그러면 크론병에 있어서는 서양이 선배인 거잖아요. 그래서 더 나은 건강관리 방법이나 식단, 노하우가 발전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저는 서양 크론병 환자들은 무얼 먹고 사는지 알아보기로 했어요.








저는 Crohn's disease meal이라고 검색했는데요. 약 8년 전에 찾은 것들이라 기억이 흐릿하지만 딱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어요. 크론병 환자의 추천 식단에 핫초코와 샌드위치가 포함된 것인데요. 왠지 그때의 저에게 핫초코와 샌드위치는 먹으면 안 될 음식인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무조건 서양식단이 몸에 안 좋다는 건 편견일 수 있겠다.



한창 활동기였던 시기, 저는 서양인들의 식단을 찾아보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그 뒤로 저는 무조건 양식을 배척하지도 않았고요. 한식이라고 무조건 건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좋은 음식이니 먹으라 권해도 '정말 이 음식이나 약재가 나한테 좋을지' 스스로 판단하는 습관도 가지게 되었고요. 지금도 특정한 음식이 몸에 나쁜 게 아니라, 음식 재료와 조리 방식에 따라 건강에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저는 크론병이 한창 심했던 활동기에도 제가 소화시킬 수 있는 음식은 다 열심히 먹었어요. 제가 키는 174cm인데 당시 몸무게는 50kg 초반이었거든요. 그때 처음 먹었던 음식은 당연히 죽이었고요. 스프도 진짜 많이 먹었어요. 사실 스프에는 버터와 밀가루가 들어가서 먹으면 안 되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고부터는 스프도 먹고 카스테라도 열심히 먹었어요. 제 입맛에는 죽보다 스프가 더 잘 맞기도 했고요. 살기 위해 먹다 보니 의외로 맛있어서 입맛이 돌기 시작했고, 활력을 찾아가며 크론병 활동기를 버텼던 것 같아요.



그때 먹었던 카스테라가 진짜 맛있었다는 기억이 남아있어서일까요. 다른 걸 먹을 수 없어서 먹었던 스프와 카스테라는 지금도 좋아하는 메뉴예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쌀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고요. 점차 외식도 하게 되면서 바깥 활동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들 수 있었어요. 오랜만에 햄버거와 피자를 먹던 순간의 맛은 잊을 수가 없네요. 하하.








크론병 초기에 해외 크론병 사례를 찾아보면서 얻은 게 정말 많아요. 해외 크론병 환자들의 식단 정보를 보면서 음식 선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어요. 아마 그 자료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한식이 최고야' 혹은 '흰 죽만 먹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어요. 또 평생 '내가 젊은 날 햄버거, 피자를 너무 먹어서 크론병 환자가 되었다'라며 자책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고요.



식단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어요. 생각보다 크론병을 갖고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구독자 3.1억 명의 유명 유튜버 '미스터비스트도, 현재(2024년 9월 기준)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소속 선수인 세르딕 멀린스도, 박지성과 함께 뛰었던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소속 선수였던 데런 플레쳐도 크론병 환자라고 해요. 다들 세계 최고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사람들인데, 그들 앞에서 크론병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제 몸이 크론병을 얻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정보를 얻어야 할지 몰라서 인터넷을 검색하면 크론병에 관한 무서운 자료들만 가득했고요. 우연히 떠오른 고민 덕분에 시야는 넓어졌고, 앞으로의 내 삶이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어요.



적어도 크론병에 있어서는 아는 것이 힘이 맞는 것 같아요. 먹을 수 있는 것을 알아야 먹고 힘을 낼 수 있잖아요. 크론병 식단에 대해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이 잘 맞는 식단을 찾으시길 응원합니다. 분명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크론병 환자분들을 위한 추가 정보
이번 글을 적으면서 다시 한번 크론병 식단에 대해 찾아보았어요. 구글 검색창에 crohn's disease meal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크론병&대장염 재단이라는 사이트를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미국에서 1967년 만들어진 재단으로 '크론병과 궤양성대장염 환자들의 치료와 삶의 질을 개선'을 핵심 목표로 하는 재단이에요. 다양한 활동들이 있지만 식단 관련 정보를 찾는 메뉴만 소개드릴게요.



상단의 PATIENTS & CAREGIVERS를 누르고 DIET & NUTRITION 탭을 통해 갈 수 있는 화면인데요. 각종 식이계획이나 레시피를 참고할 수 있는 정보들이 모여있어요. 저는 나의 상태에 맞춰 필터링해서 식단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급성기일 때는 물론이고 점차 나아가면서 식단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을 때 참고할 수 있을 테니까요.



먹고 싶은 음식을 클릭하면 필요한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게 나오기도 해요.



아무래도 음식의 종류가 많다 보니 보는 재미도 꽤 커요. 다 만들어 먹지는 못하더라도 '크론병 환자도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고요. 저는 이런 외국 자료를 읽으면서 '못 먹는 음식이 생긴 게 아니라, 건강하게 먹을 기회가 생겼다'라고 정신승리를 하기도 했거든요 :)



이외에도 구글 번역을 활용하면 다양한 신문기사와 칼럼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사실 여기서 소개드린 사이트는 큰 재단이고 공신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적었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모든 정보를 신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특히 건강에 관한 정보는 너무 뼈아픈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요. 주치의 선생님과 많이 이야기 나눠보시고 정말 조심스럽게 찾고 적용하시면 좋겠습니다.




 본 브런치북에는 제가 겪은 크론병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몰라서 아팠던 저의 경험이 다른 분들에게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되는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보고 싶으시면 브런치북/작가 구독을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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