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기반 최면상담 프로세스(1)
나만의 세션만들기를 통해 구축한 뇌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증상의 패턴을 끊는 프로세스를 전자책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삶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거나 어떠한 증상이 만성적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과거에 해결되지 못한 상처가 지속적으로 현재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인간 '관계'에서 매번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되고 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경우나, 만성적인 무기력함, 불안장애, 공허감 등등 이러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증상의 경우도 무언가 미완결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를 마주하고 그것이 해결이 되면 문제는 '완결' 된다. 그러나 너무 오래전 일이라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버렸거나, 그 문제를 마주했을 때의 고통이 너무 아프기때문에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문제가 완결되지 않기때문에 그 미완결된 문제로부터 현재가 끊임없이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증상'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증상을 만들어 내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상처는 상처를 입었을 당시의 '트라우마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트라우마 경험(기억)을 다루어 트라우마 기억의 영향력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럼으로써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인 트라우마 기억의 영향력이 사라지면 문제를 만들어낸 원인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과(증상)도 사라진다. 트라우마 기억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트라우마 기억은 다음의 3가지 핵심 요소로 이루어 진다. 바로 사건,감정,사람이다. 이 중 '사건'은 내담자가 무력감,수치심,보호받지 못하는 느낌, 두려움등의 '증상을 일으키는 감정'을 느끼게 만든 트라우마 경험의 '내용'이다. 과거에 이 트라우마 경험을 겪을당시 내담자는, 그 경험에 압도되어 위와 같은 감정들을 느끼게 된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내담자는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할때, '어떠한 과거의 사건(경험)에 대해 패배한 자기자신'이라는 이야기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를 가진 '자기자신'은 그 이야기가 담보하는 나약하고, 안전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지켜주지 못한, 그리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은 외부의 대상들에게 패배한 자기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순간, '못나고 수치스러운 나'는 '못나고 수치스러운 나'로써 존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럼으로써 이후 내담자의 생각,행동,신념도 '못나고 수치스러운 나'로서의 생각,행동,신념으로 나타난다. 못나고 수치스러운 나이기에 무언가를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못나고 수치스러운 나이기에 시도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식으로 특정한 경험에 의해 형성된 '자기이미지'는 한 개인의 삶을 강력하게 제한한다.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 당시의 사건(내용)을 다시 경험하여 그 사건 내에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새로운 경험'을 다시 써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기존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패배한 자신' 이라는 이미지를, 트라우마적 상황속에서도 그것에 늠연히 맞서 극복해낸 자신이라는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다.
앞서 '자기 이미지'에 의해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나 신념이 제한된다고 이야기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해낸 자신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갖는 것으로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나 신념은 변화하게 된다. 이전에 자기 자신을 제한하던 이미지가 자신의 인생에 그토록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이번에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선물해준 새로운 이미지가 그 사람의 인생을 더욱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에 무참히 패배했었던 '이야기'를 그것을 마주하고 극복해낸 '이야기'로 바꿀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바로, 그 트라우마 사건을 '재경험'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가능한 일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체험'은 언어를 통해 우리의 뇌속에 저장된다. 그리고 '언어'를 통해 다시 불러일으켜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과거에 사과를 먹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해보자. 사과를 먹은 것은 과거의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예전에 사과 드신적 있으시죠?"라고 물어보면 우리는 "네"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그 사과는 어디 사과였나요?","크기는 어땠나요?","색깔은 아주 빨갰나요? 아니면 조금은 노란색이 섞여 있었나요?","베어물때 감촉은 어땠나요? 푸석푸석 했나요? 아니면 과육이 아주 부드러웠나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우리는 그 사과를 베어 물었던 경험을 저절로 상기하게 된다. 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과를 베어문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그 촉감을 떠올리고 그 당시 사과의 향기, 색깔, 베어물때의 감촉등등을 체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과는 ~~했어요"라고 '체험하면서' 이야기 하게 된다. 언어를 통해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체험은 언어를 통해 뇌에 저장되며, 언어를 통해 상기 될 수 있고,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언어를 통해 체험이 '다시 일어날때', 그 체험을 구성하는 언어를 담고있는 뇌내 신경망이 발화한다. 즉, 전기신호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언어를 통해 체험을 머릿속에 저장하기에 언어를 통해서 체험을 다시 불어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 다시 '불러일으켜진 체험'은, 좀더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려하거나, 아니면 질문등에 의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더 '리얼'해진다. 한마디로, 실제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실제감이 얼마나 강렬해질 수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우리가 일을하러 직장에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갑자기 문득 "나올때 가스불 끄고 나왔었나...?"하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당신은 아침에 어제 먹고 남은 국을 뎁혀 놓기 위해 잠깐 가스불을 켜놓았었다. 그런데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서둘러 집을 나왔다. 과연 아무리 바쁘다지만 가스불을 끄고 나왔을까 아니면 그냥 켜놓고 나왔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 실제로 가스불을 켜놓고 나왔는지 끄고 나왔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불안해진다. 그리고 점점더 그 불안감이 강해질 것이고 결국 심한 경우에는 일이 손에 안잡힐 수도 있다. 가족에게 전화해서 집에 가스불 꺼져있는지 봐줘라고 말을 한뒤, 꺼져있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는 말이다.
이처럼 그것이 상상이든 아니든, 우리가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려하면 할수록 그 가능성은 점점 리얼리티(실제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상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수준까지 강해질 수도 있다. 이렇게 실제감이 현실을 지배해 버릴 정도로 강해질 수 있는 비밀은 다음과 같다. 바로,'감정'때문이다.
가스불을 켜놓고 왔을까 고민하던 일화에서는 '불안감'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감정'은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더욱 커지면 커질수록 '느낌'도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느낌은 실제로 느껴지는 것 즉, 실체감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감정과 연관된 상상 또는 기억도 '실제감'이 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그 사람은 상상이든, 기억이든 더욱 리얼하게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을 현재 시점에서도 '재경험'할 수 있는 이유이다. 트라우마 경험이라는 것은 특히, 그 감정의 강도가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그 경험은 지금은 지나간 '과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따라와 내담자를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조를 역으로 활용하면, 트라우마 기억이 유발하는 '감정'을 사용하여, 그 트라우마 사건을 '재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