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세션만들기를 통해 구축한 뇌과학적 원리를 기반으로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증상의 패턴을 끊는 프로세스를 전자책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렇게 감정을 다리로 삼아 그 감정이 유발된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기법을 감정 브릿지(다리)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감정에는 그 감정과 연결된 상상 혹은 기억을 '실제감'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렇기에 과거의 트라우마적 경험을 리얼하게 재체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트라우마 경험을 재경험 하는 것에 어떤 이득이 있을까? 이미 잘 살고 있는데 굳이 과거의 상처를 들춰낼 필요가 있을까? 감정브릿지를 사용한 트라우마 치유가 필요한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삶 속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될 때.
삶 속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 '인간관계'에서 그러하고, 또 공황장애나 발표공포증과 같이 특정 상황 또는 대상에 대해서 같은 반응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같은 반응이 반복되는 이유는 '감정' 때문이다.
트라우마 경험은 그 사람에게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감정은 좋지 않은 감정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정을 유발한 트라우마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감정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트라우마 경험이 반복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유발시켜 고통스러운 경험을 할 가능성을 줄이는 전략'은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낌으로써 그것을 회피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다. 바로, 삶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이 타인과 관계가 깊어지면 상처를 받을까 봐 일정 수준이상의 친밀함이 발생하면 불안함이나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불안함이나 불쾌감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됨으로써, 이 사람은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을 '시험'하거나 '거부'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됨으로써 이 사람은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만성적인 외로움과 공허감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만성적인 외로움과 공허감에 의해 다시 타인과 관계를 맺게 되고, 위와 같은 행동이 '반복'된다. 물론 스스로 이런 삶이 너무 즐거워 어쩔 수 없다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이렇게 삶에서 반복되는 문제들로 인해 삶이 괴롭다면, 이 패턴을 만들어낸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이유를 알 수 없는 만성적인 고통
위의 경우와 구조는 같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예를 들어 공허감이나, 불안장애 같은 것들, 강박적인 행동들 이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감정들과 위의 같은 문제가 반복되도록 만드는 감정의 차이는 사실 없다. 그러나, 전자와 같은 경우는 삶에서 문제가 반복적으로 '드러남'으로써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기 쉬운 반면, 이와 같은 '만성적인' 증상들은 그것이 문제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증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상처받은 내면이다. 세부적인 양상으로 가면 그 과정이 조금 달라지기는 하지만 결국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에 의해 상처받은 내면이 그 경험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일으키는 현상인 것이다.
위의 구조를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트라우마 기억은 사건, 사람,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감정의 역할은 '접착제'이다. 내담자에게 영향을 준 사건과 사람이 내담자의 내면에 딱 달라붙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렇게 '딱 달라붙었기 때문에' 과거의 일임에도 내담자의 현재까지 따라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감정을 타고 트라우마 사건으로 돌아가 그것을 재경험 할 수도 있고 감정을 중화시킴으로써 트라우마 감정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내담자는 트라우마 기억 속에서 '사건'과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영향에 의해 '감정'이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한 감정은 그 감정을 유발한 특정 상황 또는 사람에게 연결된다. 이를 최면과 NLP에서는 '앵커링'이라고 한다. 앵커는 닻이라는 뜻인데, 마치 닻을 내려 배를 한 지점에 고정시키듯 특정한 사람과 상황에 감정적 반응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감정반응은 내담자의 무의식에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이미지는 나는 ~~ 한 사람이야라는 제한적 신념을 낳는다. 그리고 그러한 제한적 신념은 우리가 하게 되는 행동을 '제한'하게 된다. 행동이 제한되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밖에 행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해 수치심을 느낀 사람은, 무의식 수준에서 '나는 수치스러운 사람 또는 있는 그대로 정당하지 못한 사람이야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거나,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거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이미지로부터 유발되는 영향에 더하여, 트라우마 사건을 겪었을 때 감정이 연결된 상황과 대상에 대해서도 감정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실제로 그 감정을 느끼게 한 대상이 아니어도 감정반응이 촉발되기도 한다. 이는, 트라우마 감정을 일으킨 대상과 '유사한' 대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킴으로써 트라우마 경험을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방어전략이다. 그럼으로써 그 사람의 행동은 더더욱 제한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트라우마 대상과 유사한 대상으로부터 감정반응이 일어나게 될 때,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감정반응'은 곧 그 사람의 '체험'(경험)이다. 체험은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과 느낌이다. 그리고 이 주관적인 생각, 감정, 느낌이 바로 '실존'이다. 그러나 여기서 '머리'가 작동한다. "그건 그저 과거에 있었던 일일 뿐이야.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 그건 잘못된 일이야. 그리고 나한테 좋지도 않을 거야." 이 말은 맞는 말이다. 지금 특정 대상에 대해 느끼고 있는 감정반응은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맞다. 즉,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 감정반응은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 감정반응을 '느끼고 있다는 것'자체는 사실이다.
여기서 갈등이 일어난다. 그것은 사실은 아니지만 느끼고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이 체험(느낌)을 부정하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경험은 실존이라고 했다. 즉, 과거에 더 이상 영향받지 않고 행동하려는 시도에 의해, 현재의 경험(실존)이 억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억압된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비롯된 반응(감정, 생각, 느낌)은 또다시 자기 자신에게 조차 부정당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타인에게 상처받은 경험에 더해 자신에게까지 상처받는 경험이 더해진다. 그에 따라 트라우마 경험의 구조는 더욱 복잡해진다.
다음과 같은 구조가 성립된다. 즉, 최초에 트라우마 경험이 발생한 이후, 그 상처받은 자기 자신을 외부(타인)와 내부(자기 자신)가 동시에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은 과거의 '나'는 살아가는 내내 상처받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이 사람은, 트라우마대상에 대해 반응해도 문제가 되고 그것을 극복하려 해도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이러한 구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회피와 반응을 동시에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회피하지 않고(마주함) 과거의 트라우마를 유발한 기억을 찾아 돌아가서, 그 트라우마 경험을 재경험함으로써 트라우마 기억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절차를 밟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 트라우마의 양상이 가벼운 것이라면 굳이 원인을 해소하지 않아도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 경험에 의한 상처가 깊다면,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이 전략 자체가 일종의 회피행위로 기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