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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Apr 07. 2021

세계화는 빈곤을 종식시킬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어쨌든 빈곤율은 감소해왔지만, 모든 나라들에서 균등한 감소세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1980년 이후 빈곤율의 변화를 좀 더 해상도를 높여 지역을 단위로 들여다보면, 특히 동아시아(EAP)에서 빈곤율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그림1). 세계은행의 빈곤선인 1.9 달러를 기준으로는, 남아시아(SAS)의 감소세도 꽤나 가파르게 나타난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에서는 10 이상 인구의 중국, 남아시아에서는 마찬가지 규모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의 고성장이 각각 빈곤율을 급격하게 떨어뜨린 주역이었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SA) 1980년대 이후 오히려 빈곤율이 증가하였으며, 최근까지도 1980년에 비해서는 빈곤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LAC) 역시 1980년대 동안 빈곤율이 상승하는 추세가 나타나며, 2005년까지도 1980년에 비해 다소 높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수준 머무르고 있다. 유럽과 중앙아시아(ECA) 빈곤율 역시 90년대에 뚜렷이 상승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무엇이 이런 지역별 차이를 만든 걸까? 그리고, 빈곤율이 상승하는 추세는 그 이후에 비해 왜 8-90년대에만 나타났던 걸까?



그림1. 지역별 빈곤율 (왼쪽: $5.04 food PPP, 오른쪽: $1.90)



세계은행의 빈곤율 그래프가 시작하는 1980년대 이후는 세계화가 한층 넓고 깊게 진전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 ‘세계화’가 단순히 경제 활동의 지평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일 뿐이라면, 그것이 꼭 80년대 이후에야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해야만 할 까닭은 없다. 더욱이, 핑커의 말대로 세계화가 그 자체로 부자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저개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잔혹한 무역 경쟁으로 내모는 거대한 음모라고 볼 필요도 없다(Pinker, 2018, p.92). 오히려 세계화는 가난한 사람들을 빈곤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화와 빈곤 사이의 관계를 다룬 논문들 중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의 하나인, 경제학자 데이비드 달러(David Dollar) 아트 크레이(Aart Kraay)의 "무역, 성장, 그리고 빈곤(Trade, Growth, and Poverty)"이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논문은 1980년대 이후 20 , 세계화에 적극 동참한 "세계화 국가(globalizer)"들은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들에 비해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고, 경제 성장률이  높을수록 저소득층의 소득도 따라 증가해 절대적 빈곤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Dollar & Kraay, 2004). 달러와 크레이의 분석에 의하면, 무역량이 증가할수록, 연평균 경제성장률 역시 높아지는 통계적 관계가 유의미하게 나타난다. 반면 무역의 확대가 소득 불평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과연, 세계화가 빈곤 문제를 해소해주고 있다는 낙관주의자들의 말 그대로다. 그 밖에도 많은 경제학 문헌들은, 비슷한 시기 국제 무역의 확대가 더 높은 경제 성장률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Frankel & Romer, 1999; Irwin & Tervio, 2002).



하지만, 80년대 이후 “세계화”를 그 이전 시기와 구별짓는 건 무역량의 양적인 변화뿐 아니라, 국제질서 및 주요 국가 국내 정치 장면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급격한 정책적 변화이기도 하다. 이 정책 변화의 세계적 확산을 주도해온 것은 IMF와 세계은행, WTO 등의 국제기구들이었다. 특히 8-90년대 라틴 아메리카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등 개발 도상국의 경제 패러다임을 바꾼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IMF와 세계은행이 워싱턴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이 일련의 정책들의 목록을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용어를 발명해낸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은 이 용어가 그의 본디 의도를 벗어나, 극단적 시장 근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와 마치 동의어처럼 사용되는 데에 불편을 표하기도 하지만(Williamson, 1990, 2009),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이 지적한 것처럼, 시간이 흘러 애초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자본 시장 개방 따위의 내용들이 섞이며, 애초의 온건한 내용과는 달리 개방 경제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주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로드릭, 2011, pp.245-6). 대니 로드릭을 포함해,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와 같은 개발경제학자들은 IMF와 세계은행과 등의 국제기구가 개발도상국들에 강요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바탕에 있는 이 이론적 기반을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데에 앞장서왔다(Serra & Stiglitz, 2008).



로드릭에 따르면, '워싱턴 컨센서스' 아래 진행된 세계화가 그 이전까지의 세계화와 구별되는 점은, 2차 대전 이후 출현한 국제 경제 질서인 브레턴우즈 체제 아래의 '제한된 자유무역(로드릭, 2011, p.123)'을, 보다 전면화된 자유무역으로 심화시켰다는 점이며, 각국 정부가 국내의 사회 경제 정책을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이 위축되었다는 점이다. 로드릭은, 브레턴우즈 체제 아래 전개된 세계화는 농업이나 일부 제조업 부문 등을 시장 개방으로부터 보호하면서 진행되었으며, 완전 고용과 복지, 산업 보호 따위에 있어서 각국 정부의 정책적 재량을 대폭 허용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정치학자 존 러기(John Ruggie)가 시장이 사회에 배태, 착근되어(embedded)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제한적 기능을 한다는 의미에서 "착근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라고 부르기도 한 정치경제 질서다(Ruggie, 1982). 러기에 의하면, '착근 자유주의'는 다자주의적인 무역 확대를 지향하면서도, '자유 무역' 지향의 자유주의와는 다르게 국내 정부의 개입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이전이나 이후와 구별되는 특징을 갖는다(p.393). 많은 서구 국가들에서 정부의 경제 개입을 허용하는 혼합 경제가 출현하고 복지국가가 확대된 것도 바로 이 ‘착근 자유주의’ 시대다.



반면, 80년대 이후 전개된 세계화는 그와 반대 양상을 띠었다. 정부의 경제 개입을 축소하고, 공공 기업은 민영화하며, 무역과 금융에 걸쳐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  자유화를 추진했다. 세계화의 심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국제기구인 WTO 규범은,  이전 GATT 체제에 비해  강한 강제력을 회원국들에 부과했다. 동시에, '착근 자유주의' 질서가 각국 정부에 허용했던 사회 정책의 재량 영역 안에서 이뤄졌었던 고용보호와 사회복지 정책은, IMF가 금융지원조건으로 부과한 정책 개혁의 대상이 되어 위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드릭에 의하면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비교해, 중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각 국가의 정책 재량과 산업 보호의 폭을 비교적 넓게 허용했던 브레턴우즈 시대의 규범을 따라, 자본 통제를 비롯한 독자적인 경제 정책을 실시하며 세계화에 점진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로드릭, 2011).



달러와 크레이처럼 "세계화 국가(globalizer)"에 중국 및 인도를 포함시켜 세계화의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로 간주하는 것이 호도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대목이다. 로드릭은 중국과 인도 모두 고속 성장이 시작된  10년이 지난 이후에야 무역 개방을 추진했으며, 따라서 1990년대 중반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무역제한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한다(Rodrik, 2008, pp. 220-221). 중국에서는 70년대 후반 이후 약 10년 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후,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즈음에야 무역 자유화가 진행되었으며, 인도 역시 전향적인 무역 개방 정책이 실시되기 시작한 건 1991-93년이고, 경제 성장률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던 1980년대 인도의 평균 관세율은 오히려 그보다 성장률이 낮았던 70년대에 비해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 요컨대, 인도와 중국 두 나라가 세계화에 참여하며 무역량을 늘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무역량'이 곧 '워싱턴 컨센서스'가 추진한 자유 무역, '무역 개방'이라는 정책 변수와 똑같지는 않다. 무역 자유화 없이도 경제적으로 선방한 나라들에서 그 경제적 성공의 부산물로 무역량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문헌들은 두 나라를 ‘세계화 국가’, 혹은 ‘자유화 국가(liberalizers)’로 분류하며 무역 자유화의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로 간주해왔다.



로드릭과 로드리게즈(Francisco Rodríguez)는, 이처럼 무역 자유화가 높은 경제 성장률로 이어진다고 주장해온 경제학 연구들이 변수의 정의를 부적절하게 해왔다고 주장하며, ‘관세율’과 같이 구체적인 정책 변수를 독립변수로 삼으면 무역 개방과 경제 성장 사이의 유의미한 통계적 관계는 사라져, 무역 자유화를 지지하는 연구들의 결과가 썩 강건하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Rodríguez & Rodrik, 2000). 정책 변수로서의 무역 자유화를 단순한 무역 확대와는 구별지어야 할 필요를 잘 보여준다.



그 ‘정책 변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하워드 나이(Howard Nye)와 산제이 레디(Sanjay Reddy) 등은 달러와 크레이의 논문을 비판하며, 무역 개방 변수와 종속변수를 주어진 시점의 절대적 ‘수준’으로 정의하고 비교할 것인지, 시점 간의 ‘변화’로 비교할 것인지에 따라 무역 개방과 경제 성장 사이의 관계가 달라진다는 지적을 제기한 바 있다(Nye, Reddy & Watkins, 2002). 달러와 크레이의 논문에서는 1985-89년에서 1995-97년 사이에 관세율의 감소가 큰 나라들을 ‘세계화 국가’로 분류했지만, 실은 이 나라들은 관세율의 절대적 수준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나라들이었다. 그에 비해, 관세율의 변화가 작았던 나라들은 이미 관세율이 낮은 나라들이었지던 것. 관세율이 낮은 나라들을 ‘비세계화 국가’로 분류하는, 일견 모순적이기도 한 비교다. 이같은 문제에 대해, 달러와 크레이는 그들의 논문에서, 주어진 시점의 ‘수준’으로 변수를 삼고 성장률을 비교하면, 국가들의 지리적 위치나 혹은 다른 사회 제도 등의 제3의 변수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런 변수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갖는다는 전제 하에, 시점 간의 ‘변화’를 변수로 삼고 성장률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이와 레디 등은 무역 자유화 변수와 일관되게, 성장률 역시 주어진 시점의 수준이 아닌 시점 간 변화를 보게 되면, ‘비세계화 국가’의 성장률 향상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달러와 크레이의 논문에 따르면 ‘세계화 국가’로 분류되었지만 사실은 관세율 수준이 높았던 나라들은 낮은 관세율을 가진 나라들에 비해 성장률의 수준도 높았다. 이런 결과를 무역 자유화의 긍정적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지, 그 해석의 타당도에 의문이 생길 법하다 .



물론 로드리게즈와 로드릭의 지적이 제기된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방법론적으로 개선된 접근을 통해 무역 개방과 경제 성장 사이의 긍정적 관계를 밝히려는 시도를 해욌지만, 여전히 이런 한계를 비슷하게 노정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예컨대, 무역 개방과 경제 성장 사이의 긍정적 관계를 보여준 적지 않은 중요한 연구들(Sachs & Warner, 1995; Wacziarg & Welch, 2008; Billmeier & Nannicini, 2013)이, 암시장 환율 프리미엄을 무역 자유화를 정의하는 한 항목으로 사용해왔다. 로드리게즈와 로드릭이 이미 2001년 논문에서 '무역 자유화'뿐만 아니라 다른 거시경제적 불안 요인이 반영되어 무역 자유화의 효과를 파악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비판한 방법이다.



한편, 에스떼바데오르달(Antoni Estevadeordal)과 테일러(Alan Taylor)는 1970년대에서 2000년 사이 관세율의 변화가 성장률의 변화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으며, 정책 변수로서 적절하게 정의할 때에도, 무역 자유화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있다는 걸 설득력있게 보여준다(Estevadeordal & Taylor, 2013). 하지만, 무역 자유화와 경제 성장률 사이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고 여기는 연구들도 많다. 가령, 무역 자유화가  나라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다른 효과를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해온 연구들의 흐름도 있다. 그 가운데 몇 연구들은 높은 관세 수준이, 비교적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들에서는 성장률과 부정적인 관계를 맺지만, 저소득 국가들에서는 관세 수준이 높을수록 오히려 성장률도 높다는 결과를 보고한다(DeJong & Ripoll, 2006; Kim & Lin, 2009). 한편, 시야를 넓혀 훨씬 긴 시간적 지평에 걸쳐 관세율과 성장률 사이의 관계에 대해 비교한 연구는, 관세율과 경제 성장률 사이의 관계가 모든 시대와 조건에서 일관되게 똑같은 방향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Clemens & Williamson, 2004). 1914년 이전에는 관세율과 성장률 사이에 일관되게 플러스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 1950년대 이후 1999년까지의 자료에서는 똑같은 샘플에서도 마이너스의 관계가 나타나며, 그 관계는 무역 파트너의 관세율에 따라 조건적으로 나타났다. 즉, 무역 파트너의 관세율이 높을 때에는 관세율이 높은 것이 높은 경제 성장률로 이어지지만, 일반적으로는 관세율이 높으면 경제 성장률은 낮았다는 것. 반면, 무역 파트너의 관세율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 분석에서는, 로드리게즈와 로드릭의 회귀분석 결과처럼 관세율과 성장률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뉘앙스'인 것 같다. 분명, 많은 경제학 문헌들이 가리키는 무역 개방과 경제 성장률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가 그저 착시이거나 통계적 우연은 아닐 테다. 다만, 무역 개방이 어떤 조건에서든 경제 성장에 좋은 처방일 것이라고 순진하게 기대하기보다는, 상황과 조건에 맞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한 것 아닐까. 지난 수십년 간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들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처방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제 처지에 알맞는 실용적 접근을 취해온 나라들이었다는 로드릭의 지적대로다.






로드릭은 특히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행보와, IMF 및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가 확산시켜온 '워싱턴 컨센서스' 사이의 차별점에 대해 강조한다. 사유재산권의 확립과 민영화를 주요한 아젠다로 삼는 '워싱턴 컨센서스' 비해, 중국은 공공 기업의 전면적인 민영화 대신 독특한 소유권 구조의 '향진기업(Township and Village Enterprises;TVEs)' 발전시킨다. 즉, 중앙정부에게도, 민간의 개인에게도 분명한 소유권이 주어지지 않은 채 지방정부('향Township', '진Village')가 운영한 기업이다. 잉니 첸(Yingyi Qian) 역시 사유재산권이 보장되기 어려운 제도적 이념적 환경에서, 지방정부에 의해 보호되는 향진기업이, 사유재산권이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인센티브의 효과를 대신해줄 수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Qian, 2002). 로드릭에 따르면, 향진기업 중심의 성장은 "정부가 모든 재산의 궁극적인 주인으로 남아 있으면서 동시에 국민에게 재산권을 보장(로드릭, 2011, p.227)"할 수 있었던 묘안으로 중국이 채택한 전략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향진기업의 운영은 지방정부의 재정과도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방정부에게도 향진기업을 지원할 유인이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향진기업은 90년대 초반까지 중국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물론, 중국의 경제 발전을 오히려 윌리엄슨이 애초에 제기하였던 온건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틀 안에서 일관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Kennedy, 2010). 실제로, 개혁개방 이전에 비해서는 오늘날 중국 경제가 시장경제와 개방경제에 한층 더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히 그 결과만 보고 그 과정에서 중국이 운용해온 독특한 제도들을 간과해서는 안 될 테다. 계획경제 체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비슷한 시기에 겪으면서도, IMF 등의 권고 하에 중국과는 달리 급격하고 전면적인 민영화와 시장화의 길을 걸었던 구소련 출신 동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중국과 비교해보면, 그 사이의 차별성을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다. 사회학자 스터클러(David Stuckler) 등의 연구는, 동유럽  과거 소비에트 연합 출신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체제이행기의 급격한 민영화가 노동연령층 남성의 사망률 증가로 이어지는 통계적 관계가 유의미하게 성립함을 보여준다(Stuckler, King & McKee, 2009). 그렇다고 이들 나라들이 전면적인 민영화와 시장화를 통해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처럼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것도 아니다. 그림2에서 볼 수 있듯, 1978년 이후 꾸준히 1인당 GDP가 증가해온 중국에 비해, 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나라들은 시장화의 과정에서 소득 수준의 심각한 후퇴를 겪었으며, 이를 회복하는 데에 십여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림1에서 90년대 '유럽과 중앙아시아 (ECA)' 지역의 빈곤율이 증가하는 현상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반면 구소련 연방에 도입된 '충격 요법(shock therapy)'과 같은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시장화의 길을 걷지 않으면서, 독특한 제도들을 운용해온 중국의 빈곤율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림2. 구 공산권 국가들의 1인당 GDP 추이



향진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로드릭의 주장에 대해서도, 모든 향진기업이 공공 또는 집단 소유는 아니었고, 그들 중 적지 않은 수는 민간 소유 즉 '개체소유' 기업이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Huang, 2011). 물론 이는 로드릭이 다소 간과한 측면이긴 하지만, '향'과 '촌'에 의해 운영되는 집단소유 기업이 1990년대 초반까지도 향진기업의 생산액과 고용인 수의 과반을 차지한 데 비해, 성장률은 집단소유 기업과 개체소유 기업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임반석, 2015)은, 잉니 첸과 로드릭이 주목한 독특한 소유 구조의 집단소유 향진기업이 8-90년대 중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다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중국의 재산권 관련 개혁이 가진 또 다른 특이점은 토지 및 농업 정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계획경제 시대의 중국은 여느 사회주의 국가처럼 농산물의 할당 생산량과 가격을 농민들하여 부과하여 노동자들에게 배급했는데, 체제 전환기에 이루어진 개혁의 방향은 전면적인 민영화와 시장화를 도입한 구소련의 방식과는 달랐다. 로드릭에 따르면, 계획경제적 요소를 일거에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으면서도 시장이 주는 인센티브를 접목시켜 제도 변화의 충격을 완화한 것이 중국의 해법이었다(로드릭, 2011, p.226-227). 토지의 국가 소유 하에서 농민이 할당 생산량을 정액에 상납하고 정부는 노동자에게 배급하는 시스템의 요체는 유지하되, 집단 농장을 해체해 가족 농장을 촉진한 것. 이 '농가책임제' '이중가격시스템(dual-track pricing system)' 하에서 농민들은 농가별로 할당된 생산량을 초과하는 분량에 대해서는 시장가로 자율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후 중국의 농업생산성은 크게 향상되었으며, 이런 이중가격시스템은 농업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영역들로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Lau, Qian & Roland 1997). 즉 국가가 계획 가격에 조달하는 곡물의 양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전체 곡물의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고, 석탄과 철강, 소비재 시장 등으로까지 이중가격시스템이 확산되며 중국 경제의 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워싱턴 컨센서스'의 아젠다들이 표준적으로 시행된 8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사정 역시 중국, 인도와 대조된다. 로드릭이 지적했듯, 이들 지역의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수입대체산업화'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던 1960-80년대보다도 낮아졌다(Rodrik, 2008).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외채위기를 겪으며 무역 및 금융 자유화, 노동시장 개혁, 민영화 등의 '워싱턴 컨센서스'의 표준적인 정책들이 도입되었지만, 2000년경까지도 과거의 경제성장률을 회복하지 못한 채 빈곤율도 정체한다(그림3). 비슷하게, 1970년대 말경부터 IMF,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이 시행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SSA)의 그래프는 8-90년대에 걸쳐 빈곤율이 상승하는 뚜렷한 추세를 그린다(그림1).



그림3. 라틴 아메리카의 빈곤율 추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매운 맛을 본 개발도상국들은 정책 노선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IMF와 세계은행 등이 제시한 시장개혁이 98년 금융공황으로 돌아온 경험을 겪은 러시아는, 에너지 분야 국유기업들의 역할을 강화하고, 산업정책으로써 자동차 산업과 조선업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나가는 등, 경제정책의 기조를 개입주의로 전환한다(사피르, 2012). 이런 정책 기조 변화의 성적표는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의 변화에도 힘입어, 그림2("Russian Federation")에서 보는 바와 같아졌다.



라틴 아메리카 역시 2000년대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반감을 갖는 정치 세력들이 연달아 집권, 사회복지 영역 등에서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했고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에 나섰으며, 이는 불평등의 뚜렷한 완화로 나타났다. 불평등의 감소가 200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빈곤율 감소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사실은 세계은행의 페이퍼로도 알 수 있다(Lustig, Lopez-Calva & Ortiz-Juarez, 2012). 이런 배경에서, 2000년대 이후 빈곤율이 뚜렷이 감소하는 추세가 그림3의 그래프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빈곤율을 감소시켰다는 내러티브는 너무 단순하다. 가장 ‘자유 시장’에 가까운 정책을 채택한 지역들의 성적표는 오히려 썩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 정부의 경제적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포퓰리즘에 경도된 라틴 아메리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은, 이 지역에서 이뤄진 진보를 역행시키기도 했다. 단적으로, 최근 베네수엘라의 '극단적 빈곤' 비율은 거의 96%로 급증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해볼 수 있다. 빈곤율 감소의 방향타는 로드릭의 말처럼 시장의 제도적 장점을 정부의 적절한 역할로  살려낸 실용주의적 혼합 경제가 쥐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균형잡힌 해석일 테다.



경제학자 와이즈브롯(Martin Weisbrot)과 그가 소속된 연구소 CEPR은, IMF와 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들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진행된 8-90년대 20년과 그 전후의 약 20년, 즉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의 여러 사회개발 지표의 변화를 팔로업하는 연구들을 발행해왔다. 2003년에 발간된 연구에서 와이즈브롯은 1인당 GDP, 기대수명, 영유아사망률, 교육 등의 지표에 걸쳐, 같은 구간의 성장률 혹은 연평균 변화량이  이전 20년에 비해 후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Weisbrot, Baker, Kraev & Chen, 2003). 즉, 1960년을 기준으로 국가들을 1인당 GDP 수준에 따라 다섯 구간으로 나눈 뒤, 해당 구간의 성장률을 보았더니, 모든 구간에서 80년대 이후 20년의 성장률이 이전 20년에 비해 낮았던 것. 1인당 GDP뿐만 아니라 기대수명, 문맹률, 초등학교 등록률 등에서도, 특히 낮은 구간의 저개발 국가들에서 이런 후퇴가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그에 비해 같은 지표들의 2000년대 이후 추세는 뚜렷한 회복세를 보여준다(Weisbrot, 2015). 와이즈브롯에 따르면,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라틴 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들에서 IMF 국제적 영향력이 감소하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이전 경제위기의 경험들을 거치며 많은 반발과 불신을 산 IMF의 금융지원 규모는, 고점을 찍었던 2003년에 비해 2007년에는 그 20% 수준으로 급감한다는 사실을 그는 지적한다. 물론 이 규모는 불과 몇 년 뒤 다시 종전의 수준을 회복하지만, 와이즈브롯에 따르면 그 대부분은, 개발도상국보다는 유럽 지역에서 IMF의 영향력이 확대된 사실을 반영한다. 와이즈브롯은 2000년대 이후 개발 지표의 추세에 나타난 반전의 원인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IMF의 영향력 감소와, 개발도상국의 무역에서 비중을 넓혀나가던 중국의 부상 두 가지를 지목한다.



물론, 이게 '워싱턴 컨센서스'의 선봉에 선 국제기구들이 주도한 '세계화'가 생활수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의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에 비해, 최근의 몇 연구들은 IMF의 금융지원 조건으로 부과된 정책 개혁이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건강 악화,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인과적 관계를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1980년대에서 2014년에 걸친 137개 개발도상국들의 패널에 대해 1인당 GDP를 포함한 여러 관련 변수를 통제한 회귀분석의 결과는, IMF 구제금융을 대가로 참가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요구 사항들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해당 국가의 신생아 사망률을 높이고, 시민들의 의료 제도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밝혀준다(Forster, Kentikelenis, Stubbs & King, 2019). 1973년에서 2013년에 걸친 150여개 국가에 대한 분석 결과는, IMF 프로그램이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를 통해 불평등의 확대로 이어졌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도 한다(Lang, 2020).



거듭, ‘세계화’를 경제 활동의 세계적 확대, 국제 무역의 확대라는 차원에서만 이해한다면, 세계화가 그 자체로 빈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의 증거들이 더 많다. 세계화에는 빈곤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분명한 잠재력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세계화'인지다. 일단 세계화에 동참하기만 하면 높은 경제 성장률과 생활 수준의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정치’의 역할은 세계화의 도도한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며 대류에 순응하는 것 뿐일 테다. 즉, ‘세계화’라는 경제적 힘이 빈곤의 종식을 가져다올 것을 낙관하며, 그 흐름을 거스르려는 무지한 대중들의 포퓰리즘을 잘 방어해내면 된다. 모종의 경제 결정론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세계화에 참여하는지가 결과를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매개변수라면, ‘정치’가 가진 역할의 무게가 사뭇 커진다.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주도 하에 이뤄진 '워싱턴 컨센서스'에 입각한 '세계화'가 8-90년대에 많은 개발도상국에 야기한 생활수준의 후퇴 혹은 정체, 그 이후의 반등은, 정치적 선택이 결과의 큰 차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진영에게도, 반대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진영에게도 모두 적절한 사례를 뒷받침해준다는 아이러니컬함을 지적한 로드릭(2011, p.222)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사실 문제는 "세계화냐, 아니냐" 하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세계화에 참여하는지가 8-90년대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구 공산권의 운명을 나눈 변수였다. 13억 인구 중국의 몸집과 ‘1.9 달러’라는 의심스러운 국제빈곤선의 기준에 의해, 저개발 국가들이 8-90년대에 겪었던 큰 굴곡이 가려진, ‘낙관주의자’들의 매끄러운 그래프로는 알아채기 어려운 뉘앙스가 바로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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