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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Oct 22. 2021

제국주의와 빈곤의 역사




 그림1의 그래프로 다시 돌아가보자. 1980년대 이후 빈곤율의 궤적이 '자유 무역', '신자유주의'의 승리라는 신낙관주의 내러티브는 사실과 멀다 하더라도, 산업 자본주의의 승리는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의심할 것 없이, 인류는 산업화를 통해 역사상 유례없는 부를 창출해내었다. 하지만, 이게 곧 모두의 후생이 증가하는 결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염세주의자들은 팔짱을 끼고 이렇게 말해왔다: "그래, 경제는 성장했지. 하지만 평균이 무슨 의미가 있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 몰라?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불평등이 커져서 힘없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이렇게 말하는 염세주의자들에게, 오히려 자본주의의 전개가 빈곤율을 줄여왔다는 그림1의 그래프는 강력한 반증이다. "부익부 빈익빈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더 부유해졌다." 과거가 좋았다고? 신낙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과거는 나쁜 기억력 때문이다!” '신낙관주의자'들은 먼 과거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아름다운 목가적 과거는 없다. 인류의 9할이 최소한의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근대 자본주의의 전개를 바라보는 낙관주의자들의 시각은, 그 비참함을 자본주의가 줄여왔노라고 말한다. 반면, 비관주의자들은 오히려 자본주의가 빈민들의 비참함을 가중했다고 말해왔다. 사실, 사상가들과 지식인들에게는 이런 비관주의자들의 관점이 더 익숙하다. 고전이 된 그의 저서 «거대한 변환»에서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18세기 사상가들 사이에서는 빈민과 진보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대량의 빈민은 불모의 나라와 미개한 나라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것이며, 비옥하고 가장 문명화된 나라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존 맥팔레인 John M'Farlane은 1782년에 기술한 바 있었다. 1774년에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자마리아 오르테스 Giammaria Ortes는 국가의 부는 그 나라의 인구에, 불행은 국가의 부에 비례한다는 것은 공리라고 단언하였다. 또 애덤 스미스조차도 사려깊은 방식으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노동임금이 가장 높은 것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맥팔레인이 영국은 이제 그 전성기에 접근했기 때문에 빈민의 숫자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표현했을 때 유별날 견해를 대담하게 표명한 것은 아니었다. (p. 131)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계층인 임노동자들의 실태를 체계적으로 관찰, 분석한 엥겔스의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상황»은 18세기의 이 '비관주의'적 관점을 계승한 고전인 셈이기도 하다. 하지만, 18-9세기 자본주의의 실태에 대한 이 '민족지적' 기술들은,  수량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고 분석할 과학적 역량이 없었던 빛바랜 옛 사상가들의 센치한 감상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산업 자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극빈율이 눈부시게 감소해왔다는 신낙관주의자들의 그래프를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빈곤율이 높았던만큼 인류가 산업 자본주의의 심화와 더불어 경험한 빈곤율의 감소는 훨씬 더 눈부시게 보인다.  


 그럼, 산업화 이전 인류의 8-9할에 이르는 인구가 최소한의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극한의 궁핍한 삶을 살았다는 신낙관주의자들의 말은 과연 사실일까? PPP지수와 물가지수의 사용이 애초 측정하고자 했던 '극단적 빈곤'의 구성개념과 멀어지게 만든다면, 같은 방법을 200년 전의 먼 과거로 소급해 빈곤을 측정하는 그림1의 그래프가 과연 의미있는 궤적을 그리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과연 1820년의 '1.9달러 소득'은 오늘날의 1.9달러 빈곤선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의미할까? 세계은행의 빈곤 측정법을 비판해온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Robert Allen)의 최근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실증 분석을 내놓고있다.


 선행 연구들이 세계은행이 계산한 빈곤선이 모든 나라, 모든 시대, 모든 계층에 걸쳐 동일한 구매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논리의 한계를 밝혀왔다면, 앨런은 더 나아가 설사 세계은행의 빈곤선이 모든 나라에서 동일한 구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동일한 수준의 삶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Allen, 2017; 2020). 예를 들어, 추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같은 양의 열량을 보존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해야 할 테다.


 앨런이 내놓는 대안은 모든 나라에 걸쳐 동일하게 적용되는 생활수준(영양)을 정의한 뒤, 나라별로 이 동일한 생활수준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지출을 그 나라의 물가 자료와 기후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즉, 앨런은 세계은행의 1.9달러 국제빈곤선 대신, 식품별 영양 함량과 식품의 물가라는 제약 하에, 주어진 영양 기준(requirements)을 만족하기 위한 최소의 비용을 계산하고, 거기에 기후환경에 따른 주거 비용 따위를 가산함으로써 나라별로 ‘기본 욕구 빈곤선(Basic needs poverty line)’을 산출했다(Allen, 2017; Allen, 2020). 어떤 복지 수준에도 레퍼런스를 두지 않은 의미없는 빈곤선이라는 비판(Reddy & Pogge, 2009)을 받아온 세계은행의 국제빈곤선에 비해, 정해진 수준의 기본적 욕구 충족이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두고 계산된 빈곤선이라는 점이, 이 ‘기본 욕구 빈곤선’의 타당도를 뒷받침한다. ‘기본 욕구 빈곤선’을 세계은행의 국제빈곤선과 비교해보니, 가장 가난한 저소득 국가들이 집중되어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세계은행의 빈곤선과 ‘기본 욕구 빈곤선’이 그 크기가 비슷했지만, 나머지 지역에서는 기본 욕구 빈곤선과 세계은행의 빈곤선 사이에 작지 않은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설정된 빈곤선으로 측정한 결과, 당연히 빈곤율의 지리적 분포와 크기도 다소 달라졌다. 세계은행의 빈곤 측정이 실태를 다소간 왜곡하고 있다는 실증적 근거다. 근데 더 큰 문제는, 거듭, 이런 왜곡이 긴 역사적 지평을 두고 오랜 과거의 빈곤율을 측정하려고 할 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스티븐 핑커와 한스 로슬링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는 '극빈' 그래프는, 모두 서로 다른 성격의 두 데이터셋을 통합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1980년대 이후의 자료는 세계은행에 의해 실시된 가계조사로부터 생성된 자료이지만, 그 이전 시기에 대해서는 이런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빈곤선 미만의 소비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전세계 빈곤층의 살림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마이크로 데이터가 1980년 이전에는 없었다는 의미다. 대신, 매크로 자료인 GDP 데이터를 이용했다. 스티븐 핑커와 한스 로슬링의 1980년 이전 그래프는, 경제사학자인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GDP 데이터에 기초해, 부르기뇽(François Bourguignon)과 모리슨(Christian Morrisson)의 소득 분배 자료를 이용하여 빈곤선 미만의 소득 비율을 계산해 그려졌다(Bourguignon & Morrisson, 2002). 요컨대, 빈곤한 가구의 생계를 직접 측정하는 1980년대 이후의 자료와는 달리, 그 전 약 160년에 달하는 자료는 GDP 자료다.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은 이 지점을 비판한다. 잘 알려져 있듯, GDP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교환, 매매되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집계하는 지표다. 따라서,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간주되는 재화나 용역은 일반적으로 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GDP 지표의 이런 성격을 아이러니컬하게 잘 보여주는 유명한 예화가 있다. 가사를 맡기던 고용 가정부와 결혼해 그가 가정주부가 되면 GDP가 감소한다는 얘기다. 즉, 가사노동이 더 이상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히켈에 의하면, 이런 GDP의 속성 때문에, 과거에는 화폐적 가치가 매겨지지 않던 전통 사회의 활동들이 상품화되면서, 실제 소비는 늘어나지 않아도 GDP가 증가하는 것으로 계상된다는 것(Hickel, 2019a). 거꾸로 말하면,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GDP의 액면가만 본다면 전통 사회가 실제보다 훨씬 더 가난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히켈은 '신낙관주의자'들이 그림1과 같은 그래프를 통해 전파해온 내러티브를 강하게 비판한다. 세계 각지의 전통 경제를 자본주의 세계 시장에 강제로 통합한 식민 지배의 착취를 은폐한다는 것이다. 화폐로 값이 매겨지지 않은 전통 사회의 소비를 통계에서 체계적으로 누락시키는 한편, 시장화 과정에서 경험한 소득의 증가는 실제 생활수준의 향상을 과대평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벨기에의 식민 지배로 인구의 절반인 천만 명이 사망한 콩고, '원주민 토지법(Native Land Act)'의 통과로 전통적으로 공유해오던 토지를 빼앗겨버린 남아프리카, 영국의 농업 정책으로 3천만 명이 사망한 대기근을 겪었던 인도 등, "자유 시장"이라는 미명 아래에 실제로는 생활수준의 급격한 후퇴를 겪고 있었던 시기를 '진보'의 역사로 포장할 수 있었다는 게 히켈의 비판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비판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시장에서 거래를 통해 실제로 교환된 재화나, 혹은 그런 거래를 통해 수중에 획득한 현금만이 매디슨의 GDP 통계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오늘날 GDP와는 달리 과거의 GDP를 계산하는 바탕이 되는 통계 자료들은, 경지의 면적과 단위 당 수확량 따위를 통해 산출량을 추정하였으며, 따라서 상업적 거래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생존 경제(subsistence economy)의 생산물도 통계에 반영되었다. 농업 생산만이 통계에 반영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가 인용해온 그래프를 만든 장본인인 경제학자 막스 로저(Max Roser)는 히켈의 비판이 사실을 왜곡한다고 강한 불만을 표한다(Roser & Hasell, 2019). 반면, 이런 반박에 대해 히켈은 GDP의 국민 계정 관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가내생산물 따위는, 물론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지 않았더라도 GDP로서 통계에 포함되지만, 공유림을 통해 획득한 사냥감이나 사료, 마을 공동체의 공동 관개 시스템으로부터 획득한 물 등, 공유지로부터 획득한 재화와 용역들은 채 포함되지 않았다고 재반박한다(Hickel, 2019b).


 그 자신이 세계은행 연구소의 수석 경제학자를 지내기도 했던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이런 히켈의 지적이 몇 가지 타당한 논점들을 제기한다고 평가한다(Milanovic, 2019). 밀라노비치는 한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우는 ICT 혁명의 예를 들어 보인다. 즉,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이 등장한 플랫폼 경제로 말미암아, 이전에는 화폐로 계상되지 않던 활동들의 경제적 가치가 GDP에 포함되었다. 밀라노비치의 말을 빌리자면, “에어비앤비와 우버가 나타나기 이전엔 친구의 지인들을 집에서 접대하거나 공항에 차로 바래다주는 건 GDP의 일부가 아니”었지만, 이런 활동들이 '공유기업'들에 의해 경제적 대가를 받고 교환되는 용역 상품이 되면서는 GDP에 포함되었다. 밀라노비치가 지적하듯, '4차 산업혁명'보다 훨씬 급진적인 구조적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시대에는 이런 변화가 훨씬 더 컸으리라 짐작하는 게 합리적일 테다. 소득 불평등 문제에 대해 천착해온 석학이기도 한 밀라노비치는, 특히 소득 분배에 대한 과거의 자료들이 많은 부분 추정에 의존한다는 약점도 강조한다. 거기에 빈곤선의 설정과 관련해 산제이 레디와 로버트 앨런 등이 제기해온 여러 문제들까지 고려하면, 빈곤율의 긴 시계열적 변화를 추정하는 데에는 매우 큰 불확실성이 따른다는 것. 반면, 스티븐 핑커는 이런 여러 복잡한 쟁점들은 생략한 매끈한 그래프를 다분히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고 꼬집는다.


 사실, 문제는 히켈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다소 복잡하다. 막스 로저가 지적했듯, 단순히 가계 서베이 자료에 비해 GDP 데이터는 비화폐적(non-monetary) 소비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이분법적으로 나눌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회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생산과 소비의 패턴이 바뀌면서 이전에는 없던 상품들이 GDP에 새로이 포함된다는 사실이 까다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건 사실이다. 과거에는 GDP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상품들이 포함됨에 따라, 구매력평가지수(PPPs)를 산출하는 바탕이 되는, 소비 및 생산물의 구성과 상품들의 상대가격 따위가 모두 달라질 것이기 때문(Prados de la Escosura, 2000). 따라서, 앨런의 지적에 의하면, 지수를 산출하는 기준 재화들에 빈곤층의 살림과 직접 상관이 없는 품목들이 포함되어 있는 문제는, 먼 과거의 빈곤율을 추정할수록 더 큰 오류를 낳을 가능성이 커진다(Allen, 2020). 즉, 굉장히 긴 시간적 간격을 두고 있는 먼 오늘날 시점의 PPP 달러로 200년 전부터의 빈곤율의 변화를 추적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스티븐 핑커와 한스 로슬링의 그래프가,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실태를 적지 않게 왜곡하리라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그리고, 비록 기준연도의 PPP 달러로 빈곤선을 계산하지 않고, 앨런의 방법론을 따라 ‘기본 욕구 빈곤선’을 각각의 연도와 지역에 대해 계산했지만 데이터의 부족으로 1920년 경 이전으로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해 물가를 외삽 추정한 최근의 OECD 편찬 연구(Moatsos, 2021)도 비슷한 문제를 노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전체 물가지수의 변동은 빈곤선을 채우기 위한 살림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전세계의 제3세계 국가들에서 전개된 시장화가 많은 곳에서 전통 경제의 해체와 함께 생활수준의 저하를 야기했다는 것에 관해서는 히켈의 지적이 타당한 면이 있다. 특히, 세계 경제가 영국을 중심으로 하나로 통합되어 가던 세계화의 시대, 19세기 마지막 사반세기에 있었던 엘니뇨로 인한 기후적 변화와 맞물려 일어난 대기근은 인도, 중국, 브라질 등에서 엄청난 희생자를 기록했었다. 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는 이를 두고 '빅토리안 홀로코스트'라고 부른다(데이비스, 2008). 데이비스는 이 시기의 대기근이 단순히 기후의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현상임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자연 실험'을 고안해낸다. 즉, 18세기의 같은 엘니뇨 사태 때에는 나름 효율적으로 작동했던 중국의 기근 방어 체계가 19세기에는 수많은 기아 사망자를 낳았다는 것. 20세기 엘니뇨 사태의 기록적인 희생자 규모는, 단순히 기후 현상의 영향을 받는 지리적 범위가 과거에 비해 넓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전부 설명하지 못한다는 게 데이비스의 주장이다.


 데이비스는 제3세계가 세계 시장에 강제로 통합당하며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자연재해에 극히 취약해졌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인도 전통 사회의 생존 경제가 수출을 위한 영농 경제로 전환된 이후, 과거에는 예비 자원으로 비축되었을 농산물들이 모두 수출되는가 하면, 공유지에 재산권이 설정되며 예전에는 경제적 대가 없이 누릴 수 있었던 많은 자원들을, 재해 시기에 누리지 못하는 주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영국이 인도에 설치한 철도는, 오히려 인도 농산물의 영국 수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이었다. 이 시기 인도의 생활수준 변화는, 1880년부터 1900년 사이에 감소한 매디슨 데이터베이스의 기대수명 통계에도 반영되어 있다. 중국에서도, 전통 시장이 수입 공산품과의 경쟁을 감당하지 못했고, 이로부터 비롯된 농민 봉기는 아편전쟁 등으로 인한 국고의 고갈과 맞물리며, 18세기에 이뤄진 것과 같은 농산물의 지역 간 재분배를 통한 정부의 구호 활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아편 거래로 누적된 무역 적자와 금본위제로부터 비롯된 물가의 폭등은 세수 기반을 위태롭게 했고, 역시 정부의 재난 대응 능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이렇게, 근대의 시장 경제에 통합되는 세계화의 과정 속에 중국, 인도, 브라질 등지의 제3세계에서 최소 3천 만명에서 최대 6천 만명이 기근으로 사망했다고 데이비스는 추산한다(데이비스, 2008). 1870년 즈음 세 나라의 인구 수가 총 6억 2천만 정도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데이비스는, 이 '빅토리안 홀로코스트'가 오늘날의 '제3세계'와 선진국들 사이의 발전 격차를 낳은 결정적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20세기를 얘기하며 핑커가 그의 저서에서도 거듭 언급한 중국의 대기근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얘기하지 않기는 어려운데, 그동안 우리는 왜 19세기의 역사에서 ‘빅토리안 홀로코스트’는 쏙 빼놓았던 걸까? 핑커 역시 «계몽»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강제한 계획 경제가 낳은 20세기의 대규모 기근에 대해서는 말하면서도(p.131), 20세기 대기근에 비해 규모 면에서도 크게 뒤지지 않고 전세계 총인구 비율에서는 20세기를 훨씬 앞지르는 19세기의 이 대기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경제사학자 폴 바이로크(Paul Bairoch)는 이 19세기의 세계화가 서구 사회 선진국들의 산업화와 함께 오늘날 '제3세계'라 불리는 지역에서는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를 불러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Bairoch, 1982). 이 시기 '세계화'가 진행되며 선진국들의 공산품이 대량 유입되면서 경쟁력을 잃은 제3세계 국가들의 제조업은, 상대적인 비율로도 선진국들에 비해 생산량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도 1인당 산출량이 그 이전 18세기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는 것. 이 일들이 모두 그림1의 그래프가 그리는 궤적 중 첫 절반에 해당하는 시기에 일어난 일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이런 의문을 제기해볼 수도 있을 법하다: 세계는 과연, ‘빅토리안 홀로코스트’와 제3세계의 ‘탈산업화’ 이전 시대에는 그보다도 더 끔찍한 삶을 살고 있었던 걸까?


 앨런은 해당 지역의 과거 물가 자료로 ‘기본 욕구 빈곤선(Basin Needs Poverty Line)’을 산출해, 19세기 초 영국과 인도의 빈곤율을 각각 계산해보인다(Allen, 2020). 물론, 앨런의 '기본 욕구 빈곤선'에도 한계는 있다. 무엇보다도, 빈곤층이 오로지 주어진 영양기준만을 최소의 비용에 충족하는 소비 패턴을 실제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Ravallion, 2020). 하지만, 세계은행의 빈곤선에 비해서는 서로 다른 시간과 지역에 걸쳐 비교적 일관된 의미를 보존한다는 점에서, 먼 옛날의 빈곤율을 오늘날과 비교하는 데에는 보다 나은 기준이 되어줄 수 있다. 앨런의 계산에 따르면, 세계은행의 계산법으로는 19세기 초 영국의 빈곤율은 30% 수준이었지만, 같은 시점의 '기본 욕구 빈곤선' 미만 빈곤율은 5-6% 정도일 뿐이었다. 앨런은 당대에 동인도회사에 의해 실시된 서베이 데이터를 사용해 19세기 초 인도 비하르(Bihar) 지역의 빈곤율도 계산한다. 동인도회사의 뷰캐넌이 가계를 그 규모와 지출 수준에 따라 49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한 이 자료로, ‘기본 욕구 빈곤선’ 미만 빈곤율을 계산하는 연구를 수행한 결과 빈곤율이 대략 23%에 달했던 것으로 앨런은 계산하고 있다. 산업혁명 초기에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극단적 빈곤'에 처해 있었다는 스티븐 핑커나 한스 로슬링의 그래프에 비교해서 훨씬 덜 암울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럼, 이렇게 비교적 낮은 빈곤율이 예외적 현상이었던 건 아닐까? 물론 앨런의 말처럼, 뷰캐넌이 비하르 지역의 가구 서베이를 남기기 이전 시대에는 앨런이 사용한 것과 같은 서베이 자료가 부재했다. 하지만, 무굴제국 말기를 거치며 인도의 실질임금은 하락해왔다는 사실을 통해, 그 이전 빈곤율은 오히려 더 낮았을 거라는 짐작은 해볼 수 있다. 1980년 인도의 빈곤율이 60%에 육박한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결국 19세기 초 23% 내외에 달했던 빈곤율은 그 사이 어느 기간 동안 크게 상승한 셈이다. 앨런은 이렇게 인도에서 빈곤율이 크게 증가한 까닭을 두고, "많은 요소들이 관여되어 있었겠지만, 제국주의와 세계화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p.129)"이라고 짐작한다. 인도만 이랬던 걸까? 18세기 중국의 생활수준은 유럽의 그것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는 포메란츠(Kenneth Pomeranz)를 비롯한 몇 경제사가들의 주장이나(Pomeranz, 2000), 혹은 최소한 그 실질임금이 인도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었다는 사실(Allen, 2011)까지도 따져본다면, 중국 역시 사정이 비슷했을 거라는 짐작도 아주 무리는 아니다. 앨런은, 2차대전 이후 5-60% 수준에 달했던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사회의 높은 빈곤율은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넌지시 건넨다(Allen, 2020).


인도와 중국의 기대수명


 물론, 빈곤선 미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제 생활 수준이 예나 지금이나 꼭 같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빈곤선 위에서 이뤄진 삶의 질의 향상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200년 전과 오늘날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소득 수준에서도 현대인들이 훨씬 건강하고, 따라서 긴 수명을 누린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앨런의 지적처럼 인도는 이미 많은 서구 국가들에서 기대수명이 증가하고 있던 1930년 즈음에도 수명이 27-9세 수준일 뿐이었다. 1880년 이후 약 20년 간은 아예 기대수명이 감소한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가계보 기록으로 추정한 중국의 기대수명은 1830-40년 즈음에 30세 남짓한 정도였던 것으로 여겨지는데(Lavely & Wong, 1998), 위 그림2에서 보다시피 1920년경까지도 거의 아무런 변화가 없이 정체하고 있었다. 생물학적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유력한 정보로서 경제사학계에서 이용되는 ‘신장(height)’의 추세에서는, 19세기 중반 이후 뚜렷한 감소세가 나타난다(Baten, Ma, Morgan, & Wang, 2010). 중국과 인도의 인구는 1820년 이미 도합 5억 9천만 명으로 약 10억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사는 대륙이 근대로 접어들며 경제적으로는 빈곤율의 향상을 겪은 반면, 건강 및 기대수명의 측면에서는 1920년까지도 의미 있는 생활수준의 향상을 경험하지 못했고,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생활수준이 후퇴했다는 것. 어떤 '낙관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놓고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데, 앨런의 연구가 보여주는 그림대로라면 적어도 제국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그 말이 크게 틀린 말도 아닐 성싶다. 하지만 확실히, 그림1처럼 1820년대 이후 매끄럽게 빈곤율이 감소해가는 그래프로는 그 첫 절반의 기간 동안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물론, 19세기 생활수준에 관한 수량적 자료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단정적 결론을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림1의 그래프를 들고 세상의 변화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전파해온 일부 '낙관주의자'들 역시, 부족한 증거에 비해 자본주의의 근대사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이해를 유포해온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의심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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