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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Dec 27. 2020

성격은 과연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ACE/ADE 모델


MBTI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MBTI가 "선천적인 선호"를 측정하는 검사라는 설명을 많이들 들어봤을 거다. 즉 MBTI 유형이 매번 검사할 때마다 바뀐다고들 하지만, 그건 수검자가 MBTI 검사나 혹은 수검자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고, 사실 MBTI 각 지표에 대한 타고난 선호는 바뀌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가령, 한국MBTI연구소의 연구부장님이 출연해 MBTI 열풍과 MBTI를 향한 의문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해주는 이 영상(https://youtu.be/rZ-x5uNhb4w)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4분 37초부터). "왜 내 MBTI 결과는 매번 바뀌나"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이 검사 도구가 뭘 알아보는 도구인지를 모른 채 검사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답한다.



...가장 중요한 거는 MBTI가 알아보고자 하는 건 선호라는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거죠. 근데 거기에 전제가 하나 붙습니다. 선천적인 선호라는 거예요. 두 개가 있더라도 둘 다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이게 더 좋아 더 편해", 이 부분을 알아보는 도구인데 사람들은 그 순간순간에 대한 반응을 너무 많이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어제 검사한 결과, 오늘 검사한 결과, 내일 할 검사 결과가 다 다를 거예요. 신뢰도, 타당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MBTI는 역사가 오래됐기 때문에 그걸 계속 보정하고 수정하고 또 일반 대중들이 이걸 신뢰하고 쓸 수 있게끔 문항을 계속적으로 재표준화를 통해서 거듭된 역사가 있다 보니까 확보가 안 될 수가 없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는 MBTI의 검사 결과가 안정적이지 못한 까닭을 그 신뢰도의 문제가 아니라 MBTI에 대한 수검자의 몰이해에 돌리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MBTI의 신뢰도 문제의 상당 부분은 검사지가 측정한 개인의 성격을 '유형'으로 해석할 때 발생한다. 검사지의 문항들이 제아무리 신뢰도, 타당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그 문항들로 측정한 성격의 연속적 분포를 중간에서 임의로 잘라 유형으로 나누는 것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두 지표 중 어느 한 쪽으로의 선호 경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을 서로 반대 유형으로 분류해버리면 이들의 검사 결과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MBTI는 유사과학일 뿐일까 참고).



이런 문제는 차치하고, MBTI "선천적인 선호" 측정한다는 말을 검증해보자. 과연 사람의 성격은 타고나는 것일까? 여러분도  질문들에 대해 저마다 나름의 대답을 갖고 있을 거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불씨를 안고 있는 예민한 문제일  있다.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성실하다면, 그건  타고난 "본성" 문제일까? 과연 성격은 선천적인 본성 후천적인 양육   무엇으로 정해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선천적으로 타고나고, 어느 정도는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답한다면, 그건 당연히 맞는 말일 테지만 너무나 당연한만큼 별 정보값이 없는 답이기도 하다. 과연 성격은 어느 정도나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고, 어느 정도나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표본이 바로 쌍둥이 표본이다. 일란성 쌍둥이(MZ)는 서로 100%의 유전 정보를 공유하지만 이란성 쌍둥이(DZ)는 평균 50% 정도의 유전자만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사실을 이용해 표현형의 차이를 유전으로 인한 차이(유전력)와 환경으로 인한 차이로 분해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동일한 가정에서 함께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같은 조건의 이란성 쌍둥이보다 서로 더 닮았다면, 그 정도는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더 공유하는 50%의 유전자 때문일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 그 정도는 어떻게 측정할까? 두 변수 사이의 상관의 정도를 나타내는 상관계수 r로 측정할 수 있다. 상관계수는 두 변수 사이의 공분산을 각 변수의 표준편차(분산의 제곱근)의 곱으로 나눈 것과 같다(통계학을 다루는 글은 아니니, 상관계수가 두 변수의 공분산과 분산으로부터 계산한 값이라는 것만 기억하자). 상관계수 r은 -1<r<1의 범위를 가지고 1에 가까울수록 양의 상관관계가 크며, 따라서 쌍둥이 사이에 표현형의 닮음의 정도가 클수록 r은 1에 가깝게 크게 나타난다. 일란성 쌍둥이(MZ) 사이의 닮음의 정도는 rMZ, 이란성 쌍둥이(DZ) 사이의 닮음의 정도는 rDZ와 같이 나타낼 수 있겠다.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서로 더 닮은 정도는 rMZ-rDZ로 나타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 차이는,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더 공유하는 50%의 유전자 때문에 나타난다.



따라서, 개인들의 행태 중 100% 유전에 의한 유전력(Heritability, Additive genetic effect; A)'2(rMZ-rDZ)'만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란성 쌍둥이 사이의 닮은 정도에서 유전력에 의한 효과를 빼면(rMZ-A = 2rDZ-rMZ) 이는 쌍둥이들이 서로 공유하는 환경의 효과(Common environment; C)라고 볼 수 있으며, 유전력과 공유 환경 효과를 뺀 나머지(1-A-C = 1-rMZ)는 쌍둥이가 서로 공유하지 않는 고유한 환경의 효과(Unique environment; E)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행태의 차이를 상가적 유전 효과(A), 공유하는 환경의 효과(C), 고유한 환경의 효과(E)로 분해하는 모델ACE 모델이라고 한다.



ACE 모델을 적용해 정치 성향의 유전력을 계산한 대표적인 정치심리학 연구인 Alford et al. (2005)의 논문을 보도록 하자. 재산세나 노조, 자본주의 등의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일란성 쌍둥이(MZ)와 이란성 쌍둥이(DZ)의 입장을 나타내는 점수가 각각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갖는지를 아래 표1의 'MZ 상관계수', 'DZ 상관계수' 컬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유전력' 컬럼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계산한 2*(rMZ-rDZ)만큼의 유전력(Heritability)을 파악할 수 있다. 즉 MZ 상관계수와 DZ 상관계수의 차이에 2를 곱해준 값에 해당한다. 같은 열의 마지막 행에서 확인할 수 있듯, 28개의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 유전에 의해 설명되는 차이는 평균적으로 32% 정도이다. 이 32%라는 값은 28개 정치적 사안의 평균인데, 28개 항목을 종합하여 진보-보수 성향을 1차원의 연속점수로 산출, 피어슨 상관계수로 계산하면 유전력은 43% 정도가 된다. 정치적 입장까지도 유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흥미로운 결과다.



표1. 정치 성향의 유전력. 출처: Alford et al. 2005, p.159



이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태어날 때부터 민주당 지지자가 될 것인지, 공화당 지지자가 될 것인지가 대략 40% 확률로 유전자에 코딩되어 있었던 것일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유전력은 사람들 사이의 분산, 즉 ‘차이’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지능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100% 동일한 인구 집단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들 사이의 행태 차이는 전적으로 유전이 아닌 환경 요인에 의해서만 설명될 것이다. 유전자가 100% 동일하니, 유전자에 의한 지능 차이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들 집단에서 지능의 유전력은 0%다. 하지만, 이것이 유전자가 지능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해당 인구 집단에서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일 뿐이다. 유전력이 사람들 사이의 분산을 설명하는 개념이라는 것은 대략 이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ACE 모델에는 한계도 있다. 유전 효과 중에는 대립유전자가 각각 독립적으로 표현형의 차이에 기여하는 '상가적 유전 효과' 말고도, 대립유전자의 우성/열성 여부에 의해 형질의 대물림이 결정되는 '우성 효과'와 같은 비상가적 유전 효과 또한 있지만, ACE 모델은 이같은 비상가적 유전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 이런 효과를 고려한 모델이 ADE 모델로, ACE 모델에서는 이란성 쌍둥이가 일란성 쌍둥이에 비해 50%의 상가적 유전 효과만을 공유한 것과 달리, ADE 모델에서는 이란성 쌍둥이가 일란성 쌍둥이에 비해 상가적 유전 효과를 50%, 비상가적 유전 효과(우성 효과)를 25% 공유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통상 이란성 쌍둥이 사이의 상관관계가 일란성 쌍둥이 사이의 상관관계의 50%보다 작다면 우성 효과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ADE 모델이 보다 적합한 것으로 간주되며, 'A(상가적 유전 효과)+D(우성 효과)/A+D+E'만큼이 유전력에 해당한다.



Alford et al. (2005)의 표1에서는 주어진 상관계수로부터 뺄셈과 곱셈만 하면 유전력을 쉽게 계산할 수 있었지만, 많은 연구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표본에서 주어진 통계량으로부터 해당 관찰값과 가장 적합한 모수들을 찾아내는 반복적인 연산을 수행함으로써, 가장 적은 수의 모수로 주어진 관찰값을 가장 잘 예측하는 단순한 모델을 추정한다(쌍둥이들의 형질 분산과 공분산이 A, D, C, E 등으로 분해될 수 있다는 배경 지식 위에, A, D, C, E에 의한 분산을 각각 σA^2, σD^2, σC^2, σE^2라고 할 때, 표본에서 주어진 각 쌍둥이들의 분산과 공분산에 대하여, 그 분산은 σA^2 + σD^2 + σC^2 + σE^2, 일란성 쌍둥이의 공분산은 σA^2 + σD^2 C^2, 이란성 쌍둥이의 공분산은 σA^2 / 2 + σD^2 /4 + σC^2인 것을 이론적으로 알 수 있으므로, 이론적으로 계산한 값이 관측값과 가장 잘 부합하는 모수 A, D, C, E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방법론의 자세한 설명은 <<Behavioral Genetics>>에 수록된 Shaun Purcell의 부록을 참고).



이같은 방법론을 바탕에 두고 성격의 유전력을 추정한 연구로는 Jang et al. (1996)이 대표적이다. Jang et al. (1996)에 따르면, 성격심리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모델인 5요인 모델의 다섯가지 성격 요인, Big 5에 해당하는 신경성, 외향성, 개방성, 원만성, 성실성은 각각 41%, 53%, 61%, 41%, 44%가 유전(A와 D)에 의해 설명된다. 대략 40%에서 60% 정도의 분산이 유전에 의한 것으로, 각 요인별로도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특히, 지능과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개방성의 유전력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Jang et al. (1996)을 포함하여 성격의 유전력에 대한 메타분석(여러 연구들을 종합하는 연구 방법)을 수행한 Vukasović et al. (2015)에 의하면, 성격 5요인의 유전력은 쌍둥이 연구들에서 평균적으로 48% 정도로 나타난다. 5요인 모델이 아닌 다른 성격 모델, Tellegen이나 Eysenck의 성격 모델에 입각한 연구들도 5요인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종합적으로 쌍둥이 연구에서 성격의 유전력은 47% 정도로 나타난다는 결과이다.



이상으로, 성격이 과연 어느 정도나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본성으로 인한 것인지, 그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해볼 수 있게 되었다. 즉 쌍둥이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의 성격 차이는 대략 절반 정도가 유전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하지 않는 "선천적인 선호"를 측정한다고 주장하는 MBTI의 4개 척도는 어느 정도나 유전력으로 설명이 될까? MBTI는 '성격'이라는 심리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위해 사용되는 도구는 아니기 때문에, 관련 연구들이 5요인 모델만큼 많지는 않다. Bouchard et al. (1998) 정도가 참고할 만한데, 위 Vukasović et al. (2015)의 메타분석에 포함된 대부분의 쌍둥이 연구가 같은 가정에서 자란 쌍둥이들을 표본으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Bouchard et al. (1998)의 연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가 있다. 해당 연구에 의하면 E-I(외향-내향), S-N(감각-직관), T-F(사고-감정), J-P(판단-인식) 연속 척도의 유전력은 각각 57%, 46%, 60%, 39%로, 평균 50% 정도다. 즉 다른 성격 검사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성격은 본성인가, 양육인가?



이 질문에 대해, 인간의 됨됨이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측면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비관이나 냉소로 이어지기 쉬울 것 같다. 이런 생물학적 결정론의 극단에는 우생학과 같은 차별주의적인 이념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배경에서 '본성'을 강조하는 대답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건 얼마간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 이성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계몽주의적 정신에 기댄 많은 사람들은, 타고난 '본성'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때때로 거부감을 보여오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 태어날 때부터 '빈 서판'은 아니란 건 분명해보인다.



물론, 성격은 어느 한 가지 이유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성격이 형성되는 기작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성격을 형성하는 유전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썩 합리적인 이해라고 할 수 없다. "본성인가, 양육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론은, 생물학적 결정론으로도 환경 결정론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그 가운데 어디 즈음에 있을 테다. 그리고, 그 정론을 찾아가는 데에 필요한 한 단초를, 쌍둥이들은 쥐고 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Alford, JR, Funk, CL., & Hibbing, JR. (2005). Are political orientations genetically transmitted?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99(2), 153-167.

Bouchard, TJ., & Hur, YM. (1998). Genetic and environmental influences on the continuous scales of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An analysis based on twins reared apart. Journal of Personality, 66(2), 135-149.

Jang, KL., Livesley, WJ., & Vemon, PA. (1996). Heritability of the big five personality dimensions and their facets: A twin study. Journal of Personality, 64(3), 577-591.

Purcell, S. (2013). Statistical methods in behavioral genetics. In R. Plomin, J. C. DeFries, G. E. McLearn, & P. McGuffin (Eds.), Behavioral genetics (6th ed., pp. 357–411). New York: Worth Publishers.

Vukasović, T. & Bratko, D. (2015). Heritability of Personality: A Meta-Analysis of Behavior Genetic Studies. Psychological Bulletin, 141(4), 769-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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