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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Dec 27. 2020

성격이 정치 성향을 결정할까

성격의 정치심리학


"성격은 과연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https://brunch.co.kr/@kuy06154/5)"에서 Alford et al. (2005)의 쌍둥이 연구를 소개하였다. 일란성 쌍둥이(MZ)와 이란성 쌍둥이(DZ)의 정치 성향을 비교해 보았더니,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서로 더 비슷한 정치 성향을 갖고 있었고 상관계수 r로 나타낸 그 정도의 차이(rMZ-rDZ)는, 100% 유전자를 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에 비해, 50%만큼의 유전자만을 공유하는 이란성 쌍둥이가 서로 유전적으로 덜 닮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rMZ-rDZ는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에 비해 더 공유하는 50%만큼의 유전자에 상응하는 차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즉, 표현형의 차이에서 100% 유전자에 의한 차이는 2*(rMZ-rDZ) 만큼이다.




표1. 미국(왼쪽)과 호주(오른쪽)의 쌍둥이 연구 결과 비교. 출처: Alford et al. (2005). p.162



28개 항목의 정치 성향 차이에서 이 유전력이 평균적으로 대략 32% 정도라는 게 미국 쌍둥이 표본으로부터 나온 결과였으며, 28개 항목을 종합하여 진보-보수 성향을 1차원의 연속점수로 산출, 피어슨 상관계수로 계산하면 유전력은 43% 정도였다. 표1에서 볼 수 있듯, 호주의 쌍둥이 표본에서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들의 정치 성향 차이에서 유전적 원인이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거듭, 여기서 유전력은 개인의 정치 성향이 특정한 방향으로 결정될 확률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짚을 필요가 있다. 유전력은 사람들 사이의 분산, 즉 ‘차이’를 설명할 뿐이다(https://brunch.co.kr/@kuy06154/5 참고). 그래도 여전히, 정치 성향에 대해서 40% 정도의 차이를 유전자가 설명한다는 것은 놀라운 결과다. 과연, 유전자는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개인의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그 답은 개인의 성격과 그 정치 행태 혹은 태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낸 Gerber et al. (2010)과 같은 연구들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앞서 Jang et al. (1996) 등 쌍둥이 연구들은 성격의 분산 중 대략 절반 정도가 유전에 의한 것임을 밝혀낸 바 있었다. 이는 Alford et al. (2005)에서 보고한 정치 성향의 유전력보다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성격을 타고나는 본성으로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정적 특성으로 보았던 애초 심리학계 일각의 관점만큼은 아니지만, 성격이 꽤나 안정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개인의 심리적 특성들 중에서는 비교적 높은 검사-재검사 상관을 보인다는 사실도 연구들을 통해 밝혀지게 되었다(Fraley et al. 2005; Caspi et al. 2005). 따라서, 성격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관계를 갖는다면, 이는 정치적 성향의 유전력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력한 후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Gerber et al. (2010)에 따르면, 이른바 Big 5, 즉 성격 5요인의 각각의 지표들은 실제로 정치적 성향의 특정한 측면과 상관관계를 보인다. 예를 들어, 주어진 과업을 조직적으로 성실히 수행해내는 성향인 ‘성실성(Conscientiousness)’은 보수적 정치 성향과 관계가 있다. 반대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경험에 대한 개방적 태도인 ‘개방성(Openness)’은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경향을 보인다. 타인에 대해 협조적이고 이타적인 성향을 띠는 ‘원만성(Agreeableness)’은 Gerber et al. (2010)에 따르면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만 진보적 성향을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타인을 배려하는 성향이 사회•경제적 약자에 우호적인 진보적 경제 정책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 가운데 특히 ‘개방성’과 ‘성실성’은 여러 선행 연구들에서 역시 비슷한 결과가 반복적으로 재현되어, 정치적 성향과 관계가 깊다는 것이 잘 알려진 성격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기보고식으로 조사한 정치 성향의 차이(분산) 중 Big5 요인에 의해 설명되는 분산은 평균적으로 5%-20% 정도라고 한다(Caprara & Vecchione, 2013; pp.31-32).



물론, 이같은 상관관계가 과연 인과관계인지에 관해서는 회의적인 연구자들도 있다. 가령, 최근의 Osborne & Sibley (2020) 논문은 통계학적으로 보다 발달한 패널 모형으로 검증해본 결과, 성격의 시계열적 변화가 정치 성향의 변화를 야기하지는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해당 논문은, 저자들이 밝히고 있듯 그 연구가 대상으로 하는 표본이 만 18세 이상의 성인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그보다 이른 시기에 형성된 성격이 만 18세 이전에 정치 성향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Although our sample includes those who are 18 years and older, it is still possible that personality may temporally preceded the development of political attitudes much earlier in life,” Osborne explained.», https://www.psypost.org/2020/10/openness-does-not-predict-within-person-changes-in-political-beliefs-58412).






개인의 성격과 그 정치 성향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들이 정치학적으로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그동안 정치학 연구들과 정치 담론들은 정치 성향을 예측하는 인자로서 주로 인구사회학적 특성들에만 주목해왔기 때문이다. 즉, 소득 수준이 높으면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든가, 교육 수준이 높으면 진보 정당을 지지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Gerber et al. (2010)에 따르면 개방성과 성실성 같은 성격 요인은 소득 및 교육 수준만큼이나 개인의 정치 성향을 잘 예측하고 있다. 거듭 Caprara & Vecchione (2013)을 인용하자면, 일반적으로 정치학자들에 의해 정치 행태의 예측변인으로 사용되었던 성별, 연령, 소득, 교육 수준과 같은 인구학적 변수들은 그 차이(분산)를 10% 이상 설명하지 못하는 반면, Big5는 작게는 5% 정도에서 많게는 20%까지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p.32).



물론, 이것이 인구사회학적 변인들이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Gerber et al. (2010)는 성격과 정치 성향의 관계가 ‘인종’이라는 인구사회학적 변수에 의해서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성격이든, 인구사회학적 변인이든, 어느 한 쪽의 원인만으로 정치 행태를 설명하는 것은 사실 반쪽짜리 설명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성격에 관한 정치심리학 연구들의 의의는 사회과학 담론의 영역에서 그동안 공백으로 남아있었던 이 나머지 반쪽을 채워주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성격’이라는 개인의 심리 현상에 대한 이해가, 뜻밖에도 정치 현상까지도 더욱 풍부히 이해하게 해주는 셈이다.








<참고문헌>


Alford, JR, Funk, CL., & Hibbing, JR. (2005). Are political orientations genetically transmitted?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99(2), 153-167.

Caprara, G. V., & Vecchione, M. (2013). Personality approaches to political behavior. In L. Huddy, D. O. Sears, & J. S. Levy (Eds.), The Oxford handbook of political psychology (p. 23–58). Oxford University Press.

Caspi, A., Roberts, BW., & Shiner, RL. (2005). Personality development: Stability and change. Annual Review of Psychology, 56, 453-484.

Fralely, RC. & Roberts BW. (2005). Patterns of continuity: a dynamic model for conceptualizing the stability of individual differences in psychological constructs across the life course. Psychological Review, 112(1), 60–74.

Gerber, AS., Huber, GA., Doherty, D., Dowling, CM., & Ha, SE. (2010). Personality and political attitudes: Relationships across issue domains and political context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04(1), 111-133.

Jang, KL., Livesley, WJ., & Vemon, PA. (1996). Heritability of the big five personality dimensions and their facets: A twin study. Journal of Personality, 64(3), 577-591.

Osborne, D., & Sibley, CG. (2020). Does Openness to Experience predict changes in conservatism? A nine-wave longitudinal investigation into the personality roots to ideology. Journal of Research in Personality, 87. https://doi.org/10.1016/j.jrp.2020.103979

Dolan, EW. (2020, October 31). Openness does not predict within-person changes in political beliefs. PsyPost. https://www.psypost.org/2020/10/openness-does-not-predict-within-person-changes-in-political-beliefs-58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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