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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Oct 24. 2021

경제 성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까


 한스 로슬링은 왜 세상이 우리의 생각보다 괜찮은 곳인지, 극빈층의 비율과 평균수명, 교육 수준, 백신 접종율, 재해 사망자 수 등 온갖 통계를 제시하며 공들여 설명했다. 이 모든 통계들이 세상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은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세계는 점점 나빠진다"고 응답했다(«팩트풀니스», 76). 이런 괴리의 이유로 한스 로슬링은 우리의 인지적 본능인 '부정 본능'을 지목한다. 즉, 사람들이 세상을 오해하는 건, 세상을 나쁘게 보도록 오도하는 인지적 체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로슬링의 설명이다. 하지만, 극빈층의 비율이 줄어들었다거나, 인류의 평균수명이 증가했다는 객관적 사실과는 달리, 세상이 좋아진다거나 나빠진다는 건 다분히 주관적인 가치 판단의 영역이다. 분명히 인류의 '객관적인' 생활수준은 눈부시게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과연 그 주관적 측면의 변화도 눈부실까? '신낙관주의자'들이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로 내미는 온갖 사회 지표들도, 결국에야 사람들의 주관적 평가의 차원에서 그 의미를 부여받는다. 제아무리 수명이 늘어나고 부유해졌어도 그 '사실'에 우리가 의미부여하지 않고 오히려 삶이 더 불행해졌다면, 그 삶은 더 불행한 삶일 뿐이다. 그럼, 빈곤이니 수명이니 건강이니 하는 지표들을 측정하느라 씨름하지 않고, 삶이 더 괜찮아졌는지 사람들에게 그냥 '직접' 물어보면 안 될까? 즉,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고 있을까?


 세계인들의 행복감에 대한 조사 중 10년 이상의 기간에 걸친 시계열을 보유하고 있어 그 추세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는, 갤럽의 설문조사(Gallup World Poll; GWP)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계 행복 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와, 1981년 이후 세계인들의 가치관을 조사하기 위해 실시된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 자료가 연구에서 널리 쓰인다. 세계 행복 보고서보다 조사 국가 수는 적지만, 더 먼 과거부터 시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세계 가치관 조사의 일곱 차례에 걸친 서베이 자료로, 인구 가중치를 이용한 회귀분석을 수행하면 아래 그림1과 같은 추세가 나타난다. 1점부터 10점까지의 '삶의 만족도(Life Satisfaction)'를 묻는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이, 90년대에 하락세(2차~4차 웨이브)를 보이고, 2000년대 초반 이후 다시 상승세(4차~7차 웨이브)가 나타나 V자의 궤적을 형성하고 있다. 


그림1. 삶에 대한 만족도의 추세


 반면, 세계 가치관 조사보다 늦게 시계열이 시작되지만, 2000년대 중후반 이후 거의 100여개에 가까운 국가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된 갤럽의 설문 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행되는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삶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역시 1점에서 10점 사이로 나타내는 '캔트릴 사다리' 점수는 2006년 5.311점에서 2019년 현재 5.106점으로, 2010년대 초반 이후 소폭 감소해, 몇 년 새 사람들의 행복감이 전반적으로 조금 감소했다고 말하고 있다(그림2). 하지만, 이런 추세를 리드하고 있는 건 인구가 가장 많은 다섯 나라들(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이라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 나라를 그래프에서 제외하면 같은 기간에 그 추세는 뚜렷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림2. 주관적 웰빙(캔트릴 사다리)의 추세


 한편,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 긍정적 감정은 유의미한 추세를 보여주지 않는 반면, 불안이나 우울 등의 부정적 감정은 뚜렷이 소폭 증가했다(그림3). 이번에는 가장 인구 수가 많은 다섯 나라들을 제외했을 때에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난다. 만약, 세계 행복 보고서가 가리키는대로, 지난 십여 년 동안 빈곤율이 줄어들고 기대수명은 늘어났어도, 사람들이 더 불안해지고 더 우울해졌다면, 삶에 대한 만족감도 떨어졌거나 정체하고 있다면, 과연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림3. 긍정적 감정(좌)과 부정적 감정(우)의 추세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는 GDP나 기대수명에 비해 최근에서야 이뤄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난 2세기 동안 인류가 더 행복해졌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스티븐 핑커는 GDP와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경제가 성장하면 따라서 행복감도 함께 증가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이후 인류사에 유례가 없었던 속도로 경제가 성장한 지난 2세기 동안, 인류는 그만큼 더 행복해졌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도, 더 부유한 나라들이 더 행복한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는 아니며, 인과관계를 추론할 때에는 주어진  시점의 상관관계보다도, 변수들 사이의 시계열적 상관이 중요해진다. 요컨대  시점의 높은 소득 수준이 높은 행복감으로 이어지는지가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득이 증가하면 같은 기간 행복도 따라 증가하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라고 알려진 이론은,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으로 인한 국민소득의 전반적인 증가가 국민 행복의 전반적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스털린 역설을 처음 발견해낸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경제 성장이 인간을 크게 발전시키는가?  가지 경험적 증거(Does economic growth improve the human lot? Some empirical evidence)”라는 이름의 논문에서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를  가지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고 있다.  번째 이스털린은, 국가별로  시점의  국민들의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 조사했다. , 주어진  시점에  국가 안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의 행복을 비교했다고   있다. 이처럼 주어진  시점에서 변수의 분포가 어떠한 양상을 띠는지 비교하는 것을 '횡단면적 비교'라고 한다. 그리고  결과, 모든 나라들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행복도가 소득이 낮은 사람들 행복도보다 높은 패턴을   있었다.  번째 비교는 소득이 높은 국가와 소득이 낮은 국가 사이의 횡단면적 비교. , 주어진  시점에서 소득이 높은 나라가 소득이 낮은 나라에 비해 평균적으로  행복한지를 보는 .   번째 결과, 다소 의외로, 국가 수준에서는  횡단면적 관계가 불분명하였다.  번째 비교는 주어진  시점에서의 비교가 아닌 여러 시점들 사이의 비교,  시계열적 비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의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국가의 행복 수준 역시 올라가는지 조사한 것이다.  결과, 1946년부터 1970년까지 이른바 '전후 황금기' 걸친 이십여 년간 미국 경제가 크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평균적인 행복 수준은 증가하지 않았다 사실을   있었다.


 1974년의 이스털린의 연구 결과는, 소득과 행복의 관계가 세 가지 비교에서 모두 일관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명제가, 국가 안에서의 횡단면적 비교에서는 참인데, 국가별 횡단면 비교나 시계열적 비교에서는 모호하거나 거짓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참과 거짓이 동시에 성립하는 모순적 결과를 두고 '역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여러 차원의 횡단면적, 시계열적 연구 사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 모순적 현상을 의미한다.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하는 증거로 종종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의 연구가 소개되곤 한다. 디턴은 2008년 논문에서 애초 이스털린의 논문에 비해 더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GDP가 두 배씩 증가할 때마다 일정한 수준으로 행복 역시 증가하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기 때문(Deaton 2008).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가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증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스털린의 역설의 핵심은, 이런 상관관계가 횡단면적 연구와 시계열적 연구 모두에 걸쳐 일관되게 나타나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디턴의 연구는 국가 단위의 횡단면적 상관관계를 보여줄 뿐, 같은 상관관계가 시계열적으로도 나타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스털린도 역시 1974년의 연구 이후 학자들의 연구가 진척되면서 국가 간에도 소득과 행복 사이의 횡단면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Easterlin, 1995). 디턴 본인도 자신의 위와 같은 연구 결과는 해석하기에 따라 "이스털린의 역설과 양립"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한다(Deaton 2008, p.70).


 반대로, 다른 한편에서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하는 연구로 디턴이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과 함께 한 다른 연구(Kahneman & Deaton, 2010)를 인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연구 역시 마찬가지로 한 국가 안에서 나타나는 소득과 행복의 횡단면적인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일 뿐, 이스털린의 역설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해당 연구에서 디턴과 카네만은 “연봉이 7만5000달러(약 8100만원) 이상이라면 소득이 사람들을 항상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한경비즈니스)”고 하는데, 애초에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따라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이스털린의 역설'이 아니다.


 일정 구간부터는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강조한 경제학자는, 이스털린보다는 차라리 리처드 레이어드(Richard Layard)라고 할 수 있다. 레이어드는 2005년의 저서에서 국가별 GDP와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 그같은 관계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인 나라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Layard, 2005; pp.32-33). 따라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은 차라리 레이어드 교수가 GDP와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전개한 주장이라고 보는 편이 더 낫다.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와 리처드 레이어드 교수 모두, 경제 성장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한 경제학자이고, 행복을 결정하는 변수로 절대소득보다는 상대소득을 주목한 학자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스털린의 역설과 레이아드 가설은 서로 다르다.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하려면, 횡단면적 연구에서 나타난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국가 레벨에서 시계열적으로도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즉, 경제가 더 많이 성장한 나라가, 행복의 증가도 더 크게 경험했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보여줘야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연구를 수행한 것이 바로, 스티븐 핑커가 그 저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베시 스티븐슨(Betsey Stevenson)과 저스틴 울퍼스(Justin Wolfers)의 2008년 논문이다. 이들은 세계가치조사(WVS),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 등의 서베이 데이터로써 GDP 성장과 국민의 평균적인 행복의 변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성립함을 보여준다(Stevenson & Wolfers, 2008). 그리고, 이같은 상관관계의 기울기(회귀 계수; 독립 변수가 한 단위 변화할 때 종속 변수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의미)가 국가 사이에 나타나는 횡단면적 관계에서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결과를 한편으로 강조한다. 거듭, 이스털린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절대소득(즉 소득의 절대적 크기)보다는 상대소득의 역할을 강조했다. 하지만, 시계열적 관계나 횡단면적 관계나 비슷한 기울기를 가지고 있다는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발견은, 상대소득을 강조하는 이스털린의 이론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반박에 대해서 이스털린은 어떤 대답을 내놓았을까? 이스털린에 따르면, 스티븐슨과 울퍼스는 단기의 경기 변동 효과와 장기의 경제 성장 효과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Easterlin & Angelescu, 2009; Easterlin, Mcvey, Switek, Swangfa & Zweig, 2010). 이같은 이스털린의 주장을 검토하기 전에, 이스털린 본인이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팩트풀니스»에서 한스 로슬링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실제보다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사람들이 긍정적 변화를 금방 잊는다는 사실을 지목한다. 경제가 성장해도 사람들의 행복이 증가하지는 않는 이유에 대한 이스털린의 설명을 들으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앞서 짧게 언급했지만, 이스털린은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소득이 아니라 상대소득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즉, 소득의 절대적인 크기보다도,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사회적 기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소득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가 행복을 결정하는 인자라는 의미다. 따라서 주어진 한 시점에서는 소득과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자기의 소득 수준을 사회의 평균적인 수준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늠하게 되면서, 사회의 평균에 비해 훨씬 높은 소득을 버는 사람은 만족감을 크게 느끼게 되고, 그 반대로 사회적 평균보다 못 버는 사람은 준거 집단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되면서, 주어진 한 시점에서 한 국가 안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소득과 행복 간 정(+)의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것. 하지만, 경제 성장을 통해 모두가 다 함께 소득이 올라 제 상대적인 위치에는 별 변화가 없다면, 소득을 과거에 비해 더 벌게 되어도 더 행복해지지는 않을 게다.


 이런 소득의 비교는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소득 수준의 상대적인 차이 사이에서 이뤄질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는 과거 자신의 소득과 현재의 소득 사이에도 이뤄진다고   있다. 특히, 불황기에는 경제 상황이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나빠지며 삶에 대한 만족도도 같은 방향으로 변하기 때문에, GDP 변화와 행복 변화 사이에 시계열적 관계가 성립할  있다. 그래서, 아래 그림4처럼 단기적으로는 GDP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 이스털린의 이론에 비춰봐도 이상하지 않다. 그림4의 그래프는 이스털린의 이론에 입각해 소득(income) 행복(happiness) 장단기에 걸쳐 어떤 추세를 그리며 변화하는지를 도식화해 보여준다.  장기적 추이를 그리고 있는  추세선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지만, 회색 수직선들을 기준으로 구간을 나누어 보면,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있다.



그림4. 소득과 행복의 장단기 추세


 하지만 이걸 경제 성장의 효과,  사람들이 누리는 절대적인 부의 크기에 의해 나타나는 효과와 혼동하면 곤란하다. 단기적으로 불황에 따라 행복도가 감소하고 이후 호황기에 종전의 소비 수준을 회복하며 행복도가 다시 증가한다고 해도, 이건 과거의  처지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이동한 위치에 의해 나타나는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애초 이스털린의 이론은, 개인의 소득이 증가하면 욕구 수준도 따라 증가해 변화한 소득수준에 적응하여, 장기적으로는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었다(Easterlin 2001). 이런 그의 이론처럼,  그래프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소득과 행복이 같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고로 GDP와 행복 사이의 관계가 국민소득의 절대적인 크기 변화에 의해 나타난다는 걸 증명하려면, 호황과 불황의 한 사이클이 완료되었을 때의 누적 연평균 성장률 역시 그 기간의 행복의 변화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즉, 단기가 아닌 장기에 걸쳐서도 GDP 행복 사이에 시계열적 상관관계가 있다는  보여줘야 '이스털린의 역설' 반증할 수 있다. 반면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연구는 그런 장기적 관계를 분석하지 못했다는 게 이스털린의 반론이다(Easterlin & Angelescu, 2009; Easterlin, Mcvey, Switek, Swangfa & Zweig, 2010).


 비슷한 이유로서베이 데이터가 커버하고 있는 기간 동안 사회체제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붕괴했었던 경제를 회복하는 중이었던  공산권 국가들을 따로 고려해야  필요 있다고도 이스털린은 지적한다 공산권 국가들은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 경제가 크게 후퇴했고이를 회복하는 데에 통상 경기의  싸이클이 완료되는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이 걸리기도 했다아래 그림5처럼, U자 곡선을 그리며 경기가 바닥을 쳤다가 원점을 회복하는 데에 길게는 18년씩이나 걸리기도 했다하지만많은  공산권 국가들에서 행복 데이터가 수집되기 시작한  90년대 이후이며, 80년대 이전부터 자료가 있는 나라들은  없었다때문에이들 국가를 데이터셋에 포함하면 GDP 행복의 단기적 변화가  장기적 관계를 오염시킬  있다는  이스털린의 논지다90년대에 저점을 찍기 이전 경기의 고점 때부터다시 고점을 회복할 때까지의 전체 사이클을 모두 포함하는 시계열이 있다면경제 성장과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있을 테지만전체 사이클의 일부만 있다면 행복지수가 경기의 사이클을 따라 감소증가하는 (다른 나라들의 일반적 경기 사이클에 비해 긴) 단기적 관계를 장기적 관계와 혼동할  있기 때문이다.


그림5. 구 공산권 국가들의 1인당 GDP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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