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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Oct 24. 2021

복지국가가 더 행복할까






 스티븐슨과 울퍼스는 이스털린의 이런 반박에 응해, 다니엘 삭스(Daniel Sacks)가 함께 참여한 2010년의 논문에서, 장기적으로도 GDP와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구 공산권 국가들이 아닌 나라들에서도 이같은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Sacks, Stevenson & Wolfers, 2010). 이들의 세계가치조사(WVS) 데이터 분석에서는, 시계열이 평균 11년 정도일 때도 GDP의 변화와 행복의 변화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나타났다.


 삭스 등의 연구가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비판이었다면, 갤럽 월드 폴(Gallup World Poll; GWP) 자료를 사용해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비판에 나선 에드 디너(Ed Diener)와 그 동료들의 연구는 심리학자들의 비판이다(Diener, Tay & Oishi, 2013). 이들에 따르면, 가계의 소득 변화는 행복의 변화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다. 이들은 상대소득보다는 절대소득이 더 중요한 인자였다고도 주장하며, 동시에, 저자들이 분석한 6년 정도의 기간에서는 GDP는 가계 소득 변화의 차이를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스털린이 소득과 행복 간 시계열적 관계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소득 변화의 지표로서 GDP를 사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일 가능성을 시사한 것.


 사회학자인 빈호벤(Ruut Veenhoven) 역시 행복에 관한 연구들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는 세계 행복 데이터베이스(World Database of Happiness) 자료를 활용해 최소 10년의 시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보다 방대한 데이터셋으로도 GDP 성장과 행복의 변화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며,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반박에 나선다(Veenhoven & Vergunst, 2014). 빈호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들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행복이 증가할 확률이 더 높았으며, 40년 이상의 시계열을 형성하는 데이터셋으로도 연평균 GDP 변화율과 행복 변화율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이스털린은 삭스 등의 재반박이 역시 단기와 장기를 제대로 분별하는 데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Easterlin 2015, Easterlin 2016). 그들이 사용한 주요한 데이터인 WVS의 분석은 비록 시계열이 평균 11년이지만, 실은 대략 절반 정도의 나라들이 10년보다 짧은 시계열을 갖고 있었으며 시계열이 3년에서 7년 정도로 짧은 나라들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라는 것. 유로바로미터 자료의 분석에서는 GDP와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검증할 수 있었을 10년 이상의 시계열을 10년 단위로 끊어 분석함으로써 단기적 관계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고 반박한다. 무엇보다, WVS의 데이터는 삭스 등의 연구가 이뤄지던 시점에 이미 5차 조사 자료 역시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4차 조사까지의 데이터만 이용한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이스털린은 지적한다. 이스털린이 직접 5차 조사를 포함해 6차의 자료까지 사용해 분석한 결과는, 오히려 GDP와 행복 사이에는 장기적인 시계열적 관계가 없었다는 이스털린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에드 디너 등의 연구에 대해서는, 길어야 6-7년 정도의 짧은 기간의 관계를 보여줄 뿐으로 역시 이스털린이 강조하는 장기적 관계를 검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 논문에서 이스털린은 WVS 자료를 이용해서는 국가별로 평균 28년의 시계열을, 디너 등이 연구에서 사용한 GWP 자료로는 평균 14년의 시계열적 관계를 분석했는데(Easterlin & O'Connor, 2020), 그에 비해 6년은 너무 짧다는 것.


 빈호벤의 연구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GDP와 행복 사이의 장기적 관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WVS, Gallup 등 여러 조사들을 함께 분석하고 있어, 서로 다른 자료들을 함께 분석하는 것이 방법론적으로 과연 적절했는지 이스털린은 의문을 남긴다(Easterlin 2016). 예를 들어, WVS의 '행복(happiness)' 데이터에는 조사 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사실을 지적한다. 2차 조사에서는 응답자에게 제시된 "매우 행복함(very happy)"부터 "전혀 행복하지 않음(not at all happy)"까지의 선택지들의 순서가 응답자가 바뀔 때마다 바뀌도록 했었는데, 3차 조사부터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단 것. 사회조사에서는 '초두효과'라고 하여, 응답자들이 먼저 제시되는 선택지를 더 많이 선택하는 현상이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는데, 3차 조사 이후에는 모든 응답자들에게 "매우 행복함(very happy)"을 먼저 제시하였으므로, 이런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보면 실제로는 사람들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에 변화가 없더라도 마치 행복감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스털린에 의하면 빈호벤의 데이터셋에서 21~40년의 시계열을 가진 국가들의 1/4 정도, 10~20년의 시계열을 가진 나라들의 1/5 정도가 이렇게 왜곡될 수 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같은 연구의 40년 이상의 데이터셋에도 마찬가지의 상향 편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스털린은 지적한다. 이른바 '캔트릴 사다리'라고 해서, 사다리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서부터 가장 높은 단계까지 중, 본인의 삶이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지를 응답자가 고르도록 하는 문항이 있었는데, 과거 해당 문항을 사용한 서베이에서는 응답자들이 응답 직전 조사자와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가장 나쁜" 상태를 묘사하라는 지시에 응했었다는 것. 따라서, 해당 조사에서는 부정적인 프레임에 노출된 응답자들이 제 만족도를 보다 낮은 상태로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최근의 조사에서는 그런 우려가 없으므로, 이 문항에 대한 응답들은 역시 추세적으로 상향 편의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이스털린은 빈호벤의 데이터에서 40년 이상의 시계열을 가진 18개 국가들 중 11개 국가가 이런 오염의 우려가 있는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스털린이 지적한 또 하나의 오류는, 빈호벤이 GDP의 장기적 추이를 연구하면서, 고정 달러(constant dollar)로 계산한 GDP가 아닌, 각 시점의 현재 달러(current dollar)로 계산한 GDP를 분석에 사용했다는 것. 같은 값의 화폐라고 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실질 가치는 변동하기 때문에 이런 연구에서는 기준년도로 가격을 고정하여 서로 다른 시점 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처리가 필요한데, 빈호벤은 그냥 현재 달러를 분석에 사용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코로나 판데믹이 세계를 덮치기 직전까지 수행된 가장 최근의 WVS와 EVS(European Values Survey), GWP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이스털린은 다시, 장기적으로는 경제 성장이 더 높은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준다(Easterlin & O'Connor, 2020). 애초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논문에서 분석한 것보다도 많은 수의 나라들을 분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GDP와 행복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었다는 것. 레이아드의 가설대로 소득 수준이 낮을 때에만 GDP의 증가가 행복을 증가시키는 관계도 없었다. 즉, 경제적 개발 수준이 낮은 국가들에서도 장기적으로는 GDP의 성장이 행복을 증가시키지 않았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단연 중국이다. 인류의 행복이 근대 자본주의의 출현과 더불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는 정확히  길이 없지만, 실제 역사에 가장 근접한 가늠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례가 있다면, 역시 중국일 테다. 과거 산업자본주의가 서구 문명에 선물했던 것과 같은 근대적 경제 성장을, ‘행복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한 최근 몇십  동안 가장 압축적으로 겪은 나라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가치조사(WVS) 처음 참여한 1990년부터 2017년까지, 1인당 GDP 4 이상 증가하는 경제 성장을 기록했. 경제사학자들이 널리 사용하는 역사 통계인 메디슨 데이터베이스(Maddison Project Database, version 2020) 따르면, 1990 시점의 중국의 1인당 GDP 2011 달러로 $2,982, 산업혁명기에  진입하는 1760 영국의 그것($2,915) 비슷한 수준이다(Wu, 2014; Broadberry et al. 2015). 역시 같은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경제가 중국의 2017 1인당 GDP $12,734 처음 능가하게 되는  1950년대다. 따라서,  27 동안의 중국의 경제 성장은, 과거 서구 문명이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로 진입하고  한복판을 지나며 겪었던 성장과 양적으로 맞먹는 수준이었던 . 놀라운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민들의 행복은 1990년에 비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사실이다. 오히려  기간에 중국인들의 행복은 다소 감소했다가 2000년대 이후 다시 증가해 최근에야 애초의 수준을 회복하는 U 궤적을 보여준다(그림3). 이스털린에 따르면, 세계가치총조사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행복에 관한 다른 조사 자료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Easterlin, Morgan, Switek & Wang, 2012).


그림3. 중국의 행복지수


 중국의 사례를 통해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실은 이스털린의 역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기본 욕구"가 충족되기 전 "일정 수준" 미만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행복도 증가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스털린의 역설을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중국의 사례에서는 그런 현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 세계은행은 최소한의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극단적 빈곤을, 저소득 국가의 빈곤선으로부터 산정한 ‘하루 $1.9’의 국제 빈곤선을 기준으로 정의한 바 있다. 지난 글에서 이미 지적했듯, 지난 20여 년 동안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이 국제 빈곤선 기준의 극빈 상태에서 탈출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의 $1.9 미만 ‘극단적 빈곤’ 비율은 1990년 66.3%에서 2016년 0.5%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행복은 증가하지 않았다.


 과거 인류의 생활 양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원시 부족민 사회의 행복을 조사함으로써도, 근대적 경제 성장을 겪기 전의 먼 과거 인류의 행복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원시 부족민이 근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산업 사회의 시민들보다 불행하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동아프리카 케냐에서 목축 생활을 하며, 케냐의 화폐 경제 바깥에서 수도도, 전기도 없이 살아가던 마사이족은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행복을 보고했으며(Biswas-Diener et al., 2005), 남아프리카에서 목축 생활을 하는 힘바족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도 이들 원시 부족민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선진국 가운데 하나인 영국의 성인들보다도 높은 수준의 행복을 누린다(Martin & Cooper, 2017). 수렵채집민 하드자 부족 역시 현대화된 삶을 사는 폴란드인들보다 더 높은 행복감을 보고하고 있다(Frackwiak et al., 2020).




 그렇다면, 90년대에 중국인들의 행복이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오히려 감소하고 2000년대 이후에야 다시 1990년 즈음의 수준을 회복한 까닭은 대체 무엇일까? 경제 성장이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면, 무엇이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까? 세계행복보고서는, GDP 외에 행복을 예측하는 변수로서 건강 기대수명,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 등의 사회적 지지, 삶의 선택의 자유, 부패의 부재 등을 꼽는다(Helliwell & Wang, 2012). 2012년 처음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에 수록된 연구에 의하면, 1인당 GDP를 포함한 이 다섯 변수가 지역 간 행복의 차이를 거의 대부분 설명한다고 한다.


 하지만, 2017년 같은 보고서에 수록된 이스털린의 연구에 의하면 이 변수들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중국인들의 U자 궤적의 행복과 꼭 같은 궤적을 그리는 것은 없었다(Easterlin, Wang & Wang 2017). GDP는 꾸준히 오르고 있었으며, 기대수명 역시 증가세가 8-90년대에 한풀 꺾이긴 했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자유나 부패 측면에서는 GDP나 기대수명에 비해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대신, 이스털린은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사이, 경제의 고속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행복이 오히려 감소했던 이유를 실업사회안전망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같은 기간, 1인당 GDP를 비롯한 다른 사회적 변수들에 비해, 실업률 및 노후 연금과 헬스케어의 포괄범위(coverage)는 행복지수의 변화와 매우 유사한 궤적의 그래프를 보여준다는 것. 즉, 중국인들의 행복이 가장 바닥을 쳤을 2000년 초반 즈음에 중국인들의 실업률이 가장 높았고, 동시에 사회안전망으로부터의 보호는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스털린에 따르면, 이후 실업률이 떨어지고 사회안전망도 회복되면서, 중국인들의 행복지수는 다시 증가하였다.


그림1. 중국의 행복지수와 사회안전망


 사회보장 수준은 중국뿐 아니라, 비슷한 소득 수준의 유럽 국가들 사이의 행복의 차이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에스핑-앤더슨의 '탈상품화' 개념에 기초해 사회복지제도를 지수화한 정치학자 스크럭스(Lyle Scruggs)의 지수를 유럽 복지국가들 사이에서 비교해본 결과,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복지제도의 보장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나라들이,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등 복지 수준이 비교적 낮은 나라들에 비해 더 행복했다는 것(Easterlin, 2013). 이스털린은, 동독 역시 중국과 비슷한 사례라고 말한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과거 사회주의 체제 하에 완전고용과 튼튼한 안전망을 보장받다가,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고 이런 제도들이 해체되며 건강, 일, 돌봄 등의 측면에 대한 만족도는 하락했다. 그 탓에 물질적 만족도는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이스털린은 이 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완전고용의 보장과 사회보장의 확대, 복지국가의 건설로써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스털린의 지적 이전에도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사회안전망이 행복과 유의미한 통계적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DiTella, MacCulloch & Oswald, 2003). 국가와 연도 등 조사단위의 상수적 효과(고정효과)를 고려한 모형에서, 실업보험의 소득대체율은 일관되게 유럽 국가들의 행복도를 높여준 것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실업급여의 수급자만이 그 득을 보는 것이 아니고, 비실업자들의 표본에서도 소득대체율이 높아질수록 더 행복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실업에 대한 안전망이 사회 전반의 불안을 실제로 줄여주는 역할을 한 것.  


 역시 스크럭스(Scruggs)의 지수로 측정한 탈상품화 수준이 EU 국가들 사이에서 높은 행복과 연관되어 있는 통계적 관계를 발견한 연구도 있다(Pacek & Radcliff, 2008). 시장이 아닌 국가에 의해 지급되는 소득인 '사회임금'이 높고, 노동력의 '탈상품화' 정도가 높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형성된 배경에는 사민주의적 정치의 전통이 있다는 것은 이미 에스핑-앤더슨의 연구에서도 다뤄진 주지의 사실. 파첵(Alexander Pacek)과 래드클리프(Benjamin Radcliff)에 따르면, 복지국가의 형성 정도를 가늠하는 '탈상품화', '사회임금', '정부의 이념 성향' 이 세 가지 차원의 변수들이 각각, 1인당 GDP와 국가별 고정효과를 모형에 포함했을 때에도, 그 나라의 행복 수준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다. 즉, 사회임금의 수준이 높을수록, 노동력의 탈상품화 수준이 높을수록, 좌파의 누적 내각점유율이 높을수록, 그 나라의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더 행복했다. 물론, 상관관계가 곧 인과관계는 아니니, 실제로는 다른 어떤 이유로 행복 수준이 높은 사회가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경우를 고려해볼 필요도 있다. 예컨대 ‘역인과(reverse causality)’의 경우다. 하지만, 세계가치조사(WVS)를 통해 마이크로 레벨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의 높은 행복이 국가의 사회적 역할의 확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통계적 관계는 없었다고 저자들은 보고한다.


 높은 수준의 사회 복지를 통한 행복의 증가가 이미 경제 성장을 통해 부유해진 국가들에서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다. 물론, 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선진국들로 표본이 제한된 위의 연구들을 일반화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스털린과 오코너(Kelsey O'Connor)는, 독일은 1인당 GDP가 4000달러보다 낮던 1880년대에 이미 사회보험을 도입했고, 코스타리카 역시 1940년대에 3000달러 수준에서 사회 복지 제도들을 시행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한다(Easterlin & O'Connor, 2020). 그리고, 위의 연구들에 비해서, 저개발 국가와 구 공산권 국가들까지 널리 포함한 보다 광범위한 표본으로도, 오코너는 사회복지 정책이 평균적인 행복 수준과 유의미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O'Connor, 2017).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앞선 글에서 보았듯이 일반적으로 사회의 고령화에 따라 노인의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정부의 복지 지출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고, 따라서 국가의 정책적 지향과는 다소 무관히, 자연히 사회지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Shelton, 2007). 오코너는 따라서, 노동연령층 대비 노인층의 인구비를 통제한 모형에서 사회지출이 행복과 맺는 통계적 관계를 분석해보았다. 그 결과, GDP 대비 정부의 사회 지출 비율이 2%p 높으면, 11점 척도의 행복지수도 0.5점 높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선진국들을 비롯해, 구 공산권 국가들과 저개발 국가들도, 정부의 사회지출이 높을수록 더 행복했다.


 하지만 복지국가에 대해 의심어린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높은 수준의 복지를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할텐데, 높은 세금은 사람들의 행복감을 저해하지 않겠냐고(Ono & Lee, 2013). 하지만, 오코너는 조세부담률을 고려했을 때에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교육 지출을 통제했을 때에도, 복지 수준이 높은 동시에 행복지수도 높다고 알려진 노르딕 국가들을 표본에서 제외했을 때에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사회 복지 정책은 높은 수준의 행복지수와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사회복지에 이미 높은 지출을 하고 있는 나라들도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될까? 현실에서도 일반화하기는 힘들지 모르겠지만, 오코너가 분석한 자료 안에서는, 답은 ‘그렇다’이다. 그의 분석 결과, 행복과 사회복지 지출 사이의 관계는 선형적이었다. 즉, 사회지출 수준이 높아질수록 행복지수도 선형적으로 높아져, 높은 복지 지출 수준에서도 여전히 복지 지출과 행복 사이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여기서 다시, 기대수명의 증가에서 진보적 정치가 담당했던 역할을 복기해보자. 산업자본주의가 선물한 근대적 경제 성장은, 인류사에 유례없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해주었지만, 경제적 풍요가 곧바로 다른 모든 측면의 사회적 진보로 연결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산업혁명이 야기한 위생 환경의 악화로 영국의 도시 노동자들은 더 가난한 농촌에 비해서도 수명이 낮았다. 이런 가운데, 자유방임주의 시대의 자본주의 원리를 얼마간 접어두고 지방정부가 위생 환경의 정비와 적극적인 인프라 투자에 나서서, 영국은 가파른 수명 증가를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었다. 위생이라는 무형의 공공재를 널리 보급하는 데에는 교육의 힘도 컸다. 그래서, 정부가 교육 및 복지 공급의 높은 공공성을 보장하면,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들도 높은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민의 사회권을 적극 보호하는 사회정책은, 위의 연구들에 의하면 더 높은 수준의 행복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생활수준의 객관적 측면인 ‘기대수명’에서뿐만 아니라, 주관적 측면인 ‘행복’에서도 정치의 역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복지국가의 사회임금이 사람들이 생계에 대해 가진 걱정과 불안을 덜어주었던 것. 그리고 거듭, 복지국가는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에 힘입은 조직적 운동과, 계급 없는 사회를 지향하던 유토피아 이념이 자본주의로부터 이끌어낸 타협안이었다. “진보(Progressives)는 진보(progress)를 싫어한다”는 스티븐 핑커는, 정작 그 자신은 진보(progress)는 진보(Progressives)가 만든다는 걸 몰랐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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