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 페스
감동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기억하는 건 세 사람 정도다. 독일 밤베르크 호스텔 식당에서, 모로코 페스 버스터미널 구내식당에서, 마지막으로 포르투갈 에보라의 어느 식당에서.
밤베르크Bamberg 호스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웬 흰 가운을 입은 안경 낀 아저씨가 종이를 들고 고심하고 있었다. 단순히 요구르트가 몇 개 남았고, 하는 걸 체크하는 모습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그의 모습은 진지했다. 그 순간만큼은 요구르트라는 존재에서 삶의 생경함을 발견하고 요구르트와 연관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듯, 진짜 철학자의 아우라가 넓지 않은 식당을 가득 메웠단 말이다. 그가 빵이나 요구르트에 시선을 던지고 펜으로 무언가를 끄적이는 걸 보지 못했다면 나는 아마 밤베르크에 숨어 지내는 유구한 철인쯤으로 그를 기억했을 거다.
여행이 일상보다 매력적인 점이 있다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더 자주 발생한다는 거다. 그것 때문에 피곤해질 때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힘이 날 때도 있다. 모로코 페스에서 셰프샤우엔으로 가려고 CTM 터미널까지 갔더니 하루 세 번 있는 버스 좌석은 이미 매진. 표를 파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구시가지의 터미널로 가보라 했다. 거기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모로코에서 철도가 닿지 않는 곳으로의 장거리 여행에 CTM만 한 것이 없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가장 쾌적하고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편안한 CTM 버스 대신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래된 터미널에서 셰프샤우엔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들 앞에는 박스 안에 죽은 병아리 시체가 새끼 고양이 먹이로 놓여 있었다. 터미널 안 식당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는데 식당 주인인 듯한 아저씨, 잠시도 쉬지 않고 분주히 움직였다. 그는 모로칸 티도 만들고 동시에 빵도 굽고 이따금 커피도 내리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은 그냥 단순히 분주하다는 느낌이 아니더란 말이다. 뭐랄까, 그 분주함 가운데서 리듬을 타고 있다고 해야 하나. 빵을 뒤집고 주전자에 물을 붓고 설탕을 넣고 또 다른 주전자에 있는 차와 섞고 간간이 커피를 내리고. 5초 이상 쉬지 않고 계속 움직였지만, 동작과 동작 사이 스며 있는 커다란 여운은 그의 움직임이 마치 신의 조화 같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한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움직임이 꼭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무척 유연하게 흐르는 그의 모습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달까.
그렇게 CTM 버스를 못 타서 찾은 구시가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12시에 출발하는 버스였는데, 12시 30분이 되도록 버스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딱 스물아홉 팀이 버스에 오르내렸다. 코란 테이프 파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확실히 종교인 같았다), 구걸하는 부녀, 잡지며 약이며 군것질거리를 파는 사람들 등등, 꼭 어렸을 적의 고향 읍내 터미널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아저씨를 만나러 페스에 다시 갔다. 아저씨 이름은 세이드. 물론 아저씨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세이드 씨는 여전히 유려한 몸놀림으로 식당을 지키고 있었고 버스에는 여전히 코란 테이프 파는 아저씨, 구걸하는 부녀, 온갖 것들을 팔러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포르투갈 에보라 숙소의 여직원은 큰 덩치와는 달리 찬찬하고 다정한 구석이 있었다. 숙박부에 적어내려가던 아담한 글씨체와 찬찬한 발걸음, 깊은 눈빛.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이 다급한 상태에서 방을 안내받던 나는 앞서 걷는 그녀의 찬찬한 발걸음 덕분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녀가 소개해 준 식당에서 일하는 아저씨도 페스 터미널의 세이드 씨처럼 역시 리듬을 타고 있었다. 서빙을 담당하는 분이었는데 잠시도 쉬려고 하지 않는 그의 움직임. 마치 ‘놀면 뭐하나, 움직여야지’를 삶의 명제로 삼고 있는 듯 종이를 깔고,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런히 놓고, 컵을 정갈하게 놓고, 손님이 앉을 자리마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이따금 손님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간간이 자신이 놓은 포크와 나이프와 컵은 정확히 놓였는지 찰나의 순간에 체크를 하고. 그게 어떤 기획된 예술 행위 같더란 말이다. 그래서 전혀 바빠 보이거나 분주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식당이 아니라 공연장에 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