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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나은 Dec 20. 2022

싱크대로 집어 던진  미역국

절묘한 불끈타이밍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후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2011년 1월 어느 저녁.

퇴근 후 미역국을 끓인다. 내 생일도 신랑 생일도 아니지만 내가 너무 먹고 싶어서다. 결혼 후론 내 생일에  엄마도 미역국은 안 끓여준다. 그냥 내가 먹고 싶을 때 끓여먹는 수 밖에 없다.


며칠 전  주말이 손위 시누이 생일이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어머님께서 미역국 끓여준다고 친정에 오라 하신듯했다. 추운 날씨의 따뜻한 미역국이 너무 맛있었다. 딸을 위해 끓여주신 어머님의 사랑을 며느리인 내가 대신 감동을 받은듯했다.


월요일 퇴근 후 바지락과 새우를 사서 퇴근을 했다.  미역국을 끓였다. 방에서 거품키스가 유행하던  드라마 재방을 보고 나오던 신랑이 한마디 한다.


" 또 미역국이가?!"


주말에 시댁에서 먹었기에

또?! 란 표현을 짜증까지 함께 뱉어낸다.


나름 화주의자라 자부하며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였지만. 추운 날씨에 장보고 버스 타고  퇴근해서 저녁 준비한 나에게 짜증을 쏟아내기에 나도 욱했다.

결혼 5년 만에 처음으로 국그릇을 싱크대에 집어 던졌다.


미역국이 무슨 죄란 말인가?!


하지만 그냥 지고지순하게 "오늘만 그냥 먹으면 안돼?!" 이런 말 따윈 하기 싫었다.


결혼 5년 동안 어머님께 미역국 한번 얻어먹지 못한 며느리지만 시누 덕분에 먹게된 어머님의 미역국이 너무 맛있어서 또 끓였을 뿐인데..


신랑도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국그릇이 깨지고 더 난리가 났었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신랑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식탁에 덩그러니 않아 있기도 싫었던 나는 외투를 걸치고 신발을 신고 있었다. 운전도 서툴렀기에 차키를 챙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는 무인도 같은 아파트였다.  다리를 건너 남강을 지나면 마트가 하나 있다. 걸어서 30분가량 걸리는 곳이다.

내가 집을 나갔는지 조차 모르는 신랑은 전화 한 통 없었다. 물론 칭얼대며 울만한 아이도 없던  나는 5년 차 난임부부였다.




남강을 지나 찬바람을 쐬며 마트에 다다르니 아까의 치밀었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었지만 배도 슬슬 고프기도 하고 신랑도 걱정되었다.


마트에 파는 즉석요리라도 사가야겠다 생각하고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중3 때 담임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내 결혼 때 임신출산육아 관련 책과 케모마일차와 찻잔을 선물해주셨던 고마운 선생님 이셨다. 내가 5년 동안 아이가 없는 것도 소문을 통해 들으셨다고 내 손을 꼭 잡으며 진심이 담긴 걱정을 해주셨다. 아는 분이 둘째 소식이 없어 몇 년간 고생하다가 남해의 어느 한의원의 약을 먹고 바로 임신을 했다며 그 한의원의 상호를 정확히 일러 주시며 꼭 한번 가보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아이 낳고 꼭 선생님 뵈러 학교에 방문하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마트를 나왔다.




마트 주차장에서 신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 나간 지 1시간이 지나서야 나의 부재를 알고 전화를 걸어 화해의 제스처를 해온 신랑에게 동선을 말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생님을 만난 이야기와 한의원 이야기를 했더니 전화해보고 가보자 했다.




한의원에 예약을 하고 첫 방문 날짜가 2011년 2월 26일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는 동생의 결혼식이었지만 한의원이 우선이었기에 결혼식에도 못 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미안했다.) 한의원에서는 진맥도 하고 열화상 카메라로 몸 전체 체온 체크를 통해 체질개선이 우선이라 하시며 약을 지어주셨다.


솔직히 시험관 시술도 힘들었던 임신이 한약으로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었지만 신랑과 함께 의논해서 지은 우리집 가훈 "진인사대천명"의 뜻처럼 사람이 모든 노력을 다한 후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자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했다.

지어온 약을 먹을 때도 온 진심을 다해 좋은 기운이 나에게 오기만을 바라며 한 모금 한 모금씩 삼켰다.


한약 한재를 먹는 동안은 나의 몸에 좋지 않은 기운을 빼주는 것이니 3월 생리기간을 넘기고, 흔히 말하는 부부 숙제를 한 후 새로운 한약 한재를 먹으면 나의 몸에 좋은 기운을 넣어 주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 4월에 임신이 될 거라고 확답에 가까운 예언을 하셨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마음을 다했다. 의심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한 후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4월이 되었다.

* 나의 보물1호가 보내준 첫번째 신호 *




싱크대로 버려진 미역국 한 그릇과 2줄을 바꾼 셈이다.


평화주의자인 나에게  몇 안 되는 불끈 타이밍은 정말 절묘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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