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을 깨야 보이는 세상
“왜 그렇게 튀게 살아? 조용히 살면 안 돼?”
평생 들었던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하며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 사이에서 애 좀 먹었지.
[금기를 찢은 나]
나는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조선의 힙스터이자 금기를 찢었던 놈이야.
누군가는 나를 괴물이라 불렀고,
또 누군가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했거든.
뭐 어때.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고,
다르게 살아야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으니까.
“저는 일찍이 엄한 훈계를 받지 못하고,
그래서 제멋대로 방탕하게 굴며, 저도 모르게 경박한데 빠지고 말았습니다.”
— 내 편지에서 한 고백.
맞아, 난 방탕했고, 자유분방했어.
근데 솔직히 MZ들, 너희도 공감하지 않아?
라떼식 잣대 들이대는 세상에서, 다르게 산다는 게
욕도 많이 먹고,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말야.
하지만 내가 금기를 깬 건 단순한 반항심 때문이 아니었어.
나는 진심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거든.
그래서 쓴 글이 <호민론>이야.
백성을 항민·원민·호민으로 나누고,
세상을 바꿀 힘은 ‘호민’, 즉 보통 사람에게 있다고 주장했지.
권력자들 눈에는 당연히 위험해 보였을 거야.
“평범한 백성이 혁명의 주체라니? 저놈은 역적이다!”
이게 내 낙인 찍힌 이유 중 하나였어.
그 다음이 내 역작 <홍길동전>인 것 같아.
서얼이라 차별받던 현실을 깨부수고,
율도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
“다르게 살자. 세상을 바꾸자.”
그건 그냥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선 못 이룬 세상에 대한 세레나데였어.
홍길동을 통해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세웠지.
그게 내가 금기를 찢고,
글로라도 남기고 싶었던 미래였어.
홍길동의 율도국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공정과 평등’의 성지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난 책만 읽은 게 아니라, 책을 나눴어.
강릉에 도서관 ‘호서장서각’을 세우고,
누구든 책을 빌려보게 했지.
조선 최초의 사설 도서관이라잖아?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지식의 공유’.
요즘 말로 하면 오픈소스 운동 같은 거였어.
[괴물의 결말]
외로운 길, 그러나 다른 길
물론 내 삶은 화려하지 않았어.
광해군 시대 권력 싸움에 휘말려,
결국 역적으로 몰려 거열형을 당했으니까.
내 가문도 풍비박산 났지.
사람들은 날 실패자로 기록했어.
근데 오늘날은 말이 달라.
“허균은 인간을 사랑한 사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자유주의자”
현대 역사가들의 평가야.
괴물이라 욕먹던 내가,
지금은 ‘앞서간 비운의 천재’로 불리고 있어.
그 당시 조선은 나의 생각을 받아주기엔 그릇이 너무 작았어.
나는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세상은 그럴수록 나를 괴물이라 불렀지.
고독했고, 외로웠어.
그래서 나는 내 삶을 ‘캄캄한 나그네’라 불렀지.
MZ들, 지금 너희도 느끼지 않아?
너희가 새로운 목소리를 내면,
기성세대는 곧잘 ‘예민하다’,
‘버티질 못한다’고 말하잖아.
사실은 세상이 아직 그 목소리를 받아낼 준비가
덜 된 것뿐인데도 말이지.
[MZ에게]
그러니까 말이야, MZ들.
MZ는 ‘다르게 산다’는 걸 두려워하지 않잖아.
기성세대는 종종 그걸 ‘예민하다,
버티질 못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삶의 무게를 스스로 설계하는 거잖아.
다르게 살다가 욕먹을까 두려워?
하긴 나도 그랬어. 근데 결국 남는 건,
내가 진짜 믿었던 삶의 방식뿐이더라.
다르게 살아봐.
하지만 그 다름이 남을 해치지 않고,
나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다름이 되었으면 해.
괴물이라 불리든, 천재라 불리든,
룰을 깨야 진짜 세상이 보이는 거니까.
[광’s 슬기로운 톡]
허균은 조선에서 금기를 찢은 최초의 힙스터였습니다.
다름은 불편함을 낳지만,
시간이 지나면 새로움이 됩니다.
당장은 욕을 먹어도, 결국 중요한 건
‘내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에요.
허균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다르게 살되, 그 다름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라.”
“차라리 괴물이라 불려라. 괴물이 세상을 바꾼다.”
'10화 갓생살고, 과몰입하고-우리도 계속 살아간다'에서 계속.
#과몰입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