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뜻 말 걸기 어려운 관계가 있습니다.
애초에 어떤 선을 지정해놓은 사람
그 선의 경계가 뚜렷해 그 사람과 대화할 때면
선을 넘지 않기 위해 고심에 고심을 했다.
대화 주제를 선정할 때도 대화의 텀을 선정할 때도
나는 온신경을 그 사람에 맞추어 실행하곤 했죠.
나는 그 사람을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상담꾼을 자처했습니다.
보통 공감능력이 뛰어나고들 하지만 사실
상대방의 말을 정성껏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기에 얻은 타이틀이죠
사람들이 내게 깊은 속내 말해주는 게
내겐 나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요소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 유형에게
내 모습으로써 제일 잘 맞을만한 유형으로 대하며
나와 그 사람 전부를 편하게 만드는 일을 반복했죠.
그런 저에게도 어려운 두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와 같은 부류.
남 얘기는 잘 들어주면서 정작 내 얘기를 할 때는
어떤 선 이상의 이야기로 넘어가면 입을 다물죠.
저 역시 같은 부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단계에서
보통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정체됩니다.
정작 중요한 서로의 이야기엔 입을 다문채
주변 이야기만 빙빙 돌리는 그런 대화.
서로를 배려해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그 사람
자체에는 굉장히 편한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결국 속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는 계기가 없는 이상
쉽사리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나 자신의 문제에 있습니다.
정말 모순적이게도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가에 있죠.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의 소중함의 정도가 왜 그 사람을 대하는데 어려움이 생길까?
이를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사람 한 명 한 명과의 관계를 소중해하기에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느끼는 건
저로써는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말 한마디에 중요성을 누구보다 중요시하기 때문에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심혈을 다하는 거죠.
혹여나 실언이라도 했으면 두고두고 절망하고요.
그런 이유 때문에 누군가가 소중해졌을 때,
저와 같은 사람들을 그를 대하는데 이전보다
수십 배는 더 신경 쓰이고 어렵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기억나는 사람 중에
말 한마디 거는데도 고민에 고민을 더해
힘겹게 걸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제게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던 거죠.
이는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마음 한편에는 그런 사람들이 떠오르니까요.
어떤 게 말을 걸어야 할까?
어떤 말이 자연스러울까?
고민에 고민을 더한 밤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