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얼마 전까지 한글을 몰랐다.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나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총총이 있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를 한 달 정도만 다니고 말았단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한글을 모른다는 걸 몰랐다. 엄마는 늘 장사를 하거나 일하러 가고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졸업식 때 한번 오셨다.
우리 4남매는 아주 독립적으로 자랐다.
비가 와도 우산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없고.
준비물을 안 가져와도 아무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 동생들은 내가 가져다준 기억이 있다. 여동생은 잘 흘리고 다녀서 따라다니며 챙겨줘야 한다. 대학 입시 볼 때도 서류를 빼놓고 가서 시외버스 타고 가져다주었고, 임용 때도 뭔가를 잃어버려 부리나케 챙겨준 기억이 난다.
남동생은 중, 고등학교 시절 학급임원을 몇 번 했는데 그때도 엄마는 한 번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엄마는 돈계산은 명확했기 때문에 글을 모른다고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른다. 장사를 오래 하고 일용직도 많이 해서 계산할 일이 많았다. 잔돈을 거슬러주고 얼마를 벌었는지도 알았다. 일당을 잘 계산하고 한 달에 얼마를 벌었는지도 알았다.
코로나 시기에 엄마가 20년 넘게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다시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어 같이 신청하러 갔다. 신청서에 서명을 하는데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버지가 공과금 납부나 은행일을 다했기 때문에 엄마가 사인을 할 일이 없었다. 계좌도 몇십 년에 만든 하나만 사용했다.
"내가 글자를 몰라."
엄마는 얼굴이 발그레져서 수줍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지금 놀 때 한글공부해 보자."
"한글공부 할 수 있나? 중리동 아줌마도 배웠다고 하고 평리동 동생도 배웠다고 하는 데 나도 할 수 있겠지."
"그럼 그럼. 내가 알아봐 줄게."
복지관이나 도서관에서 하는 한글교실 있었다.
시기가 맞지 않아 몇 달을 쉬고 한글수업을 신청했으나 코로나가 심해져 수업이 전부 취소되었다. 어디에도 한글수업이 없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가고 아버지도 연세 많아져서 경증치매 진단을 받았다. 심하진 않지만 깜빡하는 증세가 생겼다.
"엄마! 한글학원에 가볼래?"
"싫어. 학원을 돈 내야 하잖아."
엄마는 언제나 돈이 드는 일은 반대한다.
"그럼 아버지에게 가르쳐달라고 하든가?"
"너네 아버지가 어지간히 가르쳐줄 거다. 화만 내지. 그리고 아버지가 다 할 수 있다고 엄마는 몰라도 된다고 해."
"그런 게 어딨어. 나랑 같이 학원에 가보자."
그렇게 엄마와 학원에 갔다. 학원에 접수했다.
"학원비가 왜 그렇게 비싸?"
"애들 태권도보다 싸구먼. 사위가 딸내미 등록금 아껴서 장모 등록금 내준다고 하네. 학원비는 내가 낼게."
엄마는 만류했지만 1년 치 학원비를 결제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는 애들처럼 연필과 필통, 지우개, 공책을 사주었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집에 있는 동화책과 동시집도 보냈다. 아직을 읽지 못하지만 그림이라도 보라고 했다.
엄마는 매일 학원에 갔다 오면서 전화를 했다. 오늘은 뭘 배웠는지 누가 안 왔는지 받아쓰기 점수 등 그날 있었었던 일을 아이들처럼 조잘조잘 떠들었다. 엄마는 한 글자씩 배우는 게 즐거워 보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어제 배운 걸 한 바닥 쓰고 아침을 먹고 학원도 1시간 일찍 가서 또 한 바닥을 쓴다고 한다.
1년 넘게 배운 사람들보다 진도가 빠르다고 너무 좋아한다.
학원을 마치고 숙제도 꼬박꼬박 하고 일정을 짤 때도 학원이 제일 먼저다.
"엄마, 열심히 해. 중학교도 가야지. 검정고시 치고."
"중학교?"
엄마는 생각만 해도 좋은 지 싱글벙글하다.
"그래, 손주들도 다 대학교 가고 자식들도 다 석박사인데 엄마도 대학 정도는 가야 하잖아."
"그렇지. 우리 손녀 박사 받을 때 같이 가서 학사모도 쓰고."
"그러니까 열심히 해. 딸과 사위가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엄마 한글도 못 가르치고. 아들과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알았다."
어느 날, 엄마가 전화 왔다.
"카톡으로 사진 찍는 거 가르쳐줘라."
"갑자기 사진은 왜?"
저번부터 카톡으로 사진 올리는 방법을 알려줬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알려줬는데 아버지는 내가 있을 때만 할 수 있고 아무도 없으면 못한다. 못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오라고 해서 나와 언니 조카들이 손과 발을 다 들었다. 컴퓨터도 안된다고 아무 때나 부르고 한글 프로그램을 아직도 사용하지 못한다. 어르신대상 컴퓨터 프로그램을 한번 들어보라고 해도 잘할 수 있다고 하면 절대로 가지 않는다.
집에 일이 생기면 사진이라도 보내주면 안심이 될 텐데. 엄마도 아버지도 사진을 찍을 수는 있지만 카톡으로 보내는 건 안된다.
엄마가 일하는 찜질방을 찍어 보냈다. 이제 사진을 찍어서 보낼 수 있다고 무척 기뻐했다. 아직 글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전화가 되지 않거나 그러면 종이에 써서 사진을 찍어 보낼 수도 있기 때문에 다행이다.
가까이 살지만 늘 가볼 수 있는 상황이 안되어 부모님만 사는 게 걱정이긴 하다. 아버지는 귀가 어두워 전화벨 소리를 잘 듣지도 못하고 몸이 꿈 떠 상황에 빨리 대처하지도 못한다. 엄마도 글을 몰라 뭔 일이 생기면 112나 119에 전화조차 하지 못한다. 일반전화도 저장된 번호만 할 수 있다.
"공책도 다되고 연필도 없고."
엄마가 6개월 정도 공부하니 학용품이 없다고 한다. 엄마집 근처에 문방구에 많았는데 학교가 문을 닫고 문방구도 사라졌다. 조금 먼 고등학교 근처에 사러 가라고 해보지만 고등학교 근처 문구점이라 초등생이 사용하는 줄공책이 있을지 의문이다.
"연필은 집에 있는 거 보내주고 공책은 주문해 줄게. 공책사진 찍어 카톡에 올려."
입학당시 줄공책을 샀는데 몇 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공책표지를 보면 살 수 있을 것 같아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했는데.
이렇게 보냈다. 사진을 확장해서 겨우 14줄 공책이란 걸 알았다.
주문하고 어제 도착했단다. 내가 제대로 주문했는지 궁금해서 온 공책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새벽부터 사진을 보냈다.
알 수가 없다. 지금 학원에 갔을 테니 별 말 없으면 공책이 제대로 온 거라고 확신한다.
이제부터 매일 선명한 사진 한 장 찍어 보내라는 숙제를 내고 싶다.
우리 엄마 파이팅. 중학교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