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회) 제3장 기적 - 역사 전쟁
온 나라가 한목소리로 탄핵을 외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탄핵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이 태극기를 들고 처음 광화문광장으로 쏟아져나온 날은 2016년 11월 19일이었다. 촛불이 등장한 20일 후였다.
광화문광장은 낮에는 태극기가, 밤이면 촛불이 장악했다. 태극기를 든 사람의 숫자는 첫날부터 촛불을 압도했다. 해지기 직전, 광장의 주인이 바뀔 무렵이면 양측 사이에 온갖 쌍욕이 오갔고, 몸싸움 끝에 태극기 쪽의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 증오했고, 상대를 죽이고 싶을 만큼 강한 적의를 드러냈다.
오후에 옥상 쉼터에서 쉬던 동지는 광화문광장 쪽에서 울려 퍼지는 확성기 소리에 이끌려 옥상에서 내려와 광화문광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과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는 한 덩어리로 사람의 바다를 이루었고, 그 사이사이에 대형 스크린을 띄엄띄엄 설치해 놓아서 어디서든 무대 위 연사의 모습이 보였다. 시위 군중은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었다.
동지가 주한미국대사관 앞에 도착했을 때, 일단의 청년들이 태극기 군중을 향해 커다란 사진 한 장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든 사진 속에는 몸이 비대하고 옆머리를 바특이 깎아 올린 젊은이 하나가 이빨을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 만세!”
사진을 든 청년이 선창하자 나머지 남녀 청년들이 '김정은 위원장 만세!'하고 주먹 쥔 손을 높이 찌르며 따라 외쳤다.
그때 시위군중의 가장자리에서 태극기를 손에 든 한 노인이 청년들 쪽으로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에라이, 나쁜 놈들아! 당장 그 사진 치우지 못해?”
노인은 팔을 뻗어 사진을 뺏으려 했다.
청년은 사진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노인을 피했다. 그러자 다른 청년들이 노인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야유를 퍼부었다.
“그네 꼴통, 재수 없어! 꺼져!”
“토착 왜구!”
“저런 틀딱들은 왜 안 죽고 싸돌아다니나!”
“의료보험에 딱 하나 문제점이 저거야!”
“이 나쁜 놈들아! 그 사진 당장 치우지 못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노인은 다시 청년에게 달려들어 사진을 낚아채려 했다.
그때, 이들을 지켜보던 두 명의 경찰 중 하나가 다가와 노인의 두 팔을 등 뒤로 비틀어 꺾고는 등을 눌렀다. 노인은 풀썩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쓰러져 가슴을 아스팔트 바닥에 붙였다. 경찰은 노인을 누른 채 고개를 들어 청년들에게 그 자리를 떠나라는 눈짓을 보냈고, 청년들이 떠나자 노인을 풀어주었다.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지 마세요. 할아버지니까 한 번은 봐 드리는 겁니다.”
경찰이 노인을 풀어주며 한 말이었다.
그 상황에 대해 누군가 경찰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그 대답으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먼저 폭력을 행사한 노인을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면, 딱히 그 말을 틀렸다고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노인은 말할 힘조차 없는지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서 가는 경찰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경찰이 멀어지자, 노인은 바닥에 주저앉아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노인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리고 무릎 사이에서 나지막이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인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지만 얼마 못 가서 어깨를 아래위로 흔들며 꺽꺽 울었다.
시종 그 촌극을 지켜보던 동지는 멀어져 가는 경찰의 등을 지긋한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노인의 흔들리는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안았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노인은 고개를 숙인 그대로 귀찮다는 듯이 한 손을 들어 휘저었다. 참견 말고 가라는 손짓이었다. 동지는 잠시 노인을 내려다보고 섰다가 뒤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동지는 한참 동안 주위를 둘러본 뒤에야 시청광장과 대한문 사이에서 집회를 주최하는 본무대를 찾아냈다. 그는 무대가 있는 대한문 앞으로 가보고 싶었으나 밀집한 시위군중을 뚫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하철 통로를 통해 광장을 건너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막상 지하철 통로 안에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로 가득 차서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줄잡아 십여 분쯤을 소모하고서야 가까스로 대한문 앞 출구를 나와 연단이 바라보이는 곳을 찾아갔다.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빽빽이 들어찬 시위군중은 연사를 향해 태극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렀다. 게 중에는 목청을 높여 서로 무슨 얘기인가를 나누거나, 서 있기 좋은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비비적거리며 옮겨 다니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한 묶음처럼 보이는 군중이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언젠가 울돌목에서 본 소용돌이 해류처럼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때 누군가가 동지의 어깨를 툭 쳤다.
“정 사범께서 웬일로 여기를?”
커널 문과 배흥수가 함께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반겼다.
배흥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잘 오셨어요. 조금 있으면 우리 길 교수님도 연사로 나오실 겁니다. 사회자가 연사 명단 소개할 때 계셨어요.”
그때 무대 위에서 길 태선 교수를 소개하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배흥수가 반가운 듯 손가락으로 무대를 가리켰다.
“아, 교수님 나오시네. 교수님 다음 순서에는 원로 변호사님이 나오실 거예요. 그분 말씀도 들어볼 만합니다.”
무대 위로 올라선 교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군중에 압도된 듯 잠시 멀리 시선을 던진 채 서 있다가, 천천히 마이크를 입에 댔다.
“여러분, 앞서 연사들께서 탄핵의 부당성에 대해 충분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 사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탄핵이 단순히 정당 간의 정치싸움입니까? 진보와 보수의 주도권 다툼입니까? 아닙니다. 이건 체제의 문제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세력과,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세력 간의 전면전이며 총성 없는 내전입니다.
반체제 세력들은 ‘진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가면입니다.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체제를 뒤엎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언론은 그들의 가면을 감춰줍니다. 언론도 이미 그들의 편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들은 교묘하게 각계각층으로 침투해 왔습니다. 이들은 1987년 6.29선언 이후, 자유화 바람의 틈을 타 세를 키워오다가, 1998년 좌파 정권 출범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동계, 교육계, 언론계, 법조계, 문화계까지 사회 제 분야에서 조직을 만들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외부는 적으로 삼았습니다. 반대자에겐 낙인을 찍어 음해하거나 협박하고, 때론 폭력까지 동원했습니다. 겁먹은 개인은 침묵하거나, 그들 편에 서거나, 혹은 최소한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못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강력한 조직의 연대를 통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직을 장악해 나가는 데는 당해낼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교육계는 저들이 가장 오래전부터 공을 들인 분야입니다. 아이들을 세뇌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방법을 동원했느냐? 바로 역사교육입니다. ‘미국이 한반도를 분단시켰다.’,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다.’, ‘이승만, 박정희는 미국의 앞잡이다.’ 이런 왜곡된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왔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해방 직후, 소련은 북쪽에 괴뢰 정부를 세워 남쪽과 분리하는 한편, 남로당에 지령을 내려 남쪽 지역에서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켜 미군정을 뒤흔들었고, 그럼에도 남쪽에서 자유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자 결국 한반도 전체를 적화하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휴전 후에도 남로당은 지하로 숨어들어 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90년대 말, 좌파 정권 등장과 함께 교원 노조가 합법화되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교실을 장악하여 그 후 30년 가까이 우리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고 지배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 전쟁’입니다.
여러분, 미국은 우리를 일제로부터 해방시켰고, 6.25 전쟁 때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우리를 지켰습니다. 전후에는 경제발전을 도왔고, 우리의 국방을 책임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수치가 말해줍니다. 우리나라의 개인 GDP가 중국의 3배가 넘습니다. 전 세계 국가들의 국민 개인 GDP 순위로 보면 한국은 33위, 중국은 69위입니다.
아시아에서 유교권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모두 6개국입니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베트남, 북한입니다. 이 나라들의 국민 개인 GDP 순위로 보면 한국, 일본, 대만은 모두 3십 2.3.4위에 몰려있는 데 반해, 중국은 69위, 베트남은 118위, 북한은 180위입니다. 이들 나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한국, 일본, 대만은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 베트남, 북한은 모두 개인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차이는 바로 자유입니다.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 불과 60년 전에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것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게 도와주었고, 그 후 지금까지 함께 자유를 지키는 동맹국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한민국이 만든 물건을 미친 듯이 사주는 최대 큰손입니다. 어느 정도냐고요? 중국, 유럽 다 합쳐도 미국 시장 구매력 발끝도 못 따라갑니다. 그런 미국이 왜 우리의 ‘적’입니까?
더 역겨운 건, 대중들에게 반미 감정을 선동하는 반체제 리더들의 '블랙코미디' 같은 이중성입니다. 이들 중 거의 전부가 자신이 미국 유학을 다녀왔거나 자식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습니다. 심지어는 미국 시민권까지 따놓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런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할 것 같습니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소시오패스 집단이거나, 자기 밥그릇 걷어차는 멍청이들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저는 반미를 선동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반미를 선동하고 싶다면 먼저 미국으로 유학 보낸 자식들부터 불러들이고, 미국 시민권도 반납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그런 사람 못 봤습니다.”
교수는 끝으로 말했다.
"여러분, 이건 단순한 이념 대립이 아닙니다.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를 놓고 벌이는 체제 전쟁입니다. 그 전쟁이 지금 우리의 교실에서, 방송국에서, 법정에서, 이곳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전쟁의 시작은 역사 전쟁이었고, 그 끝은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자유일 수 있습니다.”
교수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격앙되지 않았으나 그 절제된 어조가 무게감을 더했다. 동지는 인사동에서 길 교수와의 대화 속에서도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같은 도식, 같은 결론. 하지만 그날과는 달랐다. 그땐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던 말들이, 오늘은 깊은 울림으로 가슴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교수의 연설이 끝나고 동지는 인사동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빽빽한 인파를 뚫고 세종로를 건너는 데만도 20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등 뒤에서는 어떤 변호사의 연설이 이어졌다. 변호사는 이번 탄핵이 헌법상 중대한 절차적 하자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지는 그 주장의 법률적 맥락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 말은 또렷이 귀에 남았다. ‘특검이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이며, 국회 청문회도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언론 보도와 개인의 심증만으로 국회가 탄핵을 소추한 것은 명백히 법치주의 원칙에 위배 된다.’라는 말이었다.
그 밖에도 변호사는 재단 설립과 관련하여 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을 대통령의 뇌물 수수로 해석하는 것은 공익법인의 법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지만, 동지는 그 말들을 명료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변호사는 대여섯 가지 탄핵의 부당성을 번호를 붙여가며 조목조목 설명했다. 하지만, 그 역시 대부분은 그의 귀에 선명히 와닿지 않았다.
변호사의 연설이 끝난 뒤, 사회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주변 고층 건물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여러분! 우리가 이곳에서 아무리 목 터지게 외쳐도 대다수 국민은 듣지 못합니다. 바로 곁에 정부 중앙청사가 있고, 국내 최고의 두 개 신문사가 창문으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그들이 우리가 외치는 소리를 보도해 줄 거라 믿습니까? 아닙니다! 언론은 오래전에 이미 다른 편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인도에서 우리끼리 외치는 겁니다.
SNS에서 무수한 이야기들이 오간다고요? 유튜브 개인 방송으로 전달된다고요? 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외침은 정작 닿아야 할 곳에 닿지 않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가정에서 자녀들을 직접 가르치십시오.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더 진실을 알게 됩니다!”
인사동을 향해 걷는 동안 동지의 머릿속에는 길 교수의 말이 떠나지 않았다.
“전쟁의 시작은 역사 전쟁이었고, 그 끝은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 자유일 수 있습니다.”
교수의 ‘역사 전쟁’이라는 말이 동지의 귓속에 화살처럼 날아와 박혔다. 그 말은 과거 어느 시점의 필름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털어내고, 몇 장의 사진을 현상해 그의 눈꺼풀 안에 펼쳐놓았다. 그 사진들은, 재희가 ‘역사 왜곡’이라며 박일수와 따지고, 박일수가 재희의 목을 조르고, 이성학 박사가 박일수의 멱살을 움켜쥐는 장면들이었다. 그리고 친구 창수의 얼굴도 함께 있었다.
그 사진들 곁으로 다른 몇 장의 사진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김정은 만세!’를 외치던 청년들과 그들을 두둔하던 경찰, 그리고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던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