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상황. 영화 <연애의 온도> 속 동희와 장영의 관계처럼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했다. 하필 그룹 IDD를 퇴사하던 날이었다. 디자인 21 박 실장님과 강남시장 상가 앞에서 마주칠 줄은 추호도 몰랐다. 같은 가로수길에 위치한 그룹 IDD에서 1년이나 근무했지만 디자인 21 사람들과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뻔한 점심 식당들과 입가심 커피숍을 공유했을 텐데도 말이다. 예상치 못한 옛 직장 상사와의 만남에 반갑다고 하기에는 뭣한, 그렇다고 안 반갑다고 하기에도 뭣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눴다.
“봉 대리!”
“아, 안녕하세요!”
“뭐야, (웃음)가방에 키보드는. 설마?”
“아… 방금 퇴사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어디 다녔는데?”
“대로변 유니클로 건물에 있는 그룹 IDD라고…”
“잘은 모르지만 뭐. 봉 대리를 이렇게 다 만나네.”
“그러게요.”
“언제 밥 한번 하자. 퇴사한 턱으로 내가 살게.”
“아… 네. 뭐, 이제 시간은 많으니까요(웃음).”
“다음 주에 시간 괜찮아?”
“연락드릴게요.”
찰나의 해프닝으로 흘려보내면 좋을 만남이었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룹 IDD를 퇴사하고 한 주가 지난 즈음 점심 약속을 잡았다. 쌀쌀했던 화요일이었다. 가로수길 마가찌니 매장 옆에 위치했던 ‘한참치’를 찾았다. 한참치는 디자인 21을 다닐 때 대표님이 종종 점심을 사주던 곳이라 나도 박 실장님도 익숙한 곳이었다. 박 실장님과 동행한 재윤 대리도 함께 앉아 점심을 먹으며 서로가 모르는 지난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커피는 제가 사겠다”라고 말했는데, 박 실장님은 대뜸 “대표님 계시니까 사무실에서 하는 건 어때? 오랜만에 사무실 구경도 하고”라면서 역으로 제안했다. 이번에도 얼떨결에 응해버렸다.
1년 만에 찾은 청암빌딩 2층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초면인 사람도 보였다. 지긋지긋했던 보라색 책상의 예전 내 자리는 비어 있었다. 조금 전 식당에서 열심히 떠들었던 이야기를 대표님 방에서 한번 더 떠든 다음 묘한 기분으로 예전 직장을 나왔다. 그때까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지 못한 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은 폐간된 라이선스 러닝 매거진 <러너스 월드> 코리아에 면접을 봤다. <모터매거진>에서 알게 된 준혁 선배의 소개로 현대자동차그룹 뉴스 채널 ‘HMG 저널’의 콘텐츠 운영을 대행하는 ‘프럼’이라는 회사에도 면접을 봤다. 다만 패션을 다룰 줄 아는 에디터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와 담당자의 이유 모를 ‘잠수’로 구인 활동은 지속되고 있었다.
일정이 없던 오전에 의외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일 시간 되면 술 한잔하자”. 전 직장 대표님의 연락이었다. 퇴사하며 얼굴을 붉히진 않았어도 디자인 21 대표님과 살갑게 술을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번 점심 식사 후 1년 만에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퍼즐은 얼추 맞춰지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을 때부터 박 실장님에겐 의도가 있었던 걸까? 선택이 필요한 고민이 시작됐다. 만날 것인가 만나지 않을 것인가. 만난다면 어떤 선택지가 놓여 있을 것이며 고민할 가치가 있는 선택지일 것인가. 선택에는 어떤 대가가 따를 것인가. 밑질 건 없어 보였다. 들어본 다음 고민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또 가로수길을 찾았다.
“남양연구소 사보 일이 들어왔어 이번에.”
“원래 연구소에서도 사보를 만들었어요?”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책이 하나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발송하는 뉴스레터도 있고.”
“업무량이 그리 많지는 않겠네요.”
“네가 맡아줬으면 해서 보자고 했어.”
“<모터스라인>하고 같이 해야 하는 거겠죠?”
“<모터스라인>은 작년부터 격월간으로 바뀌면서 예전처럼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과연 그럴까요…”
“우리도 많이 바뀌었어.”
예상은 했지만 대표님은 곱창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올 때까지도 재입사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퇴사 직전 내가 요청했던 사항과 요구했던 연봉을 맞춰주지 않았던 일 때문인지는 모른다. 대표님 단골집이던 ‘레드 클라우드’로 자리를 옮겼고, 조금 더 편한 분위기에서 맥주와 팝콘을 먹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대표님은 간신히 입을 뗐다. 난생처음 직장과 입사라는 화두 앞에서 ‘갑’의 입장이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봤던 면접은 전부 떨어진 참이었고, 남양연구소 일은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예전처럼 지난한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할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 집에 택시 타고 가라며 5만 원을 쥐여 준 대표님 성의 때문에 생각은 더 깊어졌다.
앞선 경험을 통해 중은 결코 절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지만, 그때까지도 ‘나이브naive’한 생각을 미쳐 버리지 못했다. 맡을 일만 열심히 하면 될 거라는, 일만 잘하면 별문제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 2008년 <무릎팍도사>의 후속 코너로 생존을 연명하던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태원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며 가닥이 잡혔다. “과거는 무조건 아름다운 거야”. 2월 둘째 주 월요일, 디자인 21로의 재출근을 시작했다.
마치 졸업한 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다. 많은 부분이 같으면서도 많이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내 자리와 박 실장님 자리는 그대로였다. 내 뒤로는 처음 본 한 차장님이, 그 옆에는 예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임 차장님이 그대로 자리했다. 옆자리에는 그룹 IDD를 퇴사하던 날 박 실장님 옆에서 봤던 친구가 자리했다. 디자인 21의 근간이던 <모터스라인>은 격월간 발행으로 바뀌며 다소 힘을 잃은 듯했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모르지만 회사의 전체적인 일 자체가 많이 줄어 있었다. 설명하기 힘든 기분을 안고서 격월로 발행하는 남양연구소의 <Together R&D> 업무를 진행해 나갔다.
인원이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는 규모가 크다. 구성원 간 단합을 이끌고 조직의 방향을 공유하는 문화 개발 업무가 필수적이다. <Together R&D>는 격월간 매체로서 남양연구소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업무를 조명했다. 임직원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연구개발의 일관된 방향을 전파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문화개발팀 설경 매니저와 남양연구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선별하고 책에 실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다시 출근한 디자인 21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방문했다. 연구원들을 인터뷰하고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행사를 취재했으며 포토그래퍼와 함께 촬영도 진행했다.
<Together R&D>는 당시 조직문화에 신경을 쓰는 대기업들이 만드는 사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게 있어 흥미를 자극하며 짜릿한 재미를 안겼다. 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톱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와 제네시스에는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자동차라는 물건을 애정하는 사람이자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로서, 그 이야기들을 직접 듣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디자인 21 재입사를 결심하게 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2019년 첫 호였던 <Together R&D> 1+2월 호를 만들 때는 알버트 비어만 사장도 직접 만났다.
알버트 비어만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전 세계 ‘차쟁이’들이 환장하는 BMW의 고성능 디비전 M을 30년간 이끌었다. 이후 현대자동차의 고성능차 총괄로 자리를 옮긴 후 연구개발본부 수장에까지 올랐다. 알버트 비어만이 현대자동차로 이직했다는 이유만으로 현대자동차 유럽 연구소에 입사한 연구원이 있을 정도였다. 알버트 비어만 사장이 취임한 일을 계기로 남양연구소의 신입 연구원들과 사장이 대담하는 형태의 콘텐츠를 기획했다. 예상되는 답변을 고심하며 질문을 작성했다. 작성한 질문으로 신입 연구원들이 ‘사장’과 대화를 나눴고, 대화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가공해 책에 실었다.
전 세계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현대자동차의 연료전지리서치랩 연구위원과 대화를 나누고, 모빌리티의 기초가 될 ‘샤시’ 선행개발 조직의 리더와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 모두 <Together R&D>를 담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애증의 <모터스라인>은 2019년이 되며 책 뒷부분에 ‘테크북’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마련해 현대자동차그룹의 다양한 기술 역량을 집중해 다뤘다. 테크북을 제작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셀 수 없이 만났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전 국민의 관심이 높던 시기에는 기초선행연구소의 리더를 만나 국가 역량의 초석인 ‘기초선행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경량화와 바이오 신소재 개발을 담당하는 연구원들과도 ‘사심’을 가득 채워 하루 종일 대화했다.
바라던 업무였다. 매너리즘에 빠지며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 SNS 운영 업무와는 분명 달랐다. 디자인 21에서 맡은 업무는 스스로 몰입해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모터스라인> 마감은 여전히 지난했다. 어떤 날은 일정을 마치고 남양연구소에서 나온 시간이 금요일 17시였는데도 <모터스라인> 교정을 보러 신사동으로 복귀해야만 했다. 외근 일정에 맞춰 담당한 칼럼의 교정을 미리 봤는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의 칼럼을 교정 보기 위해 퇴근 행렬을 뚫고 운전해 강남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는 후회의 감정도 살짝 들었다.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기에 짜증은 났어도 ‘그러려니’하고서 넘길 순 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배려가 몸에 배 대화할 때도 기분을 좋게 해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건방져서 입을 열 때마다 꿀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사람이 있다. 뭐든 한가득 퍼주고 싶을 만큼 정감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땅바닥에 흘린 소보로빵 부스러기조차 나눠주기 싫은 사람이 있다. 세상은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이 한데 모여 살아간다지만 기필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옆자리의 사람이 그랬다. 그룹 IDD를 퇴사하던 날 만난 박 실장님 옆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재입사했을 당시 정 대리는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출근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봉 대리!”)
(“아, 안녕하세요!”)
“누구예요?”
“예전에 우리 회사에 다녔던 얄미운 봉 대리라고 있어(웃음).”
“(웃음)가방에…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네요?”
(“뭐야, (웃음)가방에 키보드는. 설마?”)
(“아… 방금 퇴사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2017년의 디자인 21은 퇴사자가 많아도 정말 많았다. 대표님과 박 실장님은 퇴사자가 생겨 ‘빵꾸’가 날 때마다 부르면 달려오는 ‘멤버 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정 대리는 없었다. 옆자리에서 <모터스라인>과 몇몇 매체의 제작을 도왔어도 퇴사할 때까지 정 대리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던 건 그래서다. 나이가 나와 같다는 것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정보였달까. 심지어 연락처도 몰랐다.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매일 보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옆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시간이 쌓여갔다. 하루 이틀 다 같이 점심과 저녁을 먹는 일도 많아졌다.
정 대리가 기획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화 중 본인의 관심사나 아는 주제가 나오면 상대의 말을 자르고 자기 얘기를 밀어 넣는 부류, 그게 정 대리였다. 내 말을 자르든 임 차장님의 말을 자르든 한 팀장님의 말을 자르든 정 대리는 개의치 않았다. 모든 화제의 중심에 본인을 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정 대리가 동석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항상 애매하게 서로가 불쾌한 지점이 생겼지만 십분 이해한다면 못 넘길 정도는 아니었다. 어떤 그룹이든 꼭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정 대리는 매일 출근하지 않았어도 기획팀의 다른 누구보다도 박 실장님을 챙겼다. 점심에 밥이 안 당긴다는 박 실장님 말에 “저번에 갔던 집에서 샐러드 사 올까요?”라며 손들고 나섰다. 오늘은 열받아서 술 한잔하고 싶다는 박 실장님 말에 곧장 “1차는 제가 사겠습니다! 2차는 실장님이 사실 거죠?”라며 아양도 잘 떨었다. 사소하지만 효과는 확실한, ‘알량’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눈에 띄는 호의에 박 실장님도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으니 그 자체로 문제 될 건 없었다. 권력에 줄을 서 유무형의 잇속을 챙기려는 심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니까.
다만 선을 넘어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 때가 잦았다. 박 실장님과 쌓은 유대감을 무기 삼았다. 정 대리는 마치 박 실장님을 대리 혹은 빙의하듯 본인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도 비아냥 섞인 말투로 훈계했다. 훈계는 유독 임 차장님과 한 팀장님, 새로 온 팀장급 사람들에게 집중됐다. 그룹 IDD에 다녔던 1년 동안 디자인 21에 우환이라도 생긴 건가? 정 대리의 행동과 태도를 볼 때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박 실장님은 제지하기는커녕 정 대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정 대리가 누군가를 향해 큰소리로 한 마디 꺼내 놓으면 박 실장님이 그 얘길 듣고서 거드는, 이상한 상황이 수시로 벌어졌다.
“임 차장님. 회의 준비 다 했는데. 글로비스는 언제까지 잡고 계실 거예요!?”
“응응… 클라이언트가 이것 좀 빨리 넘겨달라고 해서… 이것만 보내고 갈게.”
“차장님, 아직도 <모터스라인> 회의 시작 안 했어요?”
“임 차장님, 현 대리님이 반영해 달라는 거 체크하셨어요!?”
“아직…”
“차장님,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게 먼저. 하루이틀 해본 거 아니면서 매번 이러시네.”
“한 차장님! <모터스라인> 기아 K7 원고는 아직이죠?
“거의 다 썼어.”
“한 차장, 디자인팀에서 기다리잖아.”
“이 팀장님 배열표 언제 만드실 거예요!? 실장님이 빨리 달라는데?”
“아… 맞다. 얼른 만들어서 줄게요.”
“팀장님! <모터스라인>이 가장 중요하다니까요?”
매번 같은 패턴이었다. 관찰자 시점으로 상황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정 대리의 업무는 일부에 불과했다. 하반기에는 매일 출근하긴 했지만 관리자도 아니었다. 자신이 훈계하는 차장이나 팀장들보다 나이도 어렸다. 조직문화에 신경 쓰지 않는 ‘코딱지’만 한 회사여도 디자인 21에는 직급에 따른 역할이 존재했다. ‘번아웃’을 겪던 임 차장님께 보이는 태도가 특히 가관이었다. 옆에서 거들어주는 박 실장님이라도 있으면 임 차장님을 ‘조리돌림’하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 헤어 스타일과 옷차림까지 은근슬쩍 지적하고 나섰다.
“임 차장님! 정 대리가 자꾸 선 넘는데 왜 가만히만 있어요.”
“내가 정신이 없었어…”
“한두 번도 아니고, 박 실장님 믿고 계속 저러잖아요.”
“하… 모르겠어 나도.”
“아니 도대체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한 차장님도 진작에 먹힌 거 같던데.”
“(웃음)서 팀장이랑 봉 나가서 힘들었지… 일이 많긴 많았어.”
“새로운 팀장님도 조만간 나갈 거 같아요. 박 실장님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냥 두자… 나도 조만간이야… 더는 힘들어.”
까무잡잡한 얼굴과 잘 매칭되지 않는 새초롬한 몸짓이 부자연스럽긴 해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재미난 이야기를 쏟아내며 모두를 웃겨주던 임 차장님의 정겨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임 차장님은 ‘자의 반 타의 반’ 2017년 말부터 모두가 퇴사한 회사에 남아 부담을 혼자 떠안아 번아웃을 겪는 중이었다. 사람에게서 활기가 사라졌다. 덩달아 업무 중 실수도 잦아졌다. 박 실장님이 마음에 안 들어하는 명단에 임 차장님이 올라 있었다. 정 대리는 ‘가스라이팅’을 하듯 그런 임 차장님의 실수와 잘못을 지적하고 앉았다. 결론은 뻔했다. 임 차장님은 디자인 21에서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결국 퇴사했다.
한 차장님에게서도 징조가 보였다. 한 차장님은 밥을 먹으며 종종 “박 실장님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차장에서 팀장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자인 21을 떠났다. 재작년과 숫자로만 비교하면 퇴사자 수는 적은 편이었지만 줄어든 업무와 TO를 감안한다면 피차일반이었다. 약 7개월간 디자인 팀에서는 한 명뿐이었지만 기획팀 퇴사자 수는 한 손가락을 모두 사용해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팀장으로 입사했던 모든 사람이 못 버티고 관뒀다. 기시감이 들었다. 2017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다만 그때는 없던 빌런까지 가세한 덕에 사람들이 퇴사하는 과정이 더 선명해졌고 조직 내 분위기는 더 암울해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예요?”
“작년에도 똑같았어.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 임 차장님은 작년부터 완전히 넉아웃.”
“한 차장님한테도 막 대하던데?”
“작년 초에 대리님 포함해서 기획팀 전부 퇴사하고 임 차장님만 죽어났어요. 그러다 정 대리가 입사했는데 박 실장님이랑 쿵짝이 맞더라고. 아우. 아무튼 작년부터 임 차장님은 둘한테 찍혀서 완전히 타깃이 됐어요.”
“새로 온 팀장님이 뭐만 실수하면 박 실장님한테 가서 다 일러바치는 거 같던데. 이 팀장님도 얼마 못 갈 듯해요. 둘이서 계속 저런 거예요?”
“임 차장님 작년에 완전 불쌍했다니까. 그래도 오래 버틴 거예요.”
“대표님은 또 가만히 있고?”
“똑같지 뭐. 바뀐 게 없다니까요.”
“대리님이야말로 오래 버텼네(웃음).”
“기획팀이었으면 나도 관뒀죠. 대리님은 그래도 박 실장님이 이뻐하는 편이에요.”
임 차장님이 퇴사할 때 디자인팀 재윤 대리와 나눈 대화로 그간의 사정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두 사람의 공격 대상에 속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어떤 형태의 조직이든 문제가 발생했다면 전적으로 관리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였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라 보였다. 이전과 비교하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으로 야근이 줄었어도 사람은 계속 퇴사했다. 회사의 일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퇴사자 발생으로 인한 업무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한 차장님이 퇴사할 무렵부터 정 대리가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남양연구소 <Together R&D>와 <모터스라인> 테크북 업무만 묵묵히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방법이 없었다. 임 차장님과 한 팀장님 모두 떠났고 굳이 절을 바꿔서 얻을 효용 자체도 없어 보였다. 기획팀에 매일 출근하는 사람은 나와 정 대리뿐이었다. 그런데 박 실장님에게서 내 업무에 정 대리를 붙이려는 낌새가 느껴졌다. 뒤통수에 ‘싸한’ 느낌이 강하게 스쳤다. 하루는 남양연구소 출입 등록 사이트에서 개인 정보를 적고 있었다. 박 실장님이 “정 대리도 같이 데려가”라고 하길래 “가서 정 대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딱히 없을 거예요. 두 팀이나 인터뷰해야 해서 혼자 다녀오는 게 더 편해요. 정 대리도 불편할 거고요.”라며 에둘러 거절했다.
한 번은 성공했지만 두 번은 실패했다. 미국 소비자 조사기관인 J.D. 파워에서 ‘인포테인먼트 품질 만족도 조사’를 석권한 현대자동차 ‘인포테인먼트개발센터’ 연구원들을 인터뷰하는 일정이 잡혔다. 당시 인포테인먼트개발센터가 입주해 있던 테헤란로의 현대오토에버 본사에 방문하기 위한 출입 등록을 진행하며 박 실장님 지시에 따라 정 대리의 정보도 함께 입력할 수밖에 없었다. 핑계를 댔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정 대리도 촬영 현장과 인터뷰 경험을 익혀야 한다는 이유였다.
대회의실에서 7명의 연구원과 동시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18명의 연구원을 각자 담당하는 업무별로 그룹을 나눠 촬영도 마쳤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Together R&D>의 클라이언트였던 설경 매니저와 잡담을 나누며 공용공간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서울로 출근한 설경 매니저는 신이 난 듯, “오늘은 법인카드도 들고 왔다”며 늦은 점심이지만 다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맛집을 추천해 달라기에 근처 포스코사거리에 위치한 ‘하동관’이 떠올랐다. 나와 설경 매니저, 촬영팀 실장님과 어시스턴트 모두 찬성했고 정 대리에게도 의사를 물었다. 종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던 정 대리는 갑자기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먼저 사무실로 복귀해 버렸다.
오랜만에 맛있는 곰탕과 수육을 배불리 먹고 사무실로 기분 좋게 복귀했다. 그런데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대표님이 본인 방으로 불렀다. 분위기가 뭔가 이상했다. 클라이언트한테 “우리가 만든 걸 별로라고 이야기하면 어떡하느냐”며 핀잔을 꺼냈다.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하다 아까 전 촬영을 마치고 설경 매니저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대표님에게 자초지종을 처음부터 설명해야 했다. 설경 매니저는 “내년부터는 책을 발행하지 않고 웹진 형태로 바꿀 예정”이라며 내게 의견을 물었었다.
“내년부터 저희 팀 예산이 준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웹진으로 대체해야 할 거 같아요.”
“다들 어쩔 수 없는 수순이더라고요. 책의 효용이 갈수록 낮아지긴 하니까요.”
“<모터스라인> 앱은 디자인 21에서 만드셨죠?”
“아, 네… 제가 한 건 아닌데 회사에서 만들긴 했더라고요.”
“대리님이 보시기에 R&D 웹진도 앱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 거 같으세요?”
“텍스트 위주인 콘텐츠인데 굳이 앱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해요. 어차피 <모터스라인> 앱도 웹페이지를 미러링만 하는 방식이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큰 효용은 없거든요. 콘텐츠가 앱에서 효용성이 있으려면 본격적인 개발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예산 때문에 쉽진 않을 거고요. 평소 사용하는 앱이랑 퀄리티 차이가 느껴져서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드네요.”
“윗분들이 보실 때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받고 그러면 좀 더 좋아하실 거 같기는 해서요.”
“있어 보이긴 하죠(웃음). 그런데 관리도 해야 하고 굳이 비용을 더 들여서 사보를 앱으로까지 제작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제 생각이긴 해요. 그래도 윗분들이 원한다면 만들어야겠지만요.”
“저도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거든요.”
“내부에서 결정되면 말씀해 주세요!”
“네! 식사하러 가시죠. 오늘은 제가 법인카드도 들고 왔습니다. 하하.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정 대리의 작품이었다. 클라이언트에게 전한 솔직한 의견이 불과 몇 시간 만에 ‘회사 욕’으로 변질됐다. 어떤 이유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바라서 말을 전했는지는 상관없었다. 인터뷰와 촬영에 따라와서 도와주는 척도 없이 멀뚱멀뚱 앉아만 있었을 때부터 짜증이 났는데 이제는 주체할 수 없는 화까지 치밀어 올랐다. 회사 생활이라고 해도 도저히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대표님과 대화를 나누며 임 차장님 생각부터 났다. “존경합니다 차장님. 이런 정 대리랑 1년 넘게 회사를 같이 다녔다고요? 전 못 다니겠는데요.”
“야, 너 장난하냐. 말 전하고 다니라고 어디서 배워 먹은 거냐?”
“……”
“내가 한 말을 전할 거면 녹취라도 하셨어야지. 네 멋대로 차 떼고 포 떼서 편집해서 얘기하고 다니는 이유가 뭔데? 너 뭐냐고. 스파이야? 나 따라니면서 내가 뭐하고 다니는지 누가 보고하라든?
“……”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너 오늘 왜 따라왔냐니까? 말 전하려고 따라왔어? 전할 거면 똑바로나 전하든가.”
“뒤에서 회사 욕하는 건 어디서 배웠는데 너는?”
“네가 훔쳐 들은 얘기는 내가 회사 욕을 한 걸로 들리디? 나랑 장난해?”
“……”
1,000원짜리 사과를 팔며 사실 2,000원짜리라며 거짓말해 더 받지 못한 게 잘못이었을진 모른다. 사회인이고 지성인이고 어떻든 간에 인간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정 대리 입장에서야 여태 본인과 아무런 트러블 없던 사람이 갑자기 자리로 와서 면전에 화를 쏟아내니 당황했을 순 있겠지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욕까지 퍼부었을 정도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정 대리뿐만 아니라 조직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묵과해 온 대표님과 박 실장님에게도 넌덜머리가 났다. 지긋지긋했다.
이십 대 초반에 헤어진 연인과는 절대 다시 만나지 않기로 결심했던 이유를 회사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했다. 회사도 결국 관계일 테니까. 그러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연인이든 회사든 결국 같은 이유로 헤어지는 법이었다. 꼭 낭떠러지 앞에 서 봐야지만 후회하는 법이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소용없다. 이치다. 한 번 벌어진 관계는 같은 이유로 또 벌어진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낭만 따윈 믿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