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왜? 또?! 피아노?

피아노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거에요??

by 좋은음악수집가

경주에서 약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 인생에서 가장 오랜시간 머물렀던 그 곳은 바로 경산이다. 경산은 정말 살기 좋은 곳임에 틀림 없음에도 어쩌면 쓸데없이 넓은 곳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넓은 줄 몰랐지만 내가 이사간 곳은 진량읍,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에다가 아파트가 엄청 많으면서 사람도 많았으며 1~3차까지는 옹기종기 붙어 있었으나 내가 살던 4차 아파트는 이상하게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른 아파트는 차수에 맞게 1차라면 101동, 3차라면 301동 식으로 정해져 있었다면 4차임에도 400번대가 아닌 500번대를 가지고 있는 다소 웃긴 아파트였다. (숫자 4를 쓰지 않은게 죽을 '死'를 뜻해서 쓰지 않는다나 뭐라나... 미신은 미신일 뿐이다. 전국에 계신 모든 '사'로 끝나는 직업 및 '사'장님 만세!)


새로운 초등학교 1학년의 시작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이야... 지옥의 시작이 열려있다면 학원이 아닌 학교생활이 지옥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부터 고등학교 3학년 까지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래, 이해한다. 그때는 그랬으니까, 맞아야 이상한 길로 새지 않고 올바르게 갈 수 있다는 것을 철썩같이 믿었으니까.


근데 초등학교 1학년에게 있어서 뺨을 누군가에게 맞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근데 나만 맞았다면 그 상처가 오래 남았을 텐데 그 선생님은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왼손으로 왼쪽 볼을 잡고 적당한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면 반대편 빰을 딱 한대만 철썩 때렸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타인의 뺨의 소중함을 알아서 저는 누구를 때리진 않아요.) 당시의 학교 분위기를 조금 더 이야기 해볼까? 지금의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이상들은 아시리라 생각한다. 뺨이나 회초리는 기본이었고 교실안에서 교사가 흡연을 했던 시절이었고 담배가 떨어지면 학생에게 돈을 쥐어주고 심부름까지 시켰던 것이 당시의 학교다. '교육'이라는 명제 아래에서 요즘 군대에서도 거의 하지 않는 얼차려를 부여했고 선생님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리는 날이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풀지는 않더라도 무자비한 매질(혹은 주먹질)을 피할 수 없었기에 조심해야했다.


다행스럽게도 이사 온 곳에서의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매를 들지 않으셨다. 근데 딱히 맞을 짓을 안했다. 조금 까불까불 거렸을 뿐... 피아노 앞에 앉아서 적어도 울지는 않았다는 것, 하라고 내려준 연습량을 꾸준히 채우기는 했다.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실력이 제자리였을 뿐.




모든 학생들의 바람은 무엇일까? 글쎄... 아무래도 학교를 마치고 오롯이 친구들과 뛰어놀거나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닐까? 근데 왜? 왜? 왜? 나는 지역을 옮겨서 까지 피아노를 해야 했을까?


"여기 와서도 피아노를 또 해야해요?" 라고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단순히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싶기도 했고 악기를 가르치는 곳이 피아노 학원 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제일 만만한게 피아노란 말인가? (만약 그 당시에 내가 프레디 머큐리나 존 레논을 알았더라면 역사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집에도 피아노가 있어야 한다. 오롯이 학원이 잘 가르쳐 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연습을 하는 것에 동기부여도 없는 것도 문제지만 피아노 학원을 떠나면서 까먹는 모든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엘'에서 '체르니'로 넘어가야할 시간이 한참이 지났음에도 바이엘 한권만 계속 파고 있었던 나는 3년동안 바이엘을 넘기지 못했다. 피아노 선생님과 나의 어머니는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나를 보며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나의 관심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악기가 또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 휴가는 잘 다녀들 오셨나요? 저는 '코로나19'의 늪에 잠시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살아났답니다. 코로나19가 잠시동안 저를 힘들게 하였더라도 위기는 잠시일 뿐입니다. 매거진 한편에 '피아노'가 들어간 음악, 좋은음악수집가가 사랑하는 1곡을 추천해드립니다.


billy_joel_-_piano_man.jpg 무.... 무서워..... 그래도 명반!


<Billy Joel - Piano Man>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이 1973년에 발표한 솔로 2집. 동명의 음반의 2번트랙이며 싱글로도 발매가 되었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엘튼 존(Elton John)을 대표하는 별명이 그의 곡 딴 <Rocket Man>이라면 빌리 조엘의 별명은 <Piano Man>이 자연스레 따라 붙었는데 그만큼 피아노를 정말 잘 치는 아티스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빌리 조엘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여담으로 엘튼 존과 빌리 조엘은 활동 기간은 비슷하지만 라이벌로는 엮이지 않는다.


고등학생 때,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제법 큰 교회에 다니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썸'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기였는데 푸릇푸릇한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아했던 동갑내기 여학생이 이 곡을 정말 좋아한다며 나에게 알려 준 곡이다. 사실 그때는 이 음악이 그렇게 대단한 음악임을 알지 못했고 진가를 알게 된 것은 사진과 똑같은 음반을 손에 얻고난 후니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다. 그 여학생과는 이루어지지 않고 '썸'으로 끝이 났지만 가끔은 이 곡을 들으면 그때의 풋풋함이 떠오르곤 한다. 물론 곡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 없는게 흠이라면 흠.


빌리 조엘은 1960년대에 밴드로 데뷔한 이래 솔로 아티스트로 전향 후 2013년 부터 현재까지도 본인의 팀을 이끌고 미국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잠시 뿐인 듯 하고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어쩌면 진정한 음악인의 모습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가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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