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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음악수집가 Oct 01. 2022

니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놈이..

킹 크림슨 -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최근 고교야구 드래프트에서 인상적인 선수가 프로무대로 진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0여 년 전, '핫초코 미떼' 광고에서 야신 김성근 감독과 함께 광고에 출연했던 꼬마 아이가 어엿한 NC 다이노스의 야구 선수가 된다는 소식이었다. (이 글을 빌어 신일 고등학교 목지훈 선수의 프로 입성을 축하합니다.) "야구하면 되겠다."라는 지나가는 말에 어린 친구의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이 가지고 있는 힘은 강력하다. 말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으며 분단된 나라가 말실수로 통일이 된 사례도 있고 한반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려시대의 문인 서희(942~998)는 거란의 소손녕을 상대로 오로지 말발로 강동 6주를 얻어냈으니... 말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며 상상을 초월하기에 늘 조심해야 한다.




 나는 보통 남자들과는 달리 대학교를 4년 동안 단 한차례의 휴학도 없이 논스톱으로 다녔다. 군대도 남들처럼 중간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대학교를 졸업한 해에 들어갔다. 대학생으로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한 학기라도 휴학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저 쉬면서 바깥 활동도 많이 해보고 싶었고 여행도 떠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대학교를 휴학해버리면 동생과 대학생활이 겹쳐 버려서 부모님이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기 버거울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휴학을 하지 않고 군대도 최대한으로 미뤘다.


 대학교 4학년이 되던 시절, 대구광역시의 핫 플레이스 동성로에서 많은 이들이 만나는 '한일극장'에서 사람들이 없는 반대편으로 조금만 걸으면 중고 LP를 판매하는 레코드 샵이 있었는데 정말 우연히 친구 녀석의 차를 타고 가다가 마주쳤기에 황급히 내려서 들어갔다.


 목소리가 인상적이고 당시의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던 사장님에게 '턴테이블은 아직 없지만 LP에 관심이 있다'라고 하니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고 자주 놀러 오라는 말까지 들은 후에 정말 뻔질나게 들려서 오죽하면 입대하기 전까지 출석률이 가장 높은 대학생이기도 했다. (당시 사장님 덕분에 나의 첫 턴테이블이 생기기도 하였다.)


꾸준히 출석률을 잘 높여 나가던 어느 날...


"니 킹 크림슨 아나?"

"아니요.. 모르는데요?"

"니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는 놈이 킹 크림슨도 모른다고 하면 되나?"


 지금이야 킹 크림슨을 4대 프로그레시브 록밴드(King Crimson, Pink Floyd, Yes, Genesis)중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 꼽지만 그때는 그저 대중적인 올드팝에 몰두했던 시기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를 위해 사장님은 빽판(해적판이라고도 하며 당시에 불법으로 만들어서 싸게 유통했던 LP판이다. 음질은 복불복이며 표지는 대부분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다.)이 많은 곳을 이리저리 뒤적뒤적거리시더니 킹 크림슨의 1집의 빽판을 꺼내셨다.


 "어디 한번 들어봐라."


 빽판이 선사하는 생각보다 심각한 지글지글 거림과 함께 도입부는 상당히 강렬했다. 킹 크림슨의 시작을

 알리는 <21st Century Schizoid Man (Including "Mirrors")>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코드 진행이 아님을 느끼게 되었고 재즈같이 변칙적이고 까다로운 연주력이 아주 일품이었다. 하지만 이 곡을 추천하실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다. 별말씀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당시 레코드샵에서 산 킹 크림슨의 1집 성음 라이센스 판. 표지가 저래도 그냥 샀다. 음악이 중요했기에.


7분이 넘는 혼란함을 뒤로하고 두 번째 곡인 <I Talk to the Wind>의 도입부는 플루트로 시작했는데, 플루트로 화음을 이루어내며 혼란한 분위기를 환기라도 하는 듯, 을씨년스러운 바람을 음악으로 느꼈다. 나는 온몸으로 음악을 들으며 속으로 보물을 발견했다는 듯이 내면이 환호하고 있는 반면 사장님은 그냥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계셨다.


"이제 나올 거다. 제대로 한번 들어봐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곡의 제목은 <Epitaph (Including "March For No Reason" and "Tomorrow And Tomorrow")>이었고 사실 음반의 표지는 1번 트랙과 밀접하게 맞아 떨어지지만 일그러진 얼굴에 공포감을 더해주는 곡이었다. 그래서 표지를 한참 쳐다보았다. 러닝타임이 8분이 넘지만 길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 만큼 금방 지나간 느낌이었고 A면의 세곡이 끝난 후 B면을 자연스레 틀어주실 줄 알았는데 B면은 틀어주시지 않았다.


"내가 DJ할 때 이곡 많이 틀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나의 아버지가 대학생 시절, 사장님은 대구의 음악감상실 DJ 셨고 당시의 낭만을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주셨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겪지 못했던 것에 대한 환상이 더욱 심어졌달까?


결국 지글지글한 킹 크림슨의 빽판 B면을 끝내 듣지 못했지만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받아서 나온 음반이 눈에 보여서 바로 현장에서 구입한 것이 위 사진의 음반이고 그 음반을 통해 B면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계몽사에서 나온 킹 크림슨의 1집. 오른쪽 하단에 있는 저 문양 때문에 살까 말까 많이 망설였지만 게이트폴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구입하였다. 대신 음질은 정말 구리다.


 어쩌면 나의 음반 수집의 불을 제대로 지핀 분들이 여러 계시는데 특히 첫 불을 제대로 지피신 분이 바로 그때의 레코드샵 사장님이셨음은 분명하다. (저와 음반으로 연이 닿으신 분들은 전부 저의 글에 담도록 약속드리겠습니다.) 킹 크림슨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무진장 애를 썼고 유튜브에 올라온 음원과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 감탄사를 혼자 내뱉기도 했다.


 그러다 2019년, 완전히 소실된 줄 알았던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를 찾아낸 지 10년이 지나고 킹 크림슨의 데뷔가 50주년이 되었을 무렵에 이 음반은 오리지널 리마스터링 LP로 세상에 나왔다. 그 자체로 먼 나라의 광팬에게는 그저 기쁨이었다.


(왼쪽부터) 50주년 킹 크림슨의 1집, 킹 크림슨의 1969년의 모든 녹음기록을 담은 26장의 디스크로 이루어진 모음집, 커버를 벗기면 영롱한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았다. 한정판으로 나온 1969년의 녹음 기록을 담은 박스세트는 당시 나의 생일 선물로 선택했고 LP와 함께 CD 박스세트를 함께 받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의 생일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살 때의 그 짜릿함과 '이런 날은 Flex해도 괜찮아!' 하는 합리화는 해본 사람만 안다.


 사실 나의 주변에서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가 극히 드물다.(아버지도 프로그레시브 록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다고 하실 정도로..) 대부분 모르거나 프로그레시브 록이 '어렵다.'는 이유로 듣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강요할 생각은 일절 없다. 음악은 오롯이 느끼는 것이니까!





 여담으로 킹 크림슨의 1집의 멤버 라인업을 보면, 총 5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기타리스트는 킹 크림슨의 처음과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베이스와 보컬의 그렉 레이크(Greg Lake), 드럼의 마이클 자일스(Michael Giles), 목관 악기의 이언 맥도널드(Ian MacDonald)가 킹 크림슨의 멜로디를 담당하고 있다면 작사는 오로지 피트 신필드(Pete Sinfield)가 맡았다.


 피트 신필드는 팀에서 작사를 맡으면서 공연에서는 조명을 맡았는데 킹 크림슨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만한 악기나 목소리를 일체 맡지 못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의 작사는 프로그레시브 록에 걸맞는 수준 높은 글솜씨를 보여줬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아쉽게도 피트 신필드는 자신의 음악성을 내비치기 위해 솔로 데뷔 음반 <Still>을 발표하지만 아쉽게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베이시스트 그렉 레이크는 킹 크림슨 활동 이후 키스 에머슨, 칼 파머와 함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를 결성하여 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록의 부흥기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킹 크림슨은 분명 전설 속의 록 밴드지만 불과 몇 년 전 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로버트 프립을 필두로 드러머를 전면에 3명을 배치하는 등의 파격적인 편성을 보여주기도 하였고 일부 멤버들이 세상을 떠나고도 2021년 12월의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옆 나라 일본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에 한번 와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동시에 남는다. 그래도 그들이 남긴 역사는 음원으로 유튜브 영상 등으로 남아있으니 그 아쉬움을 조금씩 달래 보도록 해야겠다.




좋은음악수집가가 추천하는 같이 들어보면 흥미로운 킹 크림슨의 요소가 들어간 곡들!



Dokaka - 21st Century Schizoid Man


 일본의 비트박서 Dokaka는 킹 크림슨의 데뷔곡을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로 담은 곡. 음악의 대한 이해도가 보통이 아닌 사람만 가능하다는 모든 파트를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을 하였다. 사실 이 곡은 종합예술인 이한주 형님이 SNS를 통하여 내게 알려주신 곡이기도 하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쏠쏠하다.



Kanye West - Power


 카니예 웨스트(이하 칸예)가 발표 한 최고의 힙합음반! 사실 힙합을 잘 모르는 나도 이 음반만큼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최고의 음반인 것은 롤링 스톤, 피치포크, NME 등의 음악평론 잡지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2010년대 최고의 음반에 칸예의 5집은 거의 모든 평론지에서 1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저작권으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킹 크림슨의 리더 로버트 프립은 자신의 음악이 다른 곳에서 쓰여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데, 이 곡 중간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21st Century Schizoid Man"을 들으면 너무도 잘 맞아 떨어져서 소름이 돋을 정도인데 이 곡이 원작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아서 로버트 프립 측에서도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넘어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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