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음악수집가 Dec 17. 2021

출퇴근 길의 소중함

반쪽짜리 음악인이 아닌 반의 반의 반쪽 뮤지션의 삶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의 하루의 시작이 문득 궁금해진 적이 있다.

누군가는 등교를 하고 누군가는 빠른 시작을 누군가는 느긋한 시작으로 아침을 깨울 것이고 반대로 해가 지기 시작할 때 조용히 시작을 알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꽤나 잔잔한 알람이 울리는 매일 아침 06시 30분. 작년인가 재작년에만 해도 기본 알람에 예쁜 목소리가 깨워줬는데 어느 시점부터 안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미 적응이 되었다. 주말에는 조금 더 게으름을 피울만한데 주말에도 신체리듬을 유지하고 싶어서 06시 30분이면 기상하고 본다. 아니지... 정확히는 그 시간에 눈이 떠진다. 습관이 무서운 법. 기상시간은 그렇게 정해졌다.


기상을 하고서는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차려 먹는 것도 귀찮고 아침을 안 먹는 것에 꽤나 익숙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나 휴대폰, LP, CD를 이용하여 어떤 것이든 일단 음악을 켜고 보는 것이다. 매일매일 무엇을 듣고 싶은지 그날그날 다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틀어본다.


'아침 활기를 띄는 재즈.. 윤석철 트리오 - 여대 앞에 사는 남자'


직장을 다니며 꽤나 오랫동안 차가 없어서 늘 카풀을 구하는 신세로 살았다. 오래전에는 자전거를 사서 출근을 한 적도 있지만 출근길에 체력을 쏟아버리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 너무 비신사적(?)이어서 일찍이 그만둬버렸다. 그러다가 카풀을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운전자들의 음악적인 취향이었는데 매번 타는 차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적이다 보니 운전자들의 취향을 담은 곡들도 제각각이었다. 누구는 최신가요, 누구는 팝, 누구는 7080... 그러다가 결국 2021년 6월에 큰 마음먹고 내가 차를 사버렸다.


차를 구입하기 전 내가 생각했던 것은 '어떤 모델의 차가 멋지고, 화려하고, 연비가 좋으며' 등등의 이런 것들을 따지지 않고 그저 '음악이 잘 나오는지?'에 대한 다소 경악(?)스러운 발상이었고 차량 구입으로 상담을 받을 때도 "저는 차를 전혀 모르고요.. 음악만 잘 나오면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팀장님은 약간의 당황한 기색을 보이셨으나 금세 돌아오시고 일사천리로 결제까지 이루어졌다. 

일부 차에서는 블루투스 기능으로 음악을 듣다가 전화통화 후에 나오는 음악에서 피치가 높아지는 현상도 있었는데 다행히 요즘 나오는 차는 그렇지 않아서 안심할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내가 산 차는 나와 이미지가 가장 잘 맞는 경차! Ray다.)


출근을 하기 위해 시동을 걸고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블루투스 연결인데 이게 연결이 되면 출근하기 전 무엇을 들을지 고민한 결과를 도출해내기보단 그저 눈에 보이는 랜덤 한 재생을 한다. 그러다 보면 아는 곡이 나올 수 있고 모르는 곡이 나를 반길 때가 있다. 음악이라는 것이 평균적으로 4~5분을 크게 넘어가지 않으니 곡이 나오기 시작함과 함께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나는 늘 유튜브 뮤직(유튜브 프리미엄 결제를 하면 사용이 가능하다.)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운전에 활기를 띄워줘야 조금이라도 즐겁게 도착할 수 있다. 사실 운전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목적 없이 운전한다는 것을 굉장히 귀찮아한다는 나 자신을 느꼈을 때, 노동을 해야 한다는 '목적'에 감사하고 있다. 아! 물론 음악에게도... 아버지 세대에는 이 지루한 운전을 어떻게 극복하였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오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 나는 퇴근할 준비를 한다. 역시 퇴근을 준비할 때도 '집에 갈 때는 이 곡을 듣자!'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감과 랜덤 그리고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것... 어쩌다 '탁!' 신호가 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결국 내 하루의 시작과 끝엔 음악이 있는 것. 만약 옆에 누군가 타고 있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는 아직 없다.


날이 점점 추워진다. 

하늘에 떠있던 태양이 벌써부터 자취를 빨리 감춘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오들오들 떨면서 후배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그래.. 오늘은 후배 녀석이 내 차를 탔으니... 극도로 고독해질 수 있는 음악을 틀어보자'

그러면서 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Bahamas의 우울한 느낌의 곡 <All I've ever known>을 틀었다.


"와 죽인다! 선배님 이곡 제목이 뭡니까?"

굳이 대답을 해주지 않고 내비게이션 화면을 바꿔주며 검색하게끔 도와줬다.

혼자 탈 때는 볼륨을 크게 하는 편이고 누군가가 타면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 늘 듣던 볼륨보다 반 이상 줄여버리는데 오늘은 그러기 싫어졌다. 아니, 그럴 필요 없었다. 오롯이 음악이 깔아주는 길을 조심스레 따라갈 뿐이었다.


출근길과 퇴근길은 어쩌면 음악과 함께 하는 '작은 의식'이다. 내 나름의 정해진 방식에 의해 가는 길은 같아도 정글로 들어가기 전과 정글에서 빠져나온 후의 의식!

적어도 '오늘도 난 패배하지 않았다.'라는 묘한 해방감까지...!

그래! 삶이 그저 조금 힘겨울 뿐이지 음악은 늘 한결같이 위로가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다.




<좋은음악수집가의 상당히 주관적인 출근길, 퇴근길 추천곡 Best 5! (장르, 국적불문!)>

출근길 추천곡 Best5! + α

Candies - 微笑がえし

1973년에 데뷔하여 1978년에 해체한 3인조 여성 아이돌 Candies의 마지막 싱글. 후렴에서 외치는 '1, 2, 3'의 다양한 언어와 밝은 멜로디와 함께 세명이 쌓는 화음은 황홀하기만 하다.

윤수일밴드 - 아름다워

 '세련'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윤수일밴드의 1984년 작. 쨍쨍한 여름 출근길이라면 더욱 추천한다. (놀러 가고 싶어지는 부작용 주의)

The Bangles - Manic Monday

월요일... 적어도 대부분의 직장인들과 학생들은 월요일을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곡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의 아이콘 프린스(Prince)는 뱅글스에게 이 곡을 제공하면서 "어차피 잘 될 거야"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는데 역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자신감으로 월요병을 극복하자.

The Beatles - The Fool on the Hill 

1967년에 나온 비틀스의 정규 9집(영국 기준) <Magical Mystery Tour>에 수록된 명곡. 새벽 공기를 가르는 시간대에 폴 매카트니가 부르는 노래와 리코더... 그리고 몽환으로 인도하는 리코더와 브라스... 만약 안개가 자욱한 출근길이라면? "아! 이곡이다!" 하지 않을까?

Boston - More Than a Feeling

1975년 미국의 록밴드 Boston의 데뷔작. 포크와 하드록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전개와 함께 아직 덜 깬 잠을 시원시원한 고음으로 날려보도록 하자 아침 일찍 잠겨있는 목을 풀어주는데도 효과적(?) 일 수 있다. 단, 목이 쉬어버린다면 난 책임질 수 없다.


출근곡 추천 α (아티스트 - 곡명)

Achime - 맞은편 미래 

Princess Princess - Diamond 

빛과 소금 - 오래된 친구

ABBA - I do I do I do I do I do 

청년실업 -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다

한상원 - Seoul, Soul, Soul


퇴근길 추천곡 Best5! + α

① 김창훈과 블랙스톤즈 - 독백

원곡은 1981년에 나온 산울림의 7집! 그리고 산울림의 둘째 김창훈이 밴드를 결성하여 2017년에 발표한 셀프 리메이크작. 상당히 무게감 있는 유병열의 기타톤과 외로움과 씨름하는 듯한 가사의 조화는 퇴근길을 조금 어둡게 만들 수 있겠지만 퇴근길에 추천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② 부활 - Never Ending Story

2002년에 나온 부활 8집의 타이틀곡. 이승철과 김태원의 재결합으로 큰 화제를 낳기도 했으며 김태원은 이곡을 통해 2003 KBS 가요대상에서 작사상과 작곡상을 최초로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잔잔하게 시작하면서 후렴에 터지는 부분에서 퇴근길에 시원시원하게 소리 질러보자

③ Pat Metheny - Last Train Home

팻 매시니가 1987년에 발표한 <Still Life (Talking)>의 대표곡. 고등학생 때 우연히 알게 된 재즈 음악이었는데 종종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하굣길에 듣기도 하였다. 이것을 퇴근길에 적용하니 역시는 역시다!

④ 오마이걸 - 비밀정원

2018년 1월에 세상에 나온 걸그룹 오마이걸의 다섯 번째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갑자기 걸그룹 음악이라니! 하지만 퇴근길에 펼쳐지는 그대의 비밀정원을 떠올린다면 더욱 가벼워지지 않을까? 어쩌면 김창훈과 블랙스톤즈의 <독백>과는 반대 선상에 있는 곡.

⑤ 미미시스터즈 - 우리, 자연사하자

시스터즈의 계보를 이어나가는 큰미미, 작은미미 로 이루어진 미미시스터즈는 장기하와 얼굴들에서 독립 후 2018년에 발표 한 싱글. 결국 우리가 사는 이유는 '자연사'하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 모두 자연사하기 위해 열심히 살자. 아직 갈길이 멀다.


퇴근곡 추천 α (아티스트 - 곡명)

들국화 - 걷고 걷고 

브로콜리 너마저 - 보편적인 노래

크라잉넛 - 명동콜링 

서울전자음악단 - 꿈에 들어와, 서로 다른

마키하라 노리유키 - もう恋なんてしない (다신 사랑 따윈 안 해) 

Bee Gees - Night Fever 


여러분들이 출퇴근 길에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댓글로 공유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작가의 이전글 그래요. 12월에는 비가 오겠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