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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서리 Jan 01. 2023

비행#1

한 타일공의 이야기

만약 하늘을 날 수 있다면 나는 추락해서 죽고 말 것이다. 내 상상의 결말은 항상 이랬다. 비행을 하다가 종래에는 떨어져 죽고 마는. 그건 내 삶과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간혹 조금 기쁜 일이 있으면 이내 더 큰 불행에 괴로워하곤 했다. 그것이 내가 경험해 본 삶의 전부이니 불행하게도 내 상상의 범위도 그곳에 갇히고 말았다. 상상 속에서도 행복한 꿈을 꿀 수 없는 나 자신이 나는 안타까웠다. 생텍쥐페리처럼 비행기 조종사였다면 나도 비행에 관한 상상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타일공이어서, 내 상상은 모자이크 모양이다. 모든 것이 다 기하학적 무늬로 된 미로에 갇히고 만다. 나는 종종 타일로 된 복잡한 미로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달리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악몽에서 깨어나곤 했다.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다. 하루빨리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다 보니 기술을 배웠고 그중에서 제일 할 수 있는 법한 일을 고른 것이 이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현장일 보다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으나 이 일은 내 짧은 생각보다 훨씬 민감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타일은 쉽게 깨졌다. 그러면 손해는 내가 떠안았다. 그래서 팔과 허리에 쥐가 나도록 조심조심히 타일을 옮기고 한 장 한 장 붙여야 했다. 타일을 필요한 부분에 맞게 오차 없이 조심스럽게 절단하여 정확히 붙여야 했다. 그것은 내 성미에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위험 부담이 적은 일이 좋았다. 그런 일이 대체 뭐가 있을까? 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여, 나는 한순간의 짧은 선택으로 인생을 괴롭게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렇게 괴롭다면 다른 일을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긴 하다. 예컨대, 지금부터 도배일을 배우고 도배사가 되면 된다. 그런데 타일공이 되는 것도 힘들었다. 이 일을 시작하여 한참 잡일을 하다가 타일을 잡게 되는 것도 참 오래 걸렸다. 그리고 내게는 다시 공부하고 작업을 배워서 새로운 일을 가질 만큼의 열정이 없다. 의지가 없다. 할 이유도 뚜렷이 없다. 그래서 나는 여타의 움직임을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오늘도 작업을 하러 출근을 했다. 이번 작업은 타일이 패턴을 이루도록 붙여야 해서 더 신경 써야 했다. 이런 작업이 있는 날은 그 전날 잠이 잘 안 왔다. 혹시 실수해서 타일을 잘못 붙이거나 비싼 타일을 깨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가득해 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이상하고 쓸데없는 완벽주의는 이 일의 결과물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과정에는 영 고통스럽기만 하다. 완벽주의가 있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붙이려고 애를 쓰기는 하지만 이는 마음대로 척척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애를 쓰면 쓸수록 쓸데없는 긴장감 때문에 실수가 더 생겼다. 이런 강박이 전혀 없는 내 동료들도 작업은 잘만 끝마친다. 나만 괜스레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저런. 다른 생각을 하다 그만 손에서 타일을 놓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나는 주의가 산만한지. 일을 할 때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하면서도 자꾸 다른 생각이 피어오르게 하는 반복 노동은 내게 참 고통이었다. 물론 여분의 타일은 충분히 있고 타일 한 장 값을 내 임금에서 제하면 끝날 일이지만 나는 이 일을 한 지 1년이 넘도록 아직 이런 실수를 하는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뒷골이 당겼다. 오늘 밤에는 또 무슨 꿈을 꾸게 될까.


오늘은 이상한 나라였다. 환상 속의 공간이었다. 내 키만큼 커다란, 형형색색의 무늬를 한 꽃들이 저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내용은 끔찍했다.

“저 자가 오늘도 타일을 깨뜨렸다며? 웬걸. 모양에 맞게 잘라야 하는 타일은 매번 그렇게도 못 자르면서 멀쩡해야 하는 타일은 왜 그렇게 매번 깨뜨린대?”

겨우 잊고 잠들려고 했던 사실에 대해 쑥덕거리는 꽃들은 가자미 눈으로 날 흘겨보며 소리쳤다.

“어서 여기서 나가! 여긴 당신 같은 자가 있을 곳이 아니야! 여긴 환상의 나라라고!”

나도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닌데, 머릿속을 채우는 질책을 들으며 모자이크 바닥을 열심히 달렸다. 도착한 곳에는 푸른색 애벌레가 있었다.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푹푹 내뱉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번에도 또? 그렇게 단순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말 넌 누굴 닮았는지…”

아니, 나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애벌레를 지나 또 열심히 달렸다. 달리다 보니 으스스한 숲 속이었다. 커다란 나무 위에는 털이 북슬북슬한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수많은 이빨을 내보이며 씨익 웃었다.

“안녕?”

숨이 차 미처 대답할 새도 없이 고양이는 말을 이어갔다.

“길을 잃었니? 그런 모양이구나.”

어느새 고양이는 내 뒤에 있었다.

“너무 질책하지는 마. 누구나 한 번쯤 길을 잃기 마련이지.”

감격에 차 대답하려는 순간 고양이는 말을 이었다.

“물론 너무 자주 길을 잃는다면 그건 여기서도 충분히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고양이는 다시 이빨을 모두 보이며 씨익 웃었다. 위로인 마냥 내뱉어진 달콤한 말 다음의 질책은 더욱 차갑게 다가왔다. 다시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점점 빼곡해지는 타일 바닥을 딛고 달리다 보니 거대한 성이 보였다. 붉은색 성이었다. 그곳에는 홍학과 고슴도치로 크로케를 하는 붉은 왕이 있었다. 왕이 소리쳤다. 

“드디어 꼭 맞는 공이 도착했군! 저자의 텅 비어서 데굴데굴 잘 굴러가게 생긴 머리를 가져와라!”

트럼프 카드 부하들은 재깍 움직여 내 머리를 쑤욱 뽑아갔다. 더 이상 쓸모없게 된 몸통은 해자에 버려졌다. 둥근 내 머리통은 홍학의 부리에 콕콕 쪼이며 데굴데굴 굴렀다. 바닥의 모자이크 문양이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꿈에서 깼다. 오늘도 역시 타일로 된 세계에서 헤매다가 눈을 떴다. 잠깐 뒤척이다 익숙하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일을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일부 인용 

*위 이야기는 가상의 인물에 관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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