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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Aug 24. 2019

술과 연민과 위로의 이야기

서평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소설집 / 창비 2016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찾는다. 술자리의 왁자지껄함을 좋아해서 술을 가까이하는 경우도 있고 술 자체를 좋아해서 마시기도 한다. 또는 인생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술이 고파진다. 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풀릴 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술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쩌면 그 모든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술이 데리고 가 주는 어떤 곳으로 가고 싶어서인지도.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2013년에서 2015년에 걸쳐 발표한 일곱 편의 단편소설들을 묶은 소설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각 소설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수록작 ‘봄밤’에는 알코올 중독자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알류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업의 실패와 아내의 배신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수환과 이혼 후 아이를 뺏겨버리고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게 된 영경은 지인의 재혼식 술자리에서 만나 같이 살게 된다. 술은 둘을 만나게 해 주고 삶을 견디게 해 준 존재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결핍은 서로를 의지하게 하고, 그 빈자리를 술이 채워준다. 술은 버거운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하지만 병이 깊어지는 수환과 그만큼 술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는 영경의 삶은 힘겹다.


그런가 하면 ‘카메라’에는 예전 애인의 누나와 술자리를 같이 하는 문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문정은 관주와 연인관계였지만 어느 순간 헤어지게 되고, 1년 여가 지난 후 그의 누나 관희를 만난다. 관희와 함께 술을 마시며 문정은 관주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알게 된다. 문정과 관주의 관계를 관희는 알았을까? 술은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며 버거운 현실을 견디게 만든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을 술로 달랜다.


운명이 건 장난으로 휘청거리는 삶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 어린 시선은 계속된다. ‘이모’에는 가족을 위해 강요된 희생의 삶을 산 중년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가 몰래 든 동생의 빚보증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이모는 혼자 살 결심을 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 독립한다. 건조한 삶을 살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타인들의 행태에 증오를 느끼며 술을 마시던 중 불현듯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낸다. “성가시고 귀찮아서” 자신을 좋아하던 남학생의 손을 담뱃불로 지졌던 일. 그 이후로 그녀는 “철도침목처럼 규칙적”인 삶을 살아낸다. 술이 과거를 소환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만큼이나 인생도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내 삶을 휘저어 놓을 수 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삶을 견뎌낸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삶이 힘겹다. 이야기는 어쩌면 신파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세심하게 보여지는 주변의 상황들은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기보다는 그저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그 삶은 애처롭고 팍팍하며 아프다. 작가는 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따뜻함은 동정과는 다르다. 제삼자의 입장이 아니라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고 나아가 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삶이 주는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동지의 입장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안녕 주정뱅이”라고 하며 손을 내민다. 그 손은 삶의 풍파를 거친 듯 거칠고 메말랐지만 따뜻하다. 우리는 그 손을 잡으면서 위로받는다.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좋지 않은 상황들 때문에 술을 마시고 싶어 질 때 이 책을 읽어보자. 좋은 술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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