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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an 26. 2020

문학의 깊이를 보여주다

서평 <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 엘리너 와크텔 (엑스북스, 2019)

엘리너 와크텔은 캐나다 국영방송 CBC-Radio에서 <Writers & Company>를 진행하고 있는 방송인이자 문학평론가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당대 유명작가들과의 인터뷰를 이어나가며 <작가라는 사람>, <오리지널 마인드>를 책으로 엮어냈다. <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엑스북스,2019)은 가장 최근 발간된 책으로 프로그램 25주년을 기념하며 그동안 진행되었던 인터뷰 중 호평을 받았던 작가와의 만남을 추려 수록한 작품이다.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로 유명한 존 르 카레는 와크텔과의 인터뷰 후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이 일을 잘한다”라고 말했고 부커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또한 “내가 전 세계에서 만나 본 사람 중에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라 했다고 한다. (엑스북스 블로그)


인터뷰이는 영미권에서 큰 성취를 이룬 작가 15명이다. <인생수정>의 조너선 프랜즌, 아이티 출신 소설가 에드위지 당티카, 터키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 사라예보에서 망명한 알렉산다르 헤몬, T.S.엘리엇 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작가 앤 카슨, 영국 현대문학의 큰 줄기 도리스 레싱, 역사소설가 힐러리 맨틀, 독일의 작가 W.G.제발트, 캐나다의 체호프로 불리는 앨리스 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J.M.쿳시, 중국어를 모국어로 했으나 영어로 글을 쓰는 이윤 리,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 <빌러비드>의 토니 모리슨,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던 메이비스 갤런트, 영국의 젊은 작가인 제이디 스미스가 그들이다.


질문을 던지는 와크텔과 작가들 사이에 오가는 말들은 그 자체로도 지적인 즐거움을 준다. 마이클 온다치는 그녀의 인터뷰가 특별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작가의 삶에서 어떤 측면과 그것이 작품에 끼친 영향의 연결고리를 찾아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전기적인 세부사항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게 중요한, 따라서 그 작품에 중요한 감정적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p.26)  알렉산다르 헤몬과의 인터뷰에서 병으로 잃은 딸에 대한 단편 ‘수족관’을 왜 썼는지에 대해 물을때 헤몬은 ‘문학은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에, 다른 방식으로는 이용할 수 없는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방향을 택하는 것’(p.231)이라고 말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런 문제들이 어렵다고 회피한다면 결국 매문가가 아니겠냐는 그의 말은 문학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에게 숙연함을 준다. 와크텔의 질문 후에 이어진 작가의 답은 인생의 기쁨과 고통을 겪어내며 길어낸 소설가의 통찰이다.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에드위지 당티카 또한 목소리를 낸다. “모두가 말할 기회를 갖기 바랍니다. 특히 가난한 여성이 말입니다. 가난한 여성은 항상 존재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남자들이, 교육을 더 많이 받았거나 더 부유한 여자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말합니다.”(p.84) 토니 모리슨도 자신이 ‘젊은 흑인 여성이 배경이나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책’(p.552)을 원했기 때문에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문학작품과 그 이면에 숨어있는 작가들의 생각을 드러내 보임으로서 와크텔은 그들이 왜 소설을 쓸수 밖에 없었고 문학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필요한지를 알게 해 준다. <작가란 무엇인가>(다른, 2015)에서 어슐러 르 귄은 “소설은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는 독자들에게 소설이야말로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것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영어권의 작가들만으로 이루어진 인터뷰라는 점은 아쉽다. 노벨문학상 수상 등으로 유명해진 이들도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들의 내면과 세상에 대한 자세등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연결된다.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에 어떤 생각의 씨앗을 뿌려놓는지 알아보다보면 나의 독서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소설을 단지 줄거리 중심으로만 읽는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야기가 물 밖에 나와있는 빙산이라면 물 밑에 숨어있는 것은 작가의 깊은 사유와 고투의 시간, 인간적인 고뇌다. 풍부한 문학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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