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오리 Jun 21. 2021

대체할 수 없는, 아무도 아닌 바로 ‘나’ 자신

<아무도 아닌> 황정은  (문학동네, 2016)

<아무도 아닌>(문학동네, 2016)은 소설가 황정은의 연작소설집으로, 2012년부터 2015년에 걸쳐 다양한 지면에서 발표된 8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남자친구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시골로 고추를 따러 갔다 돌아오는 ‘상행’, 아르바이트 하던 서점에서 만난 소녀의 실종과 ‘나’의 이야기 ‘양의 미래’, 남자친구의 가족들과 다녀온 수목원 나들이 ‘상류엔 맹금류’, 동거인 실리의 죽음 이후 삶을 살아내는 ‘명실’, 층간소음과 얽힌 ‘이상한’ 이웃들과의 마찰 ‘누가’, 아이를 잃은 부부의 유럽여행 ‘누구도 가 본적 없는’, 생과 사의 순간에서 저지른 본의 아닌 선택을 곱씹는 ‘웃는 남자’,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웃어야만 하는 감정 노동자에 대한 ‘복경’이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마더’로 등단한 황정은은 장편 <백(百)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 소설집 <파씨의 입문>,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연년세세>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이 매년 발표하는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에 2년 연속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작가로 선정돼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기도 한다. 황정은의 책에서 특이한 점은 작가의 경력이라던가 유명인의 추천사, 해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와 책에 대한 정보의 부재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조심스러운 의지일까? 책과 작가에 대해 아무 정보 없는 독자가 서점의 매대에서 황정은의 책을 집어들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선입견 없이 책을 접한 독자는 자신만의 읽기로 작가가 만든 세계에 진입할 수도 있다. 


작가는 세밀한 묘사로 고개만 돌리면 바로 우리 옆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일상 그 자체를 구축한다.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명제는 누구에게나 부여된 숙제지만 그로 인한 고됨은 평등하지 않다. 황정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삶이 버겁다. 그들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는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고, 등장인물의 적나라한 속내는 때로 불편할 정도다. ‘이상한 장소에 자리를 펼치고 밥을 먹고 있는 노부부와 그들 곁에서 울적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젊은 남자, 그리고 그들을 등지고 앉은 여자’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미묘하게 엇갈리는 상황들은 결국 상처가 벌어지듯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다. (‘상류엔 맹금류’)  


어쩔 수 없는 선택과 그에 대한 죄의식은 어쩌면 원죄에 가깝다. 그 선택의 뒤에는 고단한 삶이 있다. ‘입은 흔적이 있는 팬티를 환불해 달라’는 마트 고객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서점에서 일하지만 ‘저 햇빛을 내 피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 중에 채 삼십분도 되지 않는’ 상황은 우울하다. 버티는 삶을 사는 ‘나’는 남자들의 심부름으로 담배를 사러 온 소녀를 그냥 보내고 이후 소녀가 사라지게 되자 ‘비정한 목격자’가 된다. 그 후에도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사람들 틈에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의 수치스러운 일’을 겪으며 ‘잘 적응해’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소녀의 일은 잊지 못한다. (‘양의 미래’) 황정은은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그저 드러낼 뿐이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나’의 목소리로 상처를 드러냄으로서 독자와 아픔을 공유한다. 


작가는 책 머리에 ‘아무도 아닌,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는다’는 문장을 남겼다.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읽어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며 세심한 태도를 요구한다. 웹진 <한판>에 2013년 12월 발표되었던 ‘명실’의 원제는 ‘아무도 아닌, 명실’이었다. 명실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명실 그 자체였을 것이고, 각 단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이다. 우리 모두가 아무도 아닌 나 자신인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이전글 문학적 지향점이 삶에서 구현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