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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un 24. 2021

사랑스러운 히어로의 등장

서평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지음 (민음사, 2105)


만화나 영화, 소설등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에서 ‘학원물’은 배경을 기준으로 장르를 나누는 거의 유일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학교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누구에게나 작지 않음을 나타내는 반증이 아닐까. 본격 학원 명랑 미스터리 소설을 표방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퇴마와 심령의 세계를 펼쳐내 익숙한 학교의 이미지를 한껏 비틀며 독자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소설가 정세랑은 SF잡지 <월간 판타스틱>으로 2010년 데뷔했다. 첫 단편 ‘드림, 드림, 드림’에서 몽마를 다루는 여자와 그녀를 쫒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던 저자는 이후 장르소설과 순수문학의 영역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소설<보건교사 안은영>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2015년 발행되어 지금까지 판을 거듭하며 독자의 인기를 이어갔고, 동명의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주인공 ‘안은영’은 사립 M고의 보건교사로 재직중이다. 별명이 ‘아는 형’인 그녀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춘기 학생들의 에로 에너지를 감지하고 학교의 나쁜 기운을 온 몸으로 막아낸다. 거대한 에너지 장막으로 안은영의 보조배터리 역할을 하는 한문 교사 홍인표와 함께 초현실적 심령현상들을 해결해간다. 


어떤 콘텐츠가 ‘만화같다’고 할때 우리가 부여하는 이미지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발랄하고 명랑하며 통쾌하기까지 한 ‘무엇’이다. ‘폭 넓고 놀라운 이야기들에 푹 젖어 사는’ 만화 동아리 아이들처럼 ‘쉽게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미덕을 가진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은 ‘안은영’이라는 새로운 영웅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한국 문학에서 보기드문 여주인공인 안은영은 스타킹 발로 운동장을 달려나가고 비비탄을 장전한 장난감 총과 무지개빛 깔대기 모양 칼로 ‘에로에로 에너지’를 해체한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심령현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이야기의 배치는 어떤 면에서 전형적이기도 하다. 안은영을 돕는 상대인 ‘홍은표’는 학교의 실세인 까칠남이다. 접점이라고는 같은 학교에 근무한다는 것뿐이었던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를 따른다. 퇴마사라는 소재적인 측면에서의 전형성 또한 장르소설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흥미를 끝까지 유지하게 해 주는 힘은 만화같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주는 작가의 서술이고 입담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는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후기에서 밝혔다. 즐겁게 작업한 작품은 보는 이들도 즐겁게 만든다. ‘은영은 아직도 학교에서 만화 동아리 애들만 보면 “너흰 정말 좋은 애들이야.”하고 말해 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p.183) 즐거운 기분은 좋은 기운을 만들어 낸다. 안은영이 히어로인 진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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