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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Jul 15. 2021

모계사회로의 회귀를 향한 경쾌한 신호탄

서평 <시선으로부터,>정세랑 지음 (문학동네, 2020)

세대를 이어가는 여성서사가 주목받고 있다.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민음사, 2017), 황정은의 연작소설집 <연년세세(年年歲歲)>(창비, 2020)와 정세랑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2020)는 모두 한국 근현대시기를 통과한 엄마와 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평단과 독자에게 호평 받고 있다. <연년세세>가 가부장제와 가족의 굴레에서 어쩔 수 없이 굴절되는 여성들의 삶을 다뤘다면, <시선으로부터,>는 사회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가를 일궈낸 ‘심시선’이라는 여성이 중심에 있다.


예술가로 평생을 살았던 ‘심시선’ 여사의 후예들이 엄마의 10주기를 맞아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한국전쟁 후 하와이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었던 모친을 기리기 위해 첫째 딸 ‘명혜’와 그 가족, 둘째 딸 ‘명은’, 셋째 아들 ‘명준’의 식구들, 넷째 딸 ‘경은’과 그 아이들이 하와이에 모이게 된다. 제사상을 차리는 일반적인 제사가 아니라 하와이에서의 인상 깊었던 순간, 물건, 경험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계획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 ‘심시선’의 위상은 평범하지 않다. 시선은 남편에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일가를 이룬다. 딸들과 아들은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왔’고 그를 닮아 ‘어떻게든 살아남을’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여자에게 험악했던 20세기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헤쳐 나온 시선은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부서지지 않은 마음을 가진 드문 존재이기도 하다. 시선과 같은 캐릭터가 존재하기엔 사회의 편견이 너무 두텁다고 느끼는 독자들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을 만회해 주는 장치는 매 챕터마다 등장하는 시선의 글, 수필, 인터뷰 등의 인용이다. 가족들의 기억 속에서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시선에 대한 정보와 객관적인 자료로서의 인용문을 조합해 독자는 시대를 풍미한 한 사람의 인생을 퍼즐처럼 맞춰나가게 된다. 화석처럼 고정된 시선의 글과 말들은 죽음으로 부재한 주인공에게 단단한 존재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시선의 후예들 또한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고 이는 지금을 사는 여성들의 현실과 궤를 같이한다. 결혼과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사회진출의 발목을 붙잡고, 아티스트로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시선의 손녀중 하나도 그로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린다. 현재의 여성들에게 공유되는 불안과 절망, 희망을 풀어내면서도 작가는 특유의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전작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보였던 통쾌한 발랄함이 장르적 성격을 걷어낸 모습으로 이 작품 곳곳에 포진돼있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p.331) 관계에서 오는 확신과 단단함은 시대의 폭력과 억압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고 작가는 말한다. 모계로 이어지는 심시선 일가의 이야기는 ‘한국사회를 감아 도는 따가운 혐오의 공기’(p.334)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린다. 자신의 계보가 ‘김동인이나 이상에게 있지 않고 김명순이나 나혜석에게 있음’을 깨달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경쾌한 모계중심 가족이야기를 통해 ‘나’의 위치와 계보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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