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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Sep 04. 2022

윤리적 선택의 무게

서평 <죽은 자로 하여금> 편혜영 지음 (현대문학, 2018)


‘정의’나 ‘도덕’이 단순한 미덕이었던 시기를 우리는 누구나 기억한다. 사람은 모두 도덕적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생각. 하지만 나이가 들고 이런 저런 경험이 쌓여갈수록 보이는 사실의 이면에는 미처 알지 못한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있어 좋고 나쁨의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편혜영 작가의 장편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현대문학, 2018)은 한 인물이 처하는 도덕적 딜레마에 포커스를 맞춘다.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무주’는 조선업으로 흥했던 ‘이인시’의 ‘선도병원’ 관리부에서 일하게 되며 ‘이석’과 알게 된다. 공고를 졸업하고 간호조무사로 병원일을 시작한 이석은 성실과 철저함, 상부에 충성하는 자세로 능력을 인정받으며 낯선 도시에 온 무주에게 우정과 배려를 베푼다. 병원의 경영악화로 꾸려진 혁신위원회에 발탁된 무주는 회계장부상에서 이루어진 이석의 비리를 발견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인터넷 병원 게시판에 익명으로 이석의 비리를 투서한다. 


한때 조선업으로 번성했던 이인시는 그러나 이제 사양길에 접어든 퇴락한 도시다. 도시의 상징이었던 골리앗 크레인은 해체되어 외국으로 팔려가고 거리엔 온통 ‘임대’라고 적힌 광고지 뿐이다. 경영이 악화된 병원은 활로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기울기 시작한 경제상황은 좋아지기 힘들다. 병원의 구성원들은 비리에도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작가는 가상의 도시인 이인시의 변화를 통해 경제논리에 의해 구성된 사회가 자본 중심의 동력을 상실하게 될 때 일어나는 개인의 몰락을 보여준다. 


‘관행’과 ‘지시’에 순응하며 봉투와 향응에 익숙해 진 결과로 서울에서 밀려나게 된 무주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고민 끝에 이석의 비리를 고발한다. ‘희미하지만 의지 있는 심장 박동, 검고 흰 물결 속에서 끊임없이 생을 향해 뒤척이는 강인한 아이를 생각하면, 묵인할 수 없었다. 훗날 아이에게 부끄러움에 맞서라고 말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p.57) 하지만 아내의 유산으로 아이를 잃고, 내부고발자가 된 무주는 동료들의 차가운 반응속에 고립되어간다. ‘미안합니다. 환자가 다시 숨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로소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빼앗길 게 분명한데도 이 사람은 왜 사과부터 할까. (중략) 왜 어떤 삶은 굴욕과 함께 지켜내야 하는 걸까.’(p.166) 병원비를 미납한 환자를 끌어내는 일을 맡게 된 무주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굴욕을 온 몸으로 견딘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개역개정판, 마태복음 8장 22절) 이석은 성경의 한 구절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따르라고 무주를 넌지시 압박한다. 믿음에 대한 성경의 내용을 집단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순종하라는 뜻으로 말하는 이석에게 무주는 두려움과 실망을 느낀다. 무너져가는 무주를 붙잡는 것은 ‘태내 아이를 보호하려고 두 손을 복부에 포개고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던 아내’의 기억이다. 도덕적 선택을 함으로서 받아들이게 된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희망은 무주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독자는 윤리적 선택을 한 무주의 행보를 통해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편혜영은 병원에서 일어날 법한 만연한 비리와 그에 반응하는 구성원들의 행태를 통해 우리시대의 도덕과 윤리에 대한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논리적 철학적 접근이었다면 <죽은자로 하여금>은 윤리적 인간이기 위해 애쓰는 개인의 갈등과 고뇌,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죽은자를 버리고 믿음을 따르는 일의 엄중함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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