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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Sep 01. 2022

다정함으로 건너는 섬

서평 <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2018, 문학동네) 

‘남들은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정미경(1960~2017) 작가는 <나의 피투성이 연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내 아들의 연인>, <프랑스식 세탁소>등의 소설집과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아프리카의 별> 등의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비교적 고전적이면서도 안정된 서사 구조, 섬세한 문체, 존재와 삶을 응시하는 집요하고도 강렬한 시선’1) 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소설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욕망과 불안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7년 암을 발견한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뜬 작가는 세편의 유작-장편 <가수는 입을 다무네>, 소설집<새벽까지 희미하게>, 그리고 장편 <당신의 아주 먼 섬>을 남겼다. 특히 <당신의 아주 먼 섬>(2018, 문학동네)은 그가 죽고 난 후 남편 김병종 화백이 작업실의 책더미에서 발견해 낸 유고작이다. 


전남 신안을 연상하게 하는 작은 섬에 여러 사연의 인물들이 모인다. 잘나가는 작가 ‘연수’의 딸 ‘이우’는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못한데다 친구의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엄마의 친구인 ‘정모’에게 떠넘겨진다.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온 정모는 갯벌의 소금창고에 도서관을 지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땅 주인의 아들이자 자신의 친구인 ‘태원’에게 창고의 사용을 허락 받는다. 태원의 아버지 ‘영도’는 자신의 성에 안 차는 아들을 몰아세우고 정모의 도서관 계획을 취소하게 시킨다. 의욕 없이 부유하던 이우는 섬의 말 못하는 소년 ‘판도’와 ‘이삐할미’, 그리고 자신을 돌봐주는 정모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다양한 직업군의 인물들이 등장해 치밀한 묘사를 통한 현장감의 표현으로 주가를 높였던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소설에서는 바닷가라는 배경이 중심이 된다. 쇠락한 염전의 소금창고를 도서관으로 새롭게 꾸미는 프로젝트는 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섬으로 밀려들어온 사람들의 마음에 점점 크게 자리 잡는다. ‘여긴 열고 닫는 시간이 따로 없어. 휴일도 물론 없고. 대출 카드도 없어. 그냥 여기 온 사람들은 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적당한 자리에 앉아 읽거나 들고 나와 갯둑에 앉아 읽거나 베고 낮잠을 자거나 집으로 가져가서 볼 수 있어.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사람은 문을 꼭 닫아주세요, 팻말을 문손잡이에 걸어둘 참이야.’(p.208)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정모에 의해 만들어진 소금창고 도서관이 있는 섬은 사람들 사이의 사라질 수 없는 다정함을 나타낸다. 


김병종 화백의 발문에 실린, 신안 군수로부터 신안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집필을 청탁받았다는 에피소드는 배경이 전면에 등장하며 존재감을 나타내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이 소설을 쓸 무렵부터 작가의 건강이 나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작가의 타계 후 발표 된 두 개의 작품집과 달리 이 소설은 존재 자체가 공개되지 않았던, 그야말로 자칫하면 사라질 수도 있었던 작가의 결과물이다. 책더미 속 박스에서 발견되었다는 이 작품에 대한 비화는 작가의 또 다른 단편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연상시킨다. 남편의 일기를 출판하지 않음으로서 자신만의 연인으로 만들었던 소설 속 인물과 달리 김병종 화백은 정미경 작가의 소설을 출판했다. 작가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표되는 작품에 대해, 소설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도서관의 존재를 위태롭게 했던 영도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야기속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만큼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고 도서관 개관행사는 피날레로 손색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이지 못하게 읽혀질 수도 있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그동안의 작품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졌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발표를 유예한 것은 아닐까?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의 작품이 소실된다는 것은 큰 손실이지만, 작가의 입장으로 보면 원하지 않은 작품의 발표가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남긴 이 다정함은 분명 독자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을 선물하고 있다. 정미경 작가의 소설을 경험한 독자라면 그의 마지막 작품 또한 일독해 보기 바란다. 





 1) 박철화 문화평론가, https://m.blog.naver.com/dibrary1004/221343795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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