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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Nov 02. 2023

베텔기우스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별

서핑을 타러 갔다.


어릴 때부터 자주 오가던 바다였다. 어릴 때는 가족과 오가던 곳, 가끔은 부친과 들렀던 곳, 혼자 찾아 안식을 취했던 곳이었다. 익숙한 바다였고 낭만이 있던 곳이다.


간단한 교육을 받고 강사들의 가이드에 따라 서핑을 즐겼다. 잔잔한 파도여서 그리 위함한 상황도 없었고, 강사가 밀어주는 뒷심으로 일어나는 게 그리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의가 끝나고 자유 시간이 왔다.


그 해변은 발가락으로 조개를 줍는 걸로 꽤나 유명하다. 지금이야 채취 금지라 가져갈 수는 없지만, 바닥을 발가락으로 긁어 조개를 주워보니 옛 생각도 났다. 그만큼 깊지 않은 바다였다.


파도가 없을 정도로 잠잠했던 탓인지, 나름 장신의 키(?)를 가졌다는 자신감인지, 혹은 어릴 때부터 수영은 자신 있던 자만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보드에 올라타 팔 질을 해댔다. 손을 가르는 물질을 유독 좋아 했어서 조금만 휘저어도 그리 많이 나갈 지는 몰랐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 오는 걸 보고 패들링을 시전한 뒤 보드에 올라탔다. 꼴 좋게 물에 빠졌다. 제법 깊은 곳에 와서인지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데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보드에 누워 있다가 다시 패들링을 했다. 또 떨어졌다. 그리고 알았다. 아, 나 죽겠구나.




바로 전에 했던대로라면 바닥이 발에 닿아야 할텐데 전혀 닿지 않았다. 순간 당황스러워 물 속에서 눈을 떴다. 정확히 내 오른쪽에는 모래의 노란색이, 왼쪽에는 시퍼런 심연이 보였다. 단구 형태의 지형의 끝자락이었다. 바다의 낭떨어지였고 급속히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발 버둥을 치면서 올라왔다. 올라가질 않는다. 겨우 모가지를 해수면 위로 뻗은 뒤 한 숨 들이 마시고 다시 빠졌다. 도무지 올라갈 수도, 물에 뜰 수도 없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순간 스치면서 무섭고 당황스러웠다. 순간, 같이 왔던 친구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개헤엄을 치면서 올라왔다. 머리를 내밀자마자 '나 숨이 안 쉬어져'라는 이야기를 하고 다시 가라 앉았다. 다시 모가지를 뺐을 때 친구가 '끈을 당겨'라는 이야기에 리드를 끌어 당기며 가라 앉았다. 머리 위로 시커먼 보드가 지나가는게 보여 손을 뻗었고 겨우 올라와 숨을 내뱉었다.


.


숙소로 돌아와 샤워기를 틀고 한참을 서 있었다. 물이 무서웠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공황이 찾아왔다.


.


'그 때 살려달라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너 얼굴 한번 보려고 올라와서는 숨이 안 쉬어진다는 얘기 밖에 못 했어. 그게 너와 나의 경계인 것 같아'


여행에서 돌아오고 시간이 지난 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대화는 점점 흘러 친구가 이야길 한다.


'왜 살려 달라고 말을 안 해? 그건 물에 빠져서만이 아니라 너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거기도 하잖아!'


그렇다.

친구말마따나 살려달란 말도

살고 싶어하지도 않는

그런 나다.


.


얼마전 영화를 봤다.


빛도, 색감도, 캐릭터들도 정겨운 영화였다. 전혀 호러블한 장면이 없었지만 숨이 멎는 구간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바다였다. 물이 들이치는 장면에서  찌릿했다. 그때의 바다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숨이 멎는듯한 기분이었다. 오늘도 퇴근 후 어쩌다가 바다가 나오는 장면에서 '와 멋있다'라고 이야기할법한 장면을 두고는 '와, 저기 빠지면 죽겠는데?'가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생각에 흠칫 놀랐다.


.


돌이켜보면 소모적인 형태로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 넣어 버리는 나다. 이게 어떻게 그리 됐는지는 차치하고, 스스로를 좀 먹고 있을 때 슬퍼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정도의 지경이 되도록 몰아치는 일, 그렇게 체념하는 반복의 쳇 바퀴를 마치 조그마한 실금으로 박살을 내어 버리는 경험이 바로 그 해변과 심연 사이를 봤던 경험이었을거다.


시간이 조금 지나 친구가 말해주었던 말이 지금도 계속 마음에 남는다. 보이지 않아도 보고 있다는 말. 다시말해 나는 앞에 있어도 보지 않는 삶이었나보다.


그래서인지 그냥저냥 평험한 이 노래를 작년에 들었을 때 '아, 언젠가 이 노래 치겠다' 싶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그 친구의 말이, 그 때의 바다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https://youtu.be/eyhbGolsdgM?si=rnCl2r7mlKtd3X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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