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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광 Dec 02. 2023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20살이 넘어서도 술을 일절 입에 대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 군대와 입시를 제외하고 365일 중에 370일은 술을 마셨다. 최근까지.


얼마전 몸이 성날대로 성나는 바람에 몸을 가누질 못하면서 술을 입에 대질 않았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정말 슬픈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었구나.


단순히 몸이 아작나거나 건강이 걱정돼서가 아니다. 정말 슬프게 스스로를 만들었던 삶이다. 왜 그랬을까.


자신이 없어서다. 피하고 싶어서다. 외면하고 싶고 대면하기 무섭기 때문이다.


과거를 돌아볼 자신도, 지금의 모습에 대한 자신도 가질 수 없을만큼 무섭고 스스로를 부끄러운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찮은 존재로 생각했고 그런 하찮은 존재로 존재한다는 것이 미안하다는 마음을 가장해 피하고 싶을 만큼 자신이 없었다. 


하루에 많으면 두끼를 먹는데, 꼭 일이 끝나고나면 술 한잔에 안주를 곁들여 먹곤 했다. 술과 안주가 아니라 술을 들입다 부어 버리는 주취가 있는줄도 몰랐다. 술이 당기면 얼큰한게 당기고 얼큰한거라면 역시 신라면. 이라면서 안 좋은 음식들을 때려 붓고, 줄담배를 폈다. 다음날 올라오는 속쓰림은 배고픔이겠지라는 착각과 함께 다시 또 라면을 들이붓는 행위를 십수년간 해왔다. 


술 없이 저녁을 먹어보길 며칠째.

아, 밥 맛이 이런거구나라는 걸 알았다. 간만에 군것질도 제대로 해봤다. 왜 과자를 먹는지도, 왜 음료수를 먹는지도 알게 됐다. 


어릴때 물풀을 검지와 엄지에 바르고는 떼었다 붙였다하며 거미줄 같은 것을 만들면 어느순간 풀떡이 되어 버린 장면이 떠오른다. 피하고 피하던 것들을 끈적한 풀떡 마냥 키우고 있었다. 재미를 붙이진 않아도 좋으련만 상황을 모면하려던 풀떡질이었다. 새삼 그 일들을 몸소 깨닫고나니 이러면 안되겠다는 것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게 미안한 삶인가, 이게 고맙다며 사는 삶인가. 


.


한 가수의 노래가 떠오른다.


죽으려고하면 이유가 있다.

죽으려고 죽을 길을 자초한다.


사는 건 정신 없다.

이유를 찾을 겨를 없이

정신 없이 밀려드는 사람들, 상황들을 헤쳐갈뿐이다.


고맙다.

그 혼란속에서 그저 하는 일이 나를 살게해줘서.


그냥 하는 일이 나를 살게 해줬다.

살려고 그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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