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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타래 Feb 26. 2020

후배가 퇴사를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고생했다. OO야


회사에서 보는 후배의 마지막 얼굴을 보면서 고생했다고 한마디밖에 못했다. 참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퇴사를 해본 적은 있어도 내 주변 사람이 퇴사를 하는 걸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요즘 같이 취업이 힘든 시대에 어디 하나 합격한 상태도 아닌데 퇴사를 하는 후배를 보면서 무모하단 생각과 부럽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참 좋은 후배였다.


참 좋은 후배였다. 17년 후반에 바로 나 다음으로 들어와서 우리들 중에서는 꽤 고참이다. 후배가 입사할 당시 우리 부서 위치를 현재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는데, 그 후배가 선배 한 명이랑 같이 내려가서 라인 셋업을 담당했다. 선배님들이 생각하기에 그래도 혼자서 근무를 돌 수 있는 내가 당시에 생산 물량이 많았던 이전 위치에 남아 있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그때부터 후배는 정말 고생을 했다.


한정된 인원에 두 군데 라인에서 생산하고 동시에 장비 셋업, 철거를 하느라 1년이 훌쩍 지났고, 마지막 설비가 내려가면서 나도 같이 현재 위치로 이동했다. 반 신입사원처럼 적응하느라 분주하던 나에게 후배가 해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 형이 오기를 엄청 기다렸어요.


이때부터 정말 열심히 적응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후배랑 같은 조가 되면서 성과도 같이 많이 내고 잘 지냈었다.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다.


1월 초 야간 근무를 같이 했을 때 처음으로 나에게 알렸다. 그런데 사실 퇴사 통보를 들었을 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몇 달 전부터 의욕이 조금 떨어진 모습이 보였고, 회사나 일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이 늘었었다. 게다가 큰 업무 때문에 과장님 부사수로 몇 달간 일을 하면서 힘들어했었다. 업무 스타일도 달랐고, 매번 과장님은 회의에 불려 다니느라 PPT를 거의 도맡아서 작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처럼 후배도 설비 엔지니어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왔던 불만과 피로가 결국 퇴사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나 때문인 것 같다.


후배가 힘든 게 보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도 힘들었었다. 교대 근무 때문에 체력은 계속 떨어지고 동시에 결혼 준비에 너무 바빴다. 게다가 내가 생각했던 설비 엔지니어의 모습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이 느껴졌고, 회의감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리더인데 2명이나 이끌면서 성과를 내는 게 버겁기도 했다. 그래서 후배의 힘듬을 보고도 보지 못했다.


리더로서 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힘들 때 같이 커피 한잔 하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질 않았다. 고민을 들어도 뭔가 조언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게 무서웠던 것 같다. 일이 많을 때 조금 덜어주지 못했다. 개인 업무도 많았고 잘 모르는 부분이라서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는 핑계를 댔다. 먼저 다가가서 살뜰하게 챙기지 못했다. 내성적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후배한테 다가가고 스스럼없이 대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부족한 리더 밑에 있어서 후배가 고생했다.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그런지 미안해서 그런지 회사 정문까지 바래다주지 못했다. 건물 입구까지만 배웅하고 돌아왔다. 혼자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다짐했다. 이제는 내 사람이 퇴사하는 이유는 잘 되어서 더 좋은 조건으로 가는 것 하나뿐이다. 그리고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에서 나오는 즐거움, 의미, 성장이라는 직접적 동기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전체 목표 중 나에게 해당하는 목표를 선정 후 각자 목표를 토의해 수립한다. 그리고 개인 면담을 통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진행 상황을 가시화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각자의 업무가 전체 목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성장을 이루는지, 진행 중에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없는지를 꾸준히 파악할 것이다. 업무적 성과와 직접 동기, 그리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서 힘든 점을 최소화시키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OKR>에서 목표와 핵심전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CFR이 필요하다고 한다. Communication(대화), Feedback(피드백), Recognition(인정)의 약자인 CRF을 통해 직접 동기인 의미와 성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일에 몰입함으로써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공동의 목표를 통해 팀워크를 향상할 수도 있다. <일취월장>의 6장 조직 편에서는 한 사람의 특별함보다는 훌륭한 팀워크가 최고의 성과를 가지고 오며, 자유로운 발언권과 동료애가 있는 조직에서 팀워크가 발휘된다고 한다.



그 친구가 잘 되길 바란다.


후배가 퇴사를 했다. 정확히는 3월 중순이지만 쭉 휴가를 다녀오는데, 마지막 날에 내가 야간 근무라서 같은 소속일 때는 마지막이었다. 후배에게 줄 롤링페이퍼에 이렇게 썼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잘 되면 추억이고, 못 되면 그저 그런 기억이래. 이 곳의 기억이 추억이 되었으면 하고 앞으로 일도 잘 되기 바란다.


그 친구가 잘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아프게 얻은 교훈을 나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된다. 나도 잘 되고 나머지 사람들도 잘 되게 하는 게 이제 내가 그 친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다.




참고

  <OKR>, 세종, 존 도어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 생각지도, 닐 도쉬 · 린지 맥그리거

  <일취월장>, 로크미디어, 고영성 · 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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