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ROTC 아닌 거 같다. 생각했던 거랑 다르네."
전 회사에서 팀장님이 나에게 한 말이다. 도면을 완성하고 결재를 받으려고 프린트를 한 다음 파트장 결재받고 팀장님께 갔는데 서명을 하시면서 갑자기 저 말을 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아 그렇습니까?"라고만 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 말이 머릿속에서 하루 종일 맴돌았다. '무슨 의미지?', '내가 뭐 잘못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지만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알지 못한 채 회사를 옮겼다.
내가 장교 출신이라고 말하면 반응이 비슷하다. 의외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장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딱 각이 잡혀 있고 사람들 앞에 서는 걸 꺼려하지 않으며 강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것을 떠올린다. 눈빛은 매섭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한 강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미달이다. 평범한 외모에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며 사람들을 휘어잡는 건 정말 못한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는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소대장으로 있던 1년은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나름 열심히 해서 훈련이나 평가 결과에서도 나쁘지 않았지만 항상 불편했다. 그 후 대대 참모로 보직을 이동해서 오로지 내 업무만 할 때는 정말 좋았다. 맞지 않은 옷을 벗어던지고 맞는 옷으로 갈아입은 기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외향성이 부럽다.
나는 전형적으로 내향적인 인간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아주 친한 소수의 친구를 만나는 게 대부분이다. 활발한 성격이 아니라서 모임에 나가도 말이 거의 없는 편이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회복을 한다. 그래서 취미도 혼자 하는 운동과 게임이었고 지금도 조용한 카페에 가서 책을 보는 걸 즐긴다. 외부 활동을 잘하지 않아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때도 내 일상은 그 전과 99% 동일했다. 카페 가는 것만 빼고는 똑같았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이 언제나 부러웠다. 특히 군대에서 같은 중대로 온 동기가 같은 일을 해도 더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들었다. 키가 나보다 작았지만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그 친구는 부사관과 병사들 앞에 딱 서서 멋지게 지휘, 지시를 했고 부소대장과도 빨리 친해져서 내가 그땐 알지 못한 꿀팁을 먼저 알고 나한테 공유도 해줬다. 외향적인 장점을 이용해 자신의 성과도 얻고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게 참 멋있었다.
그래서 전역하고 나서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을 했다. 일부러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참석했다. 사람들과 어울려서 술도 많이 마시면서 활발한 척했다. 성인 피아노 학원을 다니면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해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봤다. 이렇게 노력해봤지만 성격이란 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었다. 있는 에너지, 없는 에너지 다 쏟아부었지만 결국 와르르 무너지며 다시 내게 맞는 옷으로 돌아왔다.
내향성의 장점
당신이 외향적인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 그런가?' 혹은 '맞아 그래' 하고 끝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내향적인 것 같다, 혹은 내성적인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외향적인 말과는 다르게 부정적인 감정도 올라온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정보 습득도 빠르지 않으며 성공하기에도 외향적인 성격에 비해 불리하다. 외향적인 성격이 참 부럽다.
흠. 외향적인 사람은 돈도 많이 벌고 승진도 더 빨리 하고 리더도 더 쉽게 되고 좋은 일자리도 더 빨리 찾고 운도 더 다르고 더 행복하다. '빌어먹을!'이라는 욕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 다 좋다고 치자. 그런데, 누구는 뭐 내향적인 성격이 되고 싶어서 됐겠는가?
-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 182페이지 -
하지만 이제는 나의 내향적인 모습을 받아들였다. 나의 내향적인 성격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 모습이 좋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진다. 그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실력을 쌓는데 유리하다. 그래서 실력이 중요한 부분에서는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빠르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데이비드 해머리는 정상급 선수 10명 중 9명은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말한다. "그 비율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다. 정상급 운동선수의 89퍼센트는 스스로를 내향적 성격이라고 말한다. 본인을 외향적 성격이라는 말하는 선수는 6퍼센트뿐이고, 나머지 5퍼센트는 '중간 지대'에 속한다."
-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 188페이지 -
평생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대상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는 태도는 창의성이 높은 사람의 전형적 특징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예술, 과학, 기업, 정부 분야에서 뛰어난 창의성을 보인 91명을 대상으로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청소년기에 거의 외톨이나 다름없었는데, 남다른 호기심과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태도는 또래들에게는 별종이라는 인상을 주기 대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는 10대는 혼자 재능을 기를 시간이 거의 없다. 음악 연습이건 수학 공부건 혼자라는 끔찍한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 189페이지 -
내향적인 나를 받아들임
이런 장점이 있는 나의 내향성을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내향성이 모두 좋고 외향성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내향적인 성격의 단점은 나를 괴롭힌다. 아직까지도 사람들 앞에 서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손에 땀이 맺힌다. 우렁찬 목소리와 자신감 있는 자세가 부러운 조곤조곤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내향성의 장점 이외에도 많은 장점들이 있다.
<한달자기발견>의 리더인 이진선 님의 글에서 내향성에 관련된 좋은 책들을 알게 되었다. <친구의 친구>, <콰이어트>, <혼자가 편한 사람들>은 시간이 생기면 꼭 읽어볼 예정이다. 이 책들을 통해 내향적인 성격이 무엇인지, 장점과 단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정확히 알아봐야겠다.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하겠는가. 그게 바로 나인데. 제대로 알고 잘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받아들임'이 반드시 '좋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임'은 변화나 개선을 상상하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임'은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로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 <자존감의 여섯 기둥> 163 페이지 -
참고자료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법칙>, 갤리온, 에릭 바커
<자존감의 여섯 기둥>, 교양인, 너새니얼 브랜든
외향적 vs 내향적, 누가 성공에 더 유리할까? https://brunch.co.kr/@kwangheejan/6
<한달자기발견> 리더 이진선님 글 : 내향적인 사람도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jin-lab/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