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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타래 May 12. 2020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소한 50가지

이게 오후 근무의 낙이지


오후 1시 30분에 버스에서 내려 후배랑 점심을 먹고 출근하기 전에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었다. 출근 시간이 오후 2 시인 오후 근무에는 나는 꼭 출근 직전 커피를 하나 사서 사무실로 간다. 커피를 사는 순간부터 다 마시는 그때까지는 웬만큼 열 받는 일이 생겨도 동요하지 않고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오후 근무의 낙이 되었다.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길어야 1년이면 평소처럼 돌아온다. 게다가 그만큼의 크기가 아니면 행복으로 느껴지지도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소소하고 작은 사건에서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이렇게 작은 행복을 자주 느끼면 내 삶에서 행복한 것이 정말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작은 순간을 쭉 적어보려고 한다.


퇴근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을 때

퇴근하려고 건물 밖에 나왔는데 캠퍼스 밖 아파트가 선명하게 보일 때

점심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쭉 들이킬 때

퇴근 버스에서 신박사 TV를 보고 있을 때

퇴근 버스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도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뀌어 5초 후 횡단보도 초록불이 켜지는 걸 기다릴 때

아파트 정문 들어가기 전 왕복 2차선의 작은 도로 옆으로 쭉 들어서 있는 나무길을 볼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나서 현관문을 열 때

아내한테 "다녀왔어요~"라고 말할 때

같이 저녁 먹으면서 회사 욕할 때

같이 저녁 먹으면서 상사 욕할 때


소파에 누워서 아내랑 같이 예능 볼 때

서로의 엽사 찍고 상대한테 보여줄 때

주말에 실컷 늦잠 자고 이상하게 몸이 가벼울 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내기로 가위바위보 할 때

청소기 vs 설거지 내기

집 앞 노브랜드 아이쇼핑할 때

아파트 둘레길 걸으면서 산책할 때

춥다고 하면 이불 들고 와서 목부터 발끝까지 둘둘둘 싸맬 때(내가)

같이 차 타고 이동하고 있을 때

아내가 옆에 있을 때


데일리 리포트에 "하"가 하나도 없을 때

데일리 플랜이 모두 동그라미일 때

혼자 조용한 곳에서 책 읽을 때

오후, 야간 근무 때 출근하기 전까지 <한달> 글 거의 다 쓴 날

새로운 책을 보는데 아는 내용이 나왔을 때

벽돌 책 일주일 만에 봤을 때

새로운 책의 내용과 이전에 봤던 책의 내용이 연결되는 걸 깨달았을 때

서평 다 쓰고 발행 버튼 누르기 직전

꽉 차 있는 책꽂이를 볼 때

거품기로 열심히 저어 만든 방탄 커피의 첫 모금을 마실 때


숫자들이 꽉 찬 엑셀 시트에서 고장의 원인이나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찾았을 때

찾은 상관관계들을 바탕으로 인과관계를 밝혀냈을 때

끼어든 일이 없이 아침에 파악한 일만 딱 계획대로 끝냈을 때

손 닦은 휴지 뭉쳐서 화장실 반대편 쓰레기통에 던져서 깔끔하게 들어갈 때

교체 다하고도 방진복에 구정물 하나도 안 묻었을 때

출근했는데 에러 하나 없이 설비들 쌩쌩 잘 돌고 있을 때

출근했는데 소모품 교체할 게 없을 때

탕비실에서 커피 머신 동작을 누르고 커피가 나올 때의 커피형을 맡을 때

저녁 먹으러 가는데 새끼 고양이들을 봤을 때

손이 많이 가는 업무를 자동화했을 때


유튜브에서 몰디브 리조트 영상 볼 때

게임 스토리 정리 영상 볼 때

헬스장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

고기 구워서 접시에 놓고 먹을 때

버스-지하철-버스가 대기 시간 없이 딱딱 맞을 때

중구난방으로 흩날리는 글이 아닌 한 가지로 딱 떨어지는 글을 썼을 때

스터디원들이나 씽큐 모임을 해서 만날 때

초코칩 쿠키, 왕소라 먹을 때

혼자서 카페 가서 책 읽을 때

빨래 갤 때 각이 잘 잡힐 때


나의 소소함은 일상에 있다.


내 일상은 단조롭다.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서 밥 먹고 책을 보거나 유튜브 혹은 티브이를 본다. 주말에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주변에 행복한 일이 많다. 머리가 지끈한 회사에서도 손 닦은 휴지로 스트레스를 푼다. 커피 한잔으로 상쾌함을 얻고 하는 일에서도 행복을 얻는다. 생각보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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