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6 - 사십일의 질문, 말 없는 대답

예수가 보여준 가장 조용한 승리

by 나그네 한

족보를 적고 난 뒤, 나는 한참 동안 책을 덮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에서 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이어지는 긴 호흡 속에, 나는 어느 순간 예수의 걸음이 멈춰 선 그 지점을 떠올리게 됐다. 그가 어디로 향했을까. 왜 하필, 그 길이었을까.


나는 다시 짐을 꾸려 광야를 향했다. 그곳에서, 예수가 혼자 마주했던 침묵과 싸움, 그리고 그가 지나온 시간을 더듬어보고 싶었다.


뜨거운 먼지가 발등을 덮던 오후,
나는 그가 머물렀다는 어느 바위 그늘 아래 앉아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예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갈라진 손등을 내게 보이며, 예수가 광야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모래가 발목까지 빠지는 황량한 땅을 바라보며 한참을 침묵하다가 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사람 말이야... 사십 일을 먹지도 않고 거기 있었어. 진짜 사람이었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인데도, 눈빛만은 그 어떤 사람보다 또렷했지.”


나는 그의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메모를 시작했다. 사십 일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 척박한 땅에 스스로를 던진 시간.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모든 것을 내려놓기 위한, 아주 깊고 오래된 준비 같았다. 광야는 늘 인간을 벌거벗게 만든다. 누구도 그곳에서 스스로를 포장할 수 없다. 예수는 조용히, 어떤 결심을 따라 그 고요하고 잔인한 장소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누군가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먼저 다가온 건 배고픔이었다. 몸이 먼저 무너졌다. 허기라는 건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게 아니라, 조용히 살을 깎는 식으로 온다. 걸을 때마다 다리가 휘청이고, 입은 바싹 마르고, 눈은 점점 흐려지는데도 머릿속은 멈추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생각한다.


그 순간, 이상한 말이 마음속에 들려왔다고 한다. 소리라기보다는,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었다.


“왜 이 고생을 해? 네가 그런 능력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저 돌을 빵으로 바꿔봐. 지금 당장. 그러면 살 수 있잖아. 그게 무슨 큰 죄라고 생각해?”


그건 단순한 배고픔에 대한 충동이 아니었다.

‘네가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이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이렇게 굶주려 쓰러질 이유가 뭐냐는 도발이었다. 내가 직접 그 말을 들은 건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해 줬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나는 그 말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다. 예수가 말한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배를 채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입에 넣는 한 조각의 빵보다, 믿음을 지키며 견디는 고요한 의지가 그를 더 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몸이 아닌 마음을 겨냥한 유혹이었다. 누구도 강제로 끌고 가지 않았지만, 예수는 마치 자신이 스스로 높은 언덕에 올라선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멀리 도시들이 보였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반짝이는 지붕들, 깃발들, 수많은 사람들이 향하고 있는 중심들.


그때 또 한 번, 묘한 속삭임이 들렸다고 한다.

처음과는 다른 목소리. 조금은 익숙한 어조. 이전에도 들었던 말일 수 있고, 평소에도 누구나 속으로 자주 하는 생각일 수도 있다.


“저기 봐. 저 모든 도시들, 그 안의 궁전들, 광장들,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너라면 다 가질 수 있어. 지금부터라도, 조금만 눈을 감으면 돼. 나를 인정해. 나라는 게 뭐 별 건가? 세상은 어차피 이렇게 굴러가. 힘 있는 자가 왕이 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게 하려면, 먼저 뭔가 보여줘야지. 지금이라도, 이 모든 걸 다 얻을 수 있어.”


그건 누가 들어도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지도자, 화려한 왕, 강한 존재. 예수가 조금만 고개를 끄덕이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하느님 외에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마라."


이건 단순한 종교적 고백이 아니었다. 예수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의 타협을 거절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방식’이 아니라, ‘진짜로 자유롭게 만드는 방식’을 선택한 셈이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한참 동안 언덕 아래 도시를 바라봤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런 거래를 마주하며 살고 있을까.


세 번째 이야기는 조금 묘하게 느껴졌다. 그때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신과 인간 사이가 가장 가까워진다고 믿던 장소. 그곳에서 들려온 유혹은 아주 고요하면서도 논리적이었다.


“한번 생각해 봐. 사람들 앞에서 성전 꼭대기에서 멋지게 뛰어내리는 거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이 땅에 착지하지. 그러면 너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그 순간부터는 아무도 널 무시하지 못할 거야. 하느님이 너를 보호할 거라며? 그러면 지금 한 번 시험해 보는 게 어때? 네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있는 기회잖아.”


그 말은 은근히 맞는 말처럼 들렸다.

거룩한 곳에서, 믿음을 시험하라니. 마치 용기 있는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예수는 그 안에 숨겨진 오만을 알아봤다.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신뢰는 증명하려 드는 순간 깨진다. 예수는 하느님이 자신의 뒤를 봐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함께 걸어가는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해줄지 말지를 시험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성전 가까이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이 정말 있느냐’는 질문으로 자신의 믿음을 흔들던 모습들을 떠올렸다.


예수는 그렇게 흔들리지 않았다.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그 목소리들을 하나씩 밀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사십 일이 지나자 예수는 광야에서 나왔다. 그는 다시 갈릴리로 향했다. 어릴 적부터 자라온 동네, 사람들이 그를 익숙하게 불렀던 곳. 하지만 그때의 그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고 한다.

몸은 초췌해 있었고,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 있었지만, 눈빛만은 놀라울 만큼 맑고 단단해 보였다고 했다.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마다, 이상하리만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가 뭘 했는지도 몰랐고, 그가 무슨 기적을 일으킨 것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 회당마다 그의 자리는 금세 가득 찼고,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때때로 가슴을 쥐어잡듯 울었다고 한다.


나는 오래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끌어당겼을까.

누군가는 그의 말솜씨 때문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하늘에서 오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를 진짜 다르게 만든 건 광야에서 아무 말 없이 견딘 그 시간이었다.


그 긴 침묵.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수많은 의심과 혼란 속에서도 그는 소리치지 않았다. 누구 탓도 하지 않았고, 자기 능력을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버티며 걸었다.


요란한 기적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지만, 묵묵한 침묵은 마음을 붙잡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속에서 더 깊은 힘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했던 말 하나하나에는 광야에서 만들어진 고요함과 무게가 묻어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은 날,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침묵은,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선택한 ‘존재의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 이야기를 내 글에 남겨야겠다고.

누군가 이 기록을 읽고, 자신이 걸어가는 황량한 광야 속에서 말없이 버티는 것의 가치를 새롭게 느끼게 되기를 바라면서.


위의 글은 신약 성경 "누가복음 4:1-15"을 각색해서 쓴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성경책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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