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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한 Dec 18. 2021

수용과 보냄

콥틱 기독교의 영성(靈性)과 신도들의 삶

초기 콥틱 기독교 십자가 문양 - 나그네 한


"십자가는 세상을 수용하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초기 콥틱 기독교의 십자가 모양을 보자.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의 모양이 아니다. 가운데 짙고 작은 원은 교회를 나타내며 서로 겹친 선들은 십자가로 표현된다. 교회 곳곳에 붙어 있는 콥틱 기독교 십자가의 의미는 세상을 교회 안으로 오게 하고 교회는 세상으로 다시 나가게 한다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오랜 역사 가운데 이집트 콥틱 기독교가 추구하는 영성(spirituality)이다.


알렉산드리아 성 마가교회 - 나그네 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성경 신약성경 마가복음의 저자인 '성 마가'가 이집트에 전도자로 옴으로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전해진다. 그래서 콥틱 기독교는 '성 마가'를 초대 교황(Pope)으로 추대한다. 그리고 기독교는 이집트에서 아주 빠르게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위기의 시기가 있었다. 3-4세기 로마 황제에 의한 기도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로마 황제의 박해 앞에 굴복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에 맞선 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박해를 피해 숨었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이들이 숨었던 '카타콤(Catacomb)'이 아직 존재한다. 그 카타콤에 들어가 보았다.


지면에서 30미터 아래에 있는 동굴 무덤(알렉산드리아)  - 나그네 한

지면에서 30미터 좁은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곳. 원래는 2세기 귀족들의 무덤으로 쓰였던 장소이지만 100년이 지나 그곳은 로마 황제를 피한 곳이 되었다. 어두 컴컴하고 혼자 들어가기엔 으스스한 이곳에서 기독교인들은 오랜 시간 자신의 가족들을 바위에 묻고 함께 살아갔다. 황제를 그들이 믿는 하느님처럼 함께 섬기겠다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그들은 30미터 지하까지 내려갔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왜 그렇게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들은 역사 가운데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2000년 동안 믿음을 꿋꿋이 지켜오고 있다.




Pope이 신도들에게 성찬을 나누고 있다 - 나그네 한
콥틱교회의 예배와 미사 - 나그네 한
콥틱 기독교 어린아이들, 모든 콥틱인들은 태생 1년 후 오른쪽 손목에 십자가를 새긴다 - 나그네 한

한국뿐만 아니라 서양의 기독교와는 사뭇 다른 예배와 교회 모습이 보인다. 남녀노소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역대 사제(Pope)의 시신이 뉘어져 있는 관에 손을 올리고 입을 맞추고 기도를 한다. 이들은 이렇게 기도함으로 자신들의 기도가 사제를 통해 신에게 올라간다고 믿는 것일까? 이들의 예배 의식이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모습 가운데 아주 진지함이 느껴진다


콥틱의 사제들은 교회를 방문한 신도들에게 성찬을 집례 한다. 콥틱교회의 성찬은 가장 중요한 종교적 예식이다. 그래서 사제의 역할은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서있으며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는다. 이들에게서 교회를 시무했던 역대 사제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무엇보다 세상 밖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는 들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역대 많은 사제들과 현존하는 사제들 중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무슬림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슬람 신도가 인구 90%인 국가에서 콥틱 기독교는 절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듯 보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바로 세상을 수용하고 보내려는 그들의 오랜 신앙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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