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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그네 한 Apr 08. 2022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

요셉과 히브리인들이 너무 싫은 파라오

힉소스 왕조 - 기원전 1750~1538년 (출처: google 위키백과)



  이집트 중왕국 후기. 중 왕국 제15 왕조(첫 군주 살리티스)부터 '힉소스'라 불리는 외국 유목민들이 이집트를 약 150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들은 중 왕기 12 왕조 때부터 시작된 이집트의 혼란기를 틈타 델타 지역부터 상 이집트(이집트 남부)까지 영향력을 과시했다. '마네토'라는 이집트 역사가는 힉소스의 침입을 이집트의 재앙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다른 해석에는 힉소스족들이 이집트에 청동기 시대를 열어줌으로 이집트 문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고 보기도 한다. 150년 힉소스 왕조기. 구약의 역사 학자들은 이 시기에 요셉의 출현과 야곱의 가족들이 이집트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1. 힉소스 왕조의 총리 '요셉'


  요셉은 본토 이집트 왕조를 위한 총리가 아니었다. 그가 이집트의 노예로 끌려갔을 때는 이집트의 침략국인 힉소스 왕조의 시대였으며 힉소스 왕조의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야곱(이스라엘)과 형제들을 이집트로 데리고 왔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함으로 이집트의 7 기근을 극복할  있도록 도왔다. 자칫 기근으로 힉소스 왕조가 본토인과 타국의 위협을 받을  있었던 상황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힉소스 왕조의 파라오는 요셉의 도움으로 자신의 왕조를 유지할  있었다. 파라오에게서 요셉은 지배국 이집트를 계속 통치할  있도록 도움을  인물이었으며 충직한 신하였다. 그래서 파라오는 요셉에자신 다음의  부와 권력을 허락하였다. 실로 요셉은 엄청난 권력을 누리며 이집트에 살았고 그의 가족들 역시 '이방인'이었음에도 다른 '이방민족'과는 다르게 많은 해택을 누리며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태양의 도시(헬리오폴리스) - 오벨리스크

  이집트 카이로 북쪽 '헬리오 폴리스(온 - On)'라는 지역이 있다. '온(On)'은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의 신'을 위한 도시였다. 오래전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많은 유물들과 건축물들이 폐허가 되어 당시의 모습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온(On)'지역은 중왕국 시대 전부터 내려왔으며 태양신을 섬겼던 제사장은 파라오 다음의 권력을 가졌었다. 요셉은 이 '온(On)'의 제사장인 '보디 베라(Potiphera)'의 딸 아스낫과 결혼을 한 것이다(창 41:45). 요셉은 이집트 힉소스 왕조 시절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 모두를 가진 '무소불위(無所不爲)'권력을 가진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권위는 '파라오'로부터 왔다(창 41:40). 그래서 요셉은 철저히 '파라오' 즉 힉소스 왕조를 위한 정치를 했다. 이집트에 기근이 더욱 심해진 틈을 타서 곡식을 팔아 이집트 사람들의 돈, 가축, 이집트의 모든 토지까지 사서 모두 파라오에게 바쳤고(창 47:13-20), 기근 후엔 모든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의 땅에서 노예로 일을 하며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도록 하였다(창 47:23-24). 땅을 돌려받지 못하고 힉소스 왕조의 파라오 종으로(창 47:25) 살았던 본토 이집트 인들은 훗날 총리 요셉에 대한 어떠한 시선과 감정이 있었을까?




2.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의 등장


신왕국 시대 왕들의 돌상 - 룩소르

   이집트 18대 왕조 제1대 파라오 아흐모세(Ahmose I - 재위 기간 기원전 1570~1546). 고대 이집트 역사 가운데 최고의 영웅이다. 침략국 힉소스 왕조의 시대를 종결시켰고 본토 이집트 세력을 극대화 시킴으로 이집트에서 가장 찬란한 역사인 '신왕국 시대'를 열었다. 그는 힉소스 왕조의 모든 행정체제를 지워버렸고 왕국의 힘을 나타내기 위한 대형 신전 건축 사업을 하였다. 상 이집트(Upper Egypt) 룩소, 아스완, 알민야와 같은 도시에 가면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위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직접 보고 알 수 있다.


  침략국이 물리치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지면 과거의 치욕적인 역사를 지우는 것은 당연하다. 독일의 나치를 그리했고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한국, 중국 역시 일제 강정기의 치욕적인 역사를 바로잡으려 나름 노력한다. 새 왕조가 등장하면서 가장 긴장했을 집단이 있다. 바로 이방인이었으며 '힉소스 왕조'의 권력에 도움을 준 '히브리인'들이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정착하며 살고 있는 야곱(이스라엘)의 60만 명의 후예들이다. '파라오'에게서 '요셉'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침략국을 도운 '친 힉소스파'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친일파'와 같은 집단이다. 신왕국의 파라오가 느꼈을 '히브리인'들의 감정은 한국인이 느끼는 '친일파'에 대한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정복당했던 기간이 150년이었으니 그가 느꼈을 악 감정은 한국보다 더 했을 수 있다. 그는 '히브리인'들에 대한 모든 힘을 빼앗고 숙청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새로운 왕조에 필요한 건축 사업에 그들을 동원시켰다. 그리고 파라오는 이집트인보다 이방 민족인 '히브리인'들이 더 많은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태어난 남자아이를 죽이는 민족 말살 정책을 폈다(출 1:22).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성경에서 읽히는 요셉과 '히브리인들'의 관점과 이집트 역사에서 보는 그들의 관점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요셉은 나라와 민족을 구한 영웅으로 읽혀질 수 있지만 이집트 역사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쓴 이 요셉의 이야기는 가능하면 이집트의 관점에서 요셉과 히브리인들을 바라보려 시도한 것이다. 누구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설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과 추측을 시도해본다면 구약 성경의 '영웅'으로만 읽는 '요셉'의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더욱 풍성하게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다.


참고도서

구약성서의 이해(버나드 W. 앤더슨)

이집트 역사 다이제스트100(손주영, 송경근)

google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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