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 사랑
바람이 한 번 스쳐갈 때마다 나뭇잎의 문장이 바뀐다. 너와 내가 함께 걷던 길가에선, 붉고 노란 말들이 순서 없이 흩어졌고, 우리는 그 사이를 천천히 읽으며 지나왔다. 너는 종종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나는 네 어깨에 내려앉은 햇빛의 기울기를 보았다. 말없이 걸어도 충분한 날들이었다. 말이 많아질수록 놓치는 것이 있다는 걸, 가을이 먼저 알아차린 듯했다.
카페 창가에 앉아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온기가 살짝 늦게 전해진다. 사랑도 그런 방식으로 왔다. 먼저 향이 지나가고, 그다음에 온도, 맨 마지막에 네 이름이 남았다. 이름은 호출이 아니라 귀환이었다. 네가 오지 않아도 돌아오는 것, 가끔 네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포함한, 이상한 평안과 함께.
낙엽은 땅을 향해 떨어지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마음은 위로 올라갔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들뜬 풍선처럼. 붙잡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는 기분. 우리는 서로를 단단하게 쥐지 않고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손끝이 아닌 시선으로, 시선이 아닌 온도로. 그러다 어느 밤, 창틀에 기대 비가 그치는 소리를 듣는데, 문득 알겠다. 기다림은 너를 늦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천천히 익히는 과정이었다는 걸.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오래된 셔츠의 단추처럼 네 곁에 단단히 달라붙는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작은 고리.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 이름을 섞어 부르면, 나는 대답 대신 잔잔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 법을, 가을에게 배웠으니까. 떨어지는 잎이 땅을 탓하지 않듯, 우리가 오늘을 탓하지 않듯, 이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서로를 채운다.
이 계절이 지나도 남을 것은 아마 향일 거다. 너의 웃음 끝에 스치던 그 향, 차가운 공기에 더 또렷해지는 빛. 나는 그 향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빛으로 밤을 접는다. 말하자면, 가을은 끝이 아니라 문지방. 문지방에 서서 신발 끈을 다시 묶는 동안, 우리의 다음 사랑이 숨을 고른다. 그리고 나는 안다. 네가 오든, 오지 않든, 이 마음은 이미 너에게 가닿아 있다는 걸. 너 없는 풍경 속에서도 너와 함께라는 걸.